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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외래 병해충 피해] 슬그머니 들어와 삽시간에 전국 습격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교역·여행객·온난화로 문제 심각해져... 박멸 어려워 조기 발견·신고가 최선

올해 7월 16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신고가 접수됐다. 충북 제천시 한 사과 과수원에서 과수화상병으로 의심되는 나무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제천시 농업기술센터의 신고를 받아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급하게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나흘 만에 나온 결과는 ‘양성’. 이 과수원에 바로 폐원 결정이 내려졌다. 불에 탄 것처럼 과일과 잎이 말라붙는 과수화상병은 전염성이 높다. 다른 과수원에 번지지 않도록 방역하려면 나무 뿌리까지 다 뽑아 생석회와 함께 파묻는 방법밖에 없다. 과수화상병은 지난해 처음 한국에서 발견된 외래 병해충이다. 올 들어서만 과수화상병으로 6개 시·군에서 43개 과수원이 문을 닫아야 했다.

못 보던 외래 병해충의 습격이 해마다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올 여름 떼지어 나무에 붙어있거나 바닥에 죽어있는 손톱만한 크기의 검회색 벌레가 많았다. 바로 갈색날개매미충이다. 대표적인 외래 병해충이다. 2010년 충남과 전북 일부 지역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불과 6년 만에 전국으로 번졌다. 올해는 경기·강원에서 충북·대전·세종·경남·경북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해마다 4월 알 제거에서 시작해 5월과 6월 정부·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대규모 방역을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조장용 식물검역기술센터장은 “외래 병해충의 특징은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고 피해 규모가 크다는 점”이라며 “국내에서 그동안 발생되지 않아 적합한 농약이 개발·보급되지 않은데다 천적과 적절한 예방법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이어 “외국과 교역량이 늘고 있고 해외를 오가는 사람도 급증하면서 외래 병해충 유입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온난화로 한국의 기후가 바뀌고 있는 점도 외래 병해충이 잘 자리잡는 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외국에서 건너온 병해충은 사람과 사람 간에 옮는 병과 달리 정확한 유입 경로를 밝히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해 해외 여행객이 인천공항을 통해 몰래 들여오다가 적발 폐기된 망고ㆍ여지ㆍ망고스틴 같은 열대 과일이 123t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수입 식물을 검역하는 과정에서 병충해를 발견한 건수는 2014년 7885건에서 2015년 1만2074건으로 53.1% 급증했다. 그만큼 외래 병해충에 대한 경각심이 일반 여행객이나 수입업자 할 것이 없이 희박하단 얘기다. 농촌진흥청 병해충방제팀의 이경재 농촌지도사는 “외국에서 신었던 신발에 뭍은 흙, 무심코 가방에 넣어온 망고와 바나나에 있던 알이나 병원균이 전국에 큰 피해를 입히는 병해충으로 번질 수 있다”며 ‘차단 방역’이 최고의 예방이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한국을 뒤덮고 있는 악성 외래 병해충의 면면을 소개한다.


▎사진: 농촌진흥청·농림축산검역본부 제공
①갈색날개매미충: 10㎜ 안팎의 손톱 만한 크기에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 날개가 특징이다. 정확한 유입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2010년만 해도 충남 공주시와 예산군, 전북 순창군과 김제시 등 단 4곳에서 목격됐다. 2011년 전남 구례군에서 대량으로 발생했고 2016년 현재 ‘전국구’ 해충이 됐다. 번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2014년 4800㏊였던 발생 지역이 2015년 6958㏊로 늘었다. 올해 들어선 1만1276㏊로 발생 지역이 1년 새 2배 가까이로 넓어졌다. 갈색날개매미충은 한해살이 곤충이다. 죽기 전 나뭇가지 안에 알을 낳는다. 알 상태로 겨울을 나고 다음해 5월께 부화한다. 한 달이면 유충(어린 벌레), 세 달이면 성충(다 자란 벌레)이 되는데 단계별로 식물에 피해를 준다.

갈색날개매미충이 알을 깐 나뭇가지는 바로 다음해면 말라죽는다. 다 자란 갈색날개매미충은 나무즙을 빨아먹고 산다. 그리고 흰색이나 노란빛을 띄는 분비물을 내뿜는다. 때문에 갈색날개매미충이 많이 붙어있는 나무는 말라죽거나 그을음병(나뭇가지나 잎에 그을음처럼 얼룩이 생기는 병)에 걸린다. 산수유나 감, 매실 농장에서 잘 번지는데 나무를 죽이거나 과실의 상품성을 크게 떨어지게 한다. 16개 종류의 화학·천연 방제 약제가 개발·등록돼 있지만 완전 박멸은 쉽지 않다.


