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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의 법과 기업 이야기 (1) 이사회] 믿었던 이사들이 반기를 든다면… 

이사회 구성, 이사진의 신뢰가 경영구도 향방에 큰 영향 

장윤정 법무법인 지평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여성벤처협회 고문 변호사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처럼, 회사는 이사회를 통해 기업의 경영목표와 전략을 설정하고 세부사항을 정해 집행해 나간다. 예산을 짜고 지출을 결정하고 필요한 자금 확보 방안을 마련해 실행한다. 사람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는 것처럼 기업도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하고, 몸집이 무거워지면 분할해서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필요한 경우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줄곧 이사회가 진두지휘한다. 대표이사가 기업의 경영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면 그에 맞는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들의 신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주주총회에서 보통결의로 선임된 이사들은 이사회를 구성한다. 이사회 결의는 법령과 정관에서 특별히 다르게 정하지 않았다면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이사 과반수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이런 이유로 정관에 이사회 정원을 홀수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라면 적어도 2명, 7명으로 구성돼 있다면 적어도 4명의 찬성표를 받아야 특별결의를 요하지 않는 통상의 업무집행에 필요한 이사회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합작회사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사회 정원을 짝수로 정하기도 한다. 양대 주주의 주식 소유 비율이 비슷하고 주주 간 계약으로 이사 추천권도 동일하게 보유하는 경우다. 서로 견제하면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어느 한쪽이 안건을 통과 시키려면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고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장점도 있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릴 경우 이사회에서 안건이 통과되지 않아 고착 상태의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합작회사 등에선 이사회 정원 짝수로 정하기도

엔지니어 출신인 갑은 벤처기업을 세워 15년 간 밤낮없이 일하고 노력한 결과 회사를 상장시켰고, 자신의 지분을 매각해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갑은 자신만의 전문 기술과 업계에서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지분율이 대폭 줄었지만 여전히 회사의 공동대표이사로 남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권과 주식을 매각할 때 체결한 주주 간 계약에 따라 새로운 대주주가 지명한 이사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게 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인간관계가 처음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시작하기 때문에 기대와 현실이 달라지게 되는 게 대부분이다. 사업 파트너도 마찬가지다. 처음 주식매매 거래를 하면서 앞으로 우리 회사를 이러저러하게 멋지게 운영해보자고 주주 간 계약을 하며 의기투합하지만, 회사에 대한 비전이나 회사로부터 얻고자 하는 이익이 사업 파트너 간에 완전히 일치하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같은 점에서 시작해 아주 작은 각도만큼 벌어졌지만 갈수록 멀어지는 두 개의 반직선처럼, 이해관계를 달리하기 시작한 파트너들은 결국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치닫게 되고 만다.

5명의 이사 중 갑의 편은 사외이사 1명뿐이었다. 그런데 사외 이사는 사내이사만큼 회사 사정에 정통할 수 없고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이유도 있어서 적극적으로 이사회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이사들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내 생각을 지지해 주는 지원군이 없으면 찬성의견이든 반대의견이든 자신있게 설득하지 못하고 위축되게 마련이다. 다른 공동대표이사를 포함한 나머지 3인은 갑의 반대에도 무리한 사업계획을 제안하고 통과시켜 회사에 손해를 끼치게 했다.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는 그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만 이는 사후 약방문일 뿐이다. 애초에 뜻이 잘 맞고 능력 있는 이사들로 이사회를 구성했을 때에 비한다면 정신적·경제적 손실이 막대하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은 대주주나 대표이사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사회가 기업 경영에서 최종 의사결정 기관의 역할을 잘하려면 어떤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대주주나 대표이사를 견제하기 위한 사외이사 제도도 이런 목적에서 도입됐다. 상법은 상장회사의 경우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사업 연도 말 현재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경우에는 사외이사를 3인 이상으로 하되 과반수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사회의 어떤 결의 내용이 이사들의 심도 있는 검토와 적정한 절차에 따라 신중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결국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사외이사는 자신이 이사회에 참석해서 결의에 찬성한 적이 없으니 나는 모르는 일이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사외이사 역시 이사로서 선관주의의무, 충실의무, 감시의무가 인정된다. 오히려 사외이사가 객관적인 위치에서 이사회의 결의와 회사의 경영상태를 감시·감독하도록 하려는 본래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사외이사는 그 책임을 피할 수 없고,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좋은 파트너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날 믿었던 이사들이 대표이사에게 반기를 든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A 법인의 대표 을은 여느 때처럼 이사회에 참석했다. 안건을 토의하던 중 이사 중 한 명이 갑자기 이사회 소집통지서에 기재되지도 않은 대표 해임안을 발의했고, 다른 이사들도 발의한 이사와 대표의 눈치를 살피다가 찬성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황망해 하는 대표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에서 대표 해임안이 의결됐다.

법인인감은 대표이사가 꼭 보관해야

차분히 법과 정관을 살펴보니 이사회는 대표를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고, 이사회 소집부터 결의까지 절차상 하자도 중대했다. 그렇더라도 대다수의 이사가 대표에게 등을 돌린 상태에서는 현실적으로 대표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궁리를 하다가 다시 한번 정관을 샅샅이 살펴보니 대표가 신규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조항이 눈에 띄었다. 정관의 규정에 따라 신임 이사들을 선임한 후 향후 법정 분쟁을 예상해 특별히 법과 정관에 따른 절차를 정확히 지켜서 이사회를 소집한 후 기존의 이사들을 해임하고 해임등기를 마쳤다. 대표를 해임한 이사회와 기존 이사들을 해임한 이사회 중 어떤 것이 적법·유효할지는 최종적으로 법원이 판단하겠지만, 기존 이사들이 등기에서 말소되었다는 사실은 을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등기 신청 때는 물론이고 회사의 모든 법률행위에 법인인감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법인인감을 둘러싼 지저분한 분쟁이 종종 발생한다. 대표이사가 재무이사에게 법인인감을 맡겨 놓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아무리 편리한 점이 있고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더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반드시 대표이사가 보관할 것을 권한다.

회사가 사람이라 치면 이사회는 뇌, 임직원들은 팔·다리·손·발쯤 될까. 내부의 중요한 장기들은 사업부서이고 혈액은 자본에 비유할 수 있겠다. 모든 기관이 조화를 이뤄 각자의 기능을 다할 수 있어야 건강한 것처럼 회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윤정- 법무법인 지평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여성벤처협회 고문 변호사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NYU School of Law에서 LLM 과정을 마치고 College of William and Mary Law School에서 객원연구원(Visiting Scholar)으로 연구 활동을 했다. 2000년부터 기업 인수·합병을 비롯한 기업 자문 업무와 지적재산권 자문 업무를 하고 있다.

1353호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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