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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돈키호테'의 ‘화폐환상’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화폐 명목가치를 구매력으로 오해하는 현상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이 문장에 [돈키호테]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예측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사람을 흔히 ‘돈키호테 같다’고 한다. 돈키호테는 411년 전인 1605년 발간된 [재치있는 시골귀족, 라만차의 돈키호테]의 주인공으로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인물이다. 문학 속의 인간을 창조해낸 것은 [돈키호테]가 최초다. 돈키호테는 연극·오페라·발레·영화 등 수많은 매체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찰스디킨스, 프란츠 카프카, 월리엄 포크너, 밀란 쿤데라 등 문인들이 보낸 찬사는 상상 이상이다. 세르반테스는 서양문학사에서 세익스피어와 같은 반열에 올라있다. 기묘하게도 두 사람은 1616년 4월 2일 동시에 운명했다.

시대적 배경은 17세기 스페인의 라만차 마을이다. 시골 귀족인 알론소 키하노는 기사 소설을 읽는 것이 취미다. 하지만 기사 소설에 탐닉한 나머지 자신을 스스로 편력기사(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무사수행자)라고 믿게 된다. 자신의 이름은 돈키호테로, 집에서 기르던 야윈 말에겐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마을의 한 처녀를 둘시네아 공주라고 상상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불의를 무찌르러 떠난다. 순진한 산초 판사는 자신의 당나귀를 타고 돈키호테를 따라나선다.

광인 이야기로 포장해 풍자

돈키호테는 환상에 빠져있다. 주막을 성이라고 생각하고, 주막집 주인을 성주라고 믿는다. 풍차는 거인이다. 장례행렬을 인도중인 신부는 시신을 탈취한 악당이다. 양떼는 군대다. 면도용 대야를 쓴 이발사는 황금투구를 쓴 기사다. 돈키호테의 눈에 사람들은 퇴치해야 할 마법사가 되었다가, 싸워야 할 기사가 되었다가, 보호해야 할 공주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승리는 많지 않다. 풍차에게는 내동댕이 처진다. 양떼를 지키는 목동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주막집에서도 주막집 주인과 마부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다. 갤리선 노예들을 구해주지만 오히려 그들에게서 돌팔매질을 당한다. 매번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멍이 드는 험난한 편력기사의 길이다.

시공사가 펴낸 [돈키호테]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돈키호테 전편에는 총 659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이 중 150명은 실제로 대화하고 행동한다. 귀족이나 부유한 상류층뿐 아니라 건달·매춘부·깡패·이교도 등 다양한 사람이 소설에 등장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무적함대의 패배 이후 쇠망해가던 스페인 사회를 풍자했다. 국왕과 교회의 서슬이 퍼런 때 사회를 직접 비판하는 글을 쓸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도입한 장치가 ‘광인’이다. 미친 사람이 하는 얘기여야 잡혀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읽다가 광인이 된다. 요즘으로 치면 게임에 빠졌다가 현실과 게임을 구분 못하는 것과 같다. 환상과 착각, 망상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만 빠지는 것이 아니다. 매우 합리적인 사람도 빠진다. 경제 주체들도 다름 아니다. 종종 ‘화폐환상(Money Illusion)’을 겪는다. 화폐환상이란 화폐의 명목가치를 구매력으로 오해하는 현상을 말한다. (명목)임금이 3% 올랐더라도 물가가 3% 오르면 실제 임금상승률은 0%지만 여전히 3% 오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동경제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 등은 재밌는 실험을 했다. 3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A의 경우 입사 첫해 인플레이션은 0%, 2년차 연봉이 2% 인상됐다. 3만 달러 연봉을 받는 B는 입사 첫해 인플레이션이 4%였고, 2년차에 연봉이 5% 인상됐다. 명목임금은 B가 많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임금은 A가 많다. 트버스키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따지면 누가 더 유리한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응답자의 71%가 A가 더 유리하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실질임금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질문을 바꿔봤다. 또 다른 실험 참자가에게 “누가 더 행복할까”라고 물었더니 64%는 B가 행복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실험자들에게는 “2년차에 다른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때 두 사람 중 누가 옮길 확률이 더 높을까”라고 물으니 응답자의 65%는 A라고 답했다. 실질가치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명목임금을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예컨대 옆집 아파트 가격이 3억원에서 4억원으로 오를 때 내 아파트도 3억원에서 4억원으로 올랐다면 상대가치가 달라진 것은 없지만 괜히 기분은 좋아지는 것과 같다.

화폐환상 때문에 가벼운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사업주는 임금을 올려 노동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면서도 실제 부담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빙 피셔는 1919년 ‘달러 안정화’라는 글에서 화폐환상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다.

마이너스 금리로 낮췄는데도 경기는 왜 살아나지 않을까? 여기에도 화폐환상이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대출이자를 절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소득도 줄어들어 실제로는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예컨대 대출금리 5%를 2%로 낮출 때 예금금리도 4%에서 1%로 떨어뜨린다면 예대마진은 3%포인트로 똑같다.

경제 주체들이 쉽게 빠지는 또 하나의 착각은 ‘재정환상(fiscal illusion)’이다. 재정환상이란 재정 지출의 효과는 크게 보는 반면 재정 수입을 위한 부담은 평가절하하는 것을 말한다. 재정을 마련하는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복잡할 때 대중은 이런 착각에 잘 빠진다. 또 재정에 대한 부담을 먼 미래에 지게 될 때도 재정환상이 손쉽게 일어난다.

재정환상 이용해 ‘큰 정부’ 만드는 정치인들

정부의 복지 지출이나 공공사업 지출 비용은 결국 국민들에게 세금명세서로 날아온다. 그 명세서는 소득세 같은 직접세가 될 수도 있고, 부가세 같은 간접세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교통 범칙금이 될 수도 있지만 납세자들은 종종 이를 잊는다. 정치인들은 이 같은 재정환상을 이용해 ‘큰 정부’를 만든다.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인위적 경기 부양은 종종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 총알이 되는 국채 발행은 먼 미래 아이들이 갚아야 할 돈이라 지금은 바로 체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마침내 이성을 찾지만 곧 죽음을 맞는다. 꿈을 잃어버린 돈키호테는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던 셈이다. 이상주의적 열정을 가지고 이룰 수 없는 꿈에 도전하는 돈키호테의 정신은 ‘키호티즘(quixotism)’으로 되살아났다. 도전의식을 잃고 갈수록 무력해지는 한국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인물이 돈키호테가 아닐까. 키호티즘은 한국 사회가 긴급히 수혈받아야 할 정신일지 모른다.

1354호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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