▎사진: 농촌진흥청·농림축산검역본부 제공
②꽃매미: 회색빛에 점박이 무늬의 겉날개를 펼치면 밝은 주홍색의 뒷날개가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손톱보다 조금 큰 15㎜ 길이의 벌레다. 중국에서 건너온 해충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유입 경로는 역시 드러나지 않았다. 2006년 서울시 관악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2010년을 전후해 전국에 대량으로 발생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에서 대대적인 방역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2016년 현재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전 산림 지역에서 많이 서식했는데 최근엔 과수원에 주로 출몰한다. 포도와 대추, 배, 복숭아, 매실, 감, 살구까지 과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역시 수액을 빨아먹으며 그을음병을 유발한다. 유입 10년째가 넘어가며 알에 뿌리면 95% 방제가 가능한 ‘클로르피리포스 유제’를 비롯해 60여 가지에 달하는 약제가 개발·보급돼 있다. 꽃매미의 천적인 중국의 벼룩좀벌을 들여와 방제하는 기술도 검토하고 있다. 꽃매미는 가죽나무를 특히 좋아하는데 여기에 약제를 주사해 덫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전국적인 방역이 이뤄지면서 개체 수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 기세가 꺾인 것은 아니다. 발생 빈도나 밀도가 줄었을 뿐이다.


▎사진: 농촌진흥청·농림축산검역본부 제공
③미국선녀벌레: 흰색 날개를 지닌 몸길이 5㎜ 정도의 작은 곤충이다. 이름 그대로 원산지가 북미 지역이다. 2009년 경남 밀양시에서 처음 나타났다. 이듬해인 2010년 충남·충북과 다른 경남 지역으로 번졌고 지금은 거의 전국에 출몰한다. 5월에 부화해서 두 달이면 성충이 된다. 여름철 기승을 부린다. 성장 단계마다 식물에 해를 끼친다. 유충은 잎을 갉아먹고, 성충은 수액을 빨아먹어 나무에 피해를 입힌다. 미국선녀벌레 성충은 흰색의 왁스 물질을 분비하는데 보기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을음병도 유발한다. 지난해 4026㏊였던 발생 면적이 올 들어 8116㏊로 늘었을 정도로 확산 속도가 빠르다. 감나무나 배나무 같이 잎이 넓은 나무에서 많이 번식해 과수 농가의 피해를 키우고 있다. 일반 약제로는 잘 죽지 않는다. 이미다클로프리프 등 미국선녀벌레용 살충제가 15종류 정도 정부에 등록돼 있다. 천적을 활용한 생물학적 방제 방법도 현재 검토 단계다. 선녀벌레에 기생해 자라는 선녀벌레집게벌을 들여오거나 미국선녀벌레를 죽게 만드는 병원성 미생물을 살포하는 방법 등이다.


▎사진: 농촌진흥청·농림축산검역본부 제공
④과수화상병: 불이 붙은 것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며 과수가 죽는다고 해서 과수화상병이란 이름이 붙었다. 병원균이 나무에 잠복해 있다가 봄부터 증상이 나타난다. 지난해 경기 안성시와 충북 제천시에서 처음 발생했다. 어떻게 한국으로 유입됐는지 정확한 경로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외국산 농산물에 병원균이 묻어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정도다. 과수화상병은 한 번 발생하면 어떤 약제로도 되살리기 어렵다. 사과와 배나무에 특히 치명적이다. 항생제로도 방역이 잘 되지 않는다. 나무에 잠복해 있는 병원균을 미리 발견해내기도 어렵다. 과수원은 물론 인근 몇㎞ 지역 과수원까지 폐원 조치를 하는 이유다. 치사율도 높고 전염성도 심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와 비슷하다고 해서 ‘과일나무의 메르스’라고 불린다. 때문에 과수화상 병이 발생한 국가의 과일에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리는 나라도 많다. 국내 과수 농가의 추가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검역당국은 조기 발견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병곤 농식품부 검역정책과장은 “잎이나 줄기, 새순 할 것 없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게 변해 말라죽는 현상이 보이면 지체 없이 가까운 농업기술센터나 식물검역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1355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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