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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기자가 만난 ‘판교밸리언’(6)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 화장품 회사 이상의 의미로 남고 싶다 

6월 강남역에 오프라인 매장 오픈 ... O2O로 맞춤 뷰티 서비스 제공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6월 29일, 평일 오후임에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북적거렸다. 젊은 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인 이곳에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6월 24일 문을 연 화장품 온라인 쇼핑몰 미미박스의 오프라인 매장이다. 건물 외관을 장식한 조명이 분장실 화장대를 연상시켰다. 198㎡(약 60평) 남짓 규모에 2층으로 된 이 매장에서는 미미박스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매장 한쪽의 메이크업 쇼룸에서는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무료로 고객들에게 화장을 해주고 있었다. 2층에는 쉴 수 있는 라운지와 역시 무료로 포장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곳은 여느 화장품 매장과는 다르다. 모바일·온라인·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옴니채널’ 매장이다. 모바일에서 점 찍어둔 화장품을 오프라인 매장에 와서 직접 써보고 구입하거나, 반대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유롭게 이용해본 제품을 나중에 모바일이나 온라인에서 살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제품이 더 비싸지만 옴니채널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물건을 사든 가격이 같다.

2012년 화장품 서브스크립션(정기배송) 서비스로 시작해 모바일·온라인 쇼핑몰, 자체 화장품 브랜드 개발, 오프라인 판매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하형석(33) 미미박스 대표를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만났다.

오프라인 매장을 낸 이유는.

“창업 때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열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과연 필요할까 확신을 못했다. 그런데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고객들이 미미박스를 알까? 매장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안 사고 메이크업만 받아도 된다’고 한다. 매장의 60~70%가 메이크업 스튜디오다. 판매보다는 경험에 의미를 뒀다. 2개월 전에 결정해서 바로 장소를 물색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을 직원으로 뽑았다. 며칠 관찰한 결과 무료 메이크업을 받은 고객들이 오히려 제품을 더 많이 구입하더라.”

매장을 더 낼 계획인가.

“2호점은 홍대 앞이 될 것 같다. 앞으로 낼 매장들의 성격을 모두 다르게 할 계획이다. 얼마나 많이 사느냐가 아닌 얼마나 오래 머무르고 다시 찾아오느냐가 중요하다. 고객마다 고유번호가 있어 재방문 고객은 기기가 자동으로 인식한다. 여름 동안 매장 4개를 더 열 예정이다.”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스타트업은 사이클이 짧아야 한다. 2014년 자체 브랜드를 출시한 이래로 매주 수요일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제까지 700개 정도 제품을 선보였다. 전 주에 내놓은 제품의 반응을 바로 다음 신제품에 반영하니 제품의 디자인과 품질이 점점 좋아진다. 에디슨처럼 가설을 빨리 실험해봐야 한다.”

화장품은 속도보다 품질과 안전성이 중요할 텐데.

“제품과 관련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분석한다. 또 지난해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해 물류와 재무를 관리하고 있다. 제품의 질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 처음 자체 브랜드를 개발할 때 매주 신제품을 낸다고 하니 화장품 전문가들이 아무도 안 오려고 했다. 비전문가들끼리 개발을 하니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었다. 멀티스틱(스틱 파운데이션) 같은 아이디어 제품이 인기다. 토털 뷰티 제품이 아닌 구체적인 기능에 집중하려고 한다.”

현재 미미박스는 100%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아임미미·포니이펙트·누니·본비반트 등의 자체 브랜드 제품을 생산한다. 하 대표는 “젊은 사람들의 도전을 좋게 본 덕인지 많은 화장품 OEM 기업에서 도움을 줬다”며 “특히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님은 ‘속도를 늦추지 말라’며 항상 응원해주신다”고 말했다.

결정도, 실행도 빠른 것 같다.

