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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집 어때요? 

콘크리트 일변도에서 탈출하려는 독창적 시도 … 대나무로 만든 학교도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ted.com
콘크리트에 갇혀 산다. 잠도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자고, 일도 콘크리트 빌딩에서 한다. 아이들도 콘크리트 학교에 다니고, 범죄자들도 콘크리트 교도소에서 시간을 축낸다. 잠깐씩 한옥이나 전원주택을 꿈꿔 보지만 도시에 매인 처지에 달리 도리가 없다. 콘크리트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세기 중반경이니까 이제 200년쯤 됐다. 사실 콘크리트는 산업화 시대의 얼굴이다.

산업화 시대가 신봉하는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생산과 소비가 발생하는 거점에 사람들을 집약시켜야 한다. 값싸고 강력한 콘크리트가 이것을 가능케 했다. 산업화 시대는 화석연료가 견인하고 콘크리트가 받쳐준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리에 등장한 대나무 하우스


▎엘로라 하디가 이끄는 이부쿠 팀에서 만든 대나무 집의 유선형 지붕은 한옥의 기와 지붕을 연상케 한다. / 사진: 중앙포토
이렇게 대단한 콘크리트지만 운치와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색깔을 입혀도 속살은 여전히 싸늘한 회색이다. 우리 도시가 점점 더 건조하고 삭막한 공간으로 변해가는 책임에서 콘크리트는 자유로울 수 없다. 콘크리트 숲 중간 중간에 흙이나 나무, 돌로 만든 자연친화적 건물이 있으면 전체 그림이 좀 나아질 텐데 비용이나 관리 부담이 만만치 않다. 허나 시대가 변하면 건축도 변해야 하는 법, 지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새로운 건축이 시도되고 있다. 놀랍게도 그 재료는 풀이다. 그것도 우리가 광주리나 죽부인에서 많이 봐 왔던 흔하디 흔한 야생풀, 대나무이다.

엘로라 하디(Elora Hardy)는 대나무로 집을 짓는다. 발리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친환경적이고 예술성 있는 건축을 고민하다가 자재에 주목했다. 그녀의 눈길이 닿은 것은 발리 곳곳에서 자생하는 대나무였다. 대나무는 잘 사용하기만 하면 아주 좋은 건축 재료가 된다. 우선 알아서 잘 자란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도 있듯이 비 온 뒤에 가보면 아무데서나 거짓말처럼 쑥쑥 자란다. 전 세계에는 무려 1450여종의 대나무가 있는데, 그중에는 길이가 20m에 육박하는 것도 있다. 일단 사이즈와 양에서 건축자재로 합격이다. 또 철과 맞먹는 인장력과 콘크리트에 견줄 만한 압축강도를 가질 정도로 튼튼하다. 자체 탄력이 있기 때문에 지진이나 태풍을 견디는 힘도 강하고, 속이 비어 가볍기 때문에 운반도 편하다. 표면도 매끄럽고 고급스럽다.

하디의 대나무 하우스는 건물 전체는 물론 가구까지 대나무로 되어 있다. 자연에서 자란 대나무의 모양과 크기는 공장에서 만든 것처럼 획일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만든 집은 모두 맞춤집이다. 6층짜리도 있다. 대나무 집을 만드는 과정은 집을 짓는다기보다 작품을 만드는 쪽에 가깝다. 우선 집의 모양을 3D로 설계하고, 대나무로 축소 모형을 만든다. 이때 대나무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축소 모형을 현장으로 가져와, 실제 집의 크기와 모양에 맞도록 가장 적합한 대나무를 골라 건축을 시작한다. 벌레를 막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사전에 붕사(硼砂, borax) 처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하우스’ 강연 동영상.
대나무라는 자재의 좋은 점을 최대한 살리고, 한계를 극복하려다 보면 새로운 도전과 함께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된다. 지붕을 크게 휘어지는 형태로 만들 수 있어서 자연의 미풍을 집안으로 돌릴 수 있다. 에어컨이 필요없다. 벽도 최소화해서 공기 순환을 좋게 한다. 방의 모양도 천편일률적인 직사각형에서 벗어나 유선형 등으로 멋을 더하고, 문도 원이나 물방울 모양 등 용도와 성격에 최대한 어울리게 만든다. 천장도 합판을 가지고 편평하게 하는 대신 대나무를 엮어서 짜는 방식으로 한다. 대나무들간 연결은 강철 못 대신 손으로 깎은 대나무 핀을 사용한다. 바닥은 광택이 있고 내구성이 좋은 대나무 껍질을 그대로 살려 만든다.

