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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3년이면 약(藥) 7년이면 보물 

시진핑 개혁으로 보이차 수요 줄자 백차(白茶) 인기 급상승 

서영수

▎백차의 조상나무인 뤼쉐예(오른쪽)를 만나려면 기암절벽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백차(白茶)는 더위를 이겨내는 힘이 있는 차다. 백차는 찻잎에 열을 가하지 않고 만들어 차의 차가운 성분이 그대로 잘 보전돼 있어 한방에서 해열제로 처방하기도 한다. 최근 백차는 보이차의 인기를 추격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2011년 상하이에서 21년 묵은 백차, 푸딩바이차(福鼎白茶) 357g이 3500만원에 낙찰됐다. 그 해에 만든 백차는 차로 즐기고 3년이 흐른 백차는 약으로 사용하며, 7년 된 백차는 보물이라는 차 유통 업계의 홍보성 문구가 중국차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백차의 전성시대를 여는 데 일조한 사람은 시진핑 주석이다. 시진핑이 취임하며 실시한 ‘공적 비용 절감 3대 원칙’에 따라 중국 공무원이 공적으로 사용하는 접대비, 관용차 운영비, 출장비를 대폭 줄였다. 마오타이 같은 값이 비싼 바이주(白酒) 대신 중국산 와인이 접대주로 대체됐다. 사소한 절약 같았지만 연간 9조원의 비용을 절감시켰다. 덩샤오핑이 실시한 개혁개방의 훈풍에 힘입어 부활한 고급 차관(茶館)에 대한 출입 자제와 뇌물성 보이차 선물을 지양할 것을 시진핑이 언급하자 고가의 보이차를 선물하던 관행도 사라졌다. 보이차 시장은 고가의 노차(老茶) 시장부터 서민이 마시는 일반 보이차 시장까지 얼어붙었다. 차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던 보이차 시장이 위축되며 차 유통산업 전반에 불황의 그림자가 덮쳤다. 차 유통 업계는 새로운 구원투수가 필요했다. 아직은 고가 시장 형성이 안 된 백차가 틈새시장의 주인공으로 선발됐다.

백차의 생산량과 거래량은 중국 전체 차 시장에서 미미한 비중이라는 것 또한 매력이었다. 보이차에 몰려있던 단기 투기자금과 여유 자금은 몰려갈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백차를 겨냥했다. 백차의 상승 모멘텀은 백차만이 갖고 있는 신선한 향기와 원초적 차의 맛이라는 본질적 가치에 앞서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적은 유통량에 있다. 유통 주식 수가 적은 저가의 주식이 손쉽게 투기대상이 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한방에서는 해열제로 처방하기도


▎푸딩바이차 차밭(왼쪽)과 백차.
백차는 전 세계 모든 차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차라고 한다. 녹차를 인류가 만든 차의 시초로 생각하기 쉽지만 찻잎을 따서 시들려 마시는 백차가 열을 가해야만 만들 수 있는 녹차보다 먼저라는 주장이 합리적이다. 백차의 유래에 대한 설화도 다른 차에 비해 시대적 배경이 앞선다. 중국 고대신화에 나오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요제(堯帝)가 통치하던 4400년 전 홍역이 발병해 어린아이들이 죽어나가도 약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이 소식에 마음 아파하던 람고(藍姑)라는 산골 아가씨가 꿈에 신선이 계시한 장소에서 백차나무를 발견해 많은 사람을 구하고 홍역을 물리쳤다고 한다. 람고는 이후에도 역경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돌보다가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됐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칭송해 타이무로 모셨다. 람고가 살던 곳이 오늘날 백차의 고향으로 유명한 푸딩타이무산이다.

백차는 푸젠성 푸딩타이무산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북로백차와 푸젠성 쩡허에서 만드는 남로백차로 나뉜다. 윈난에서 나오는 백차는 태양이 아닌 달빛으로만 말려 월광백(月光白)이라는 로맨틱한 이름을 갖고 있다. 보이차로 유명한 윈난에서 생산되는 대백차(大白茶)와 저장성 안지(安吉)에서 출시하는 백차는 차의 이름에 버젓이 백차가 들어가 있지만 사실은 녹차 제조 공법으로 만들어진 녹차다.

새로운 공법과 열처리 기술 적용

백차의 전설이 살아있는 푸딩타이무산은 중국 36개 명산 중 1위에 등극한 적도 있다. 삼천갑자 동방삭과 얽힌 설화부터 크고 작은 전설이 깃든 바위가 360개가 넘는 국가급 풍경명승구다. 백차의 시조나무인 뤼쉐야(綠雪芽)를 만나려면 기암절벽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한 사람이 몸을 웅크려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바위 틈 사이로 난 길도 재미있지만 협소한 바닥에 인공계단과 징검다리를 공들여 만든 아이디어와 노력을 보면 자연보호와 환경훼손에 대한 중국인의 개념은 우리와 사뭇 다른 것 같다.

백차의 뿌리를 찾아 걷다 보면 이끼를 두꺼운 카펫처럼 뒤집어쓴 커다란 바위를 나무뿌리가 혈관처럼 감싸고 있는 ‘타이무산의 심장’이라는 바위를 만날 수 있다. 계곡과 개울을 여럿 건너 홍쉐동에 다다르면 수령 100년이 넘는 야생 고차수 한 그루가 중국 10대 명차로 선발된 명품 백차의 어머니로서 정부에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뤼쉐야 차나무는 국가가 아닌 푸젠티엔후차엽공사 소유다. 백차의 시조를 상징하는 ‘뤼쉐야’는 개인상표로서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뤼쉐야에서 번식시킨 차나무는 백차도 유명하지만 녹차로도 가공되어 고가에 팔린다.

백차는 이른 봄에 채취한 어린 싹으로 만든 바이하오인쩐가 최고급이지만 수량이 아주 적어 당해 연도에 판매할 것도 없어 묵혀서 팔 수 없다. 연녹색의 어린 싹을 가득 뒤덮은 하얀 털은 햇볕에 말리는 제조 과정을 거치면 수분이 날아가 은빛바늘처럼 보인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백차는 어린잎을 사용하는 바이무단과 다 자란 잎과 대백차 종류가 아닌 소 엽종 백차나무 잎을 사용하는 공메이다. 공메이가 백차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전에는 원료와 제조 과정이 조금 다른 공메이와 쇼우메이를 따로 분류했지만 지금은 혼용해서 부른다.

백차를 여러 해 묵혀서 상업적으로 팔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 안팎이다. 월진월향을 기본으로 하는 보이차의 영향과 투기자본의 쏠림현상이 생기며 오래된 백차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백차가 차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신세대 기호를 충족시키는 기술을 꾸준히 개발해 신공법백차를 만들기 시작한 덕이 크다.

백차의 제조 과정은 얼핏 보면 원시적이고 간단하다. 찻잎을 채취해 시들려 말리면 된다.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하기에 가장 정교한 기술과 타이밍을 요구한다. 전통 백차를 제대로 만드는 기술자가 많지 않았지만 백차 수요가 적었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급격히 늘어난 주문량과 맛의 일관성을 위해서 숙달된 기술자가 많이 필요했지만 인력 양성에는 한계가 있어 전통적인 제조 과정에는 없었던 찻잎을 미세하게 비벼주는 공법과 열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전통 공법 계승에만 연연하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는 차를 만들어내려는 융통성과 노력이 백차시장 급성장의 진짜 원동력이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341호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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