“요즘 같은 변화의 시대에 머뭇거릴 틈이 있나. 직원들의 순환도 빠르다. 서울 본사 직원이 400명인데 한 달 평균 5명이 그만둔다. 많은 인원은 아니라고 본다. 실리콘밸리 정보통신기술(ICT) 회사의 평균 근속이 1년 정도로 알고 있다. 퇴사했다가 재입사하는 직원도 많다. 우리 직원들이 외부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자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재가 많다는 뜻 아닌가.”

하형석 대표는 “이미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한계를 넘었다”며 “당장 사업이 잘못돼도 후회 없을 경험을 많이 했다”고 빠른 결단력과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미미박스는 창업 4년 만에 한국을 비롯한 미국·중국·홍콩·대만·싱가포르 6개국에 550여 명 직원을 둔 뷰티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 본사 직원의 40%가 외국인이다. 현재 매출의 30%가 해외에서 나온다.

해외 사업 전략은?

“미국과 중국에 80여명씩 팀을 꾸렸다. 아직 수치를 논하긴 이르지만 미국 K-뷰티 온라인 시장에서 점유율 25%를 차지한다. 중국 매출도 1년 만에 20배 성장했다. 공동창업자인 김도인 이사가 2년 째 중국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 시장을 개척할 때는 내가 1년 정도 가 있었다. 그렇게 해야 현지 사정에 맞게 사업을 바꿀 수 있다. 이후 구글 출신의 아놀드 허가 미국 지사장을 맡았다. 2020년까지 12개국에 진출해 해외 매출을 80~90%까지 올릴 계획이다.”

현지 사정에 맞게 사업을 바꾼다는 의미는.

“가령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게 된 계기도 해외 진출이다. 미미박스 온라인 몰에서 1200개 뷰티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외국에서 제품 조달이 어려웠다. 미국에서는 진출 6개월 만에 제품이 품절됐다. 중국은 수입 과정이 까다로운 어려움이 있었다. 자체 브랜드 개발을 결심한 이유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브랜드들에게 모바일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것 또한 우리 역할이다.”

화장품 모바일 쇼핑몰은 많다.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미미박스는 단순한 모바일 유통 채널이 아니다. 아모레퍼시픽 같은 화장품 회사도 아니다. 유통과 IT를 접목해 소비자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연구개발에까지 활용한다. 물론 거액의 투자를 받은 것도 빠른 성장에 큰 힘이 됐다.”

이 회사는 2014년 한국 기업 최초로 글로벌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보육기관) 와이콤비네이터의 투자를 유치했다. 2015년에는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을 비롯한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330억원을 투자 받았다.

유명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현지에 머무르며 그들과 가까워진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여긴다. 제리 양은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높다. 하지만 사람들을 속인 것이 알려지면 다시는 발을 못 붙인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연계가 주요 사안이다. 그동안 쌓아온 온라인 데이터로 고객의 쇼핑 패턴을 분석해 오프라인에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판교에 R&D 연구소도 연다. DNA를 분석해 개인마다 맞춤 화장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런 상상을 한다. 스티브 잡스나 일런 머스크가 미미박스를 경영한다면 어떤 회사로 만들까 생각하는데 이제 돈보다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우버가 택시 앱 이상의 문화를 만들었듯 미미박스도 계속해서 변화해 화장품 회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싶다.”

[박스기사] 미미박스가 현대백화점 판교점으로 온 이유

서울 역삼동에 있던 미미박스는 지난 3월 판교로 본사를 이전했다. 하형석 대표는 “강남에서는 전 직원을 수용할 1000평 넘는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코스맥스·코스메카 같은 화장품 OEM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또 IT 기업의 집적지인 판교는 유통과 IT를 접목하는 미미박스에게 최적의 입지다. 하 대표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사무실이 있어 코 앞에서 최신 마켓리서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무동 4개 층을 쓰는 미미박스 본사는 구내식당, 스튜디오, 매장 등을 갖추고 있다.

옴니채널: ‘모든 것, 모든 방식’을 뜻하는 접두사 옴니(omni)와 유통경로를 의미하는 채널(channel)의 합성어로 모바일·온라인·오프라인에서 같은 가격과 조건으로 쇼핑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1343호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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