그녀는 발리 현지의 숙련된 공예가·건축가·디자이너들과 함께 이부쿠(IBUKU, 인도네시아어로 ‘내 엄마 지구’)라는 팀을 만들어, 지금까지 5년 넘게 50여 채의 독창적인 대나무 건축물을 짓고 있다. 각각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건축물이다. 이부쿠 홈페이지(ibuku.com)에는 엘로라 하디의 포트폴리오가 소개되어 있는데, 우리의 원두막 비슷한 작은 집은 수출까지 계획하고 있단다.

건물은 용도와 위치에 어울릴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이제 익숙해 질만도 한데 여전히 서울시청사가 당황스러운 이유다. 딱 번지수를 착각해 불시착한 우주선이다). 하디의 대나무 집이 진가를 발한 것은 아이들을 위한 친환경 학교 건축에서다. 그녀의 아버지 존 하디(John Hardy)는 캐나다 태생으로 일찍이 발리로 이주해 보석 디자이너로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 영화에 감동해 은퇴 후의 삶을 뭔가 뜻깊은 일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학교였다. 그냥 학교가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일조할 ‘불편하지 않은’ 학교였다. 그는 2008년에 발리 숲 속에 친환경 대안학교 그린스쿨(Green school)을 설립한다. 교육 과정이 친환경이라면 당연히 건물도 그래야 하는 법. 그는 그린스쿨 캠퍼스를 대나무 집으로 채웠다.

주변의 정글과 논 사이에 맞춤형으로 세워진 캠퍼스에서는 40개국 이상의 500여 명의 학생과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교사, 자원봉사자가 생활한다. 대나무로 만든 교실에는 벽이 없고 선생님들은 대나무 칠판에 판서를 한다. 아이들이 쓰는 책상도 대나무로 만든 유선형이다. 교실에는 자연 채광과 자연 바람이 들어온다. 그린스쿨은 전인(全人)주의(Holism) 교육을 표방한다. 아이들은 흙을 밟고 자연 속에서 벼농사를 짓고 돼지도 키운다(지역사회에 대한 공헌 차원에서 20%는 발리 현지 아이들이다).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환경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며 자연인으로 자란다. 아, 원시인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영국 시험 과정에 대비해 영어와 수학도 배운다. 2014년 8월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격려차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건축물이 창의력 키우는 촉매돼야

사실 콘크리트 건물만큼 편한 게 없다. 다만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건축 설계뿐 아니라 자재도 해당 건물의 용도와 지향에 맞아야 한다. 우선 노후화된 공공기관 건물을 신축할 때 정부가 모범을 보였으면 한다. 과학이나 기술 관련 부서라면 초고강도 강철이나 탄소섬유 같은 미래형 소재를, 문화나 관광 관련 부서라면 나무나 기와를 사용하면 어떨까. 개인 주택이나 아파트의 디자인과 재질도 더 다양해져서 고르는 재미, 사는 재미가 배가되었으면 한다. 가뜩이나 창의력과 독창성이 중요한 때다. 매일 마주치는 건축물이 자취조차 가물가물한 일말의 창의력에 불을 붙이는 촉매가 되었으면 한다.

아, 꼭 한번 대나무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분들은 자녀와 함께 발리로 가면 된다. 그린스쿨(www.greenschool.org) 교육과정은 유치원, 초등교육(1~5학년), 중등교육(6~8학년), 고등교육(9~12학년)으로 나뉜다. 아무래도 사립이다 보니 돈은 좀 든다. 신입생 등록금이 4000~4500달러, 수업료는 1년에 1만2000~1만6000 달러 정도란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353호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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