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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폐 위기의 도이체방크 어디로 가나] 되살아난 8년 전 리먼의 악몽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미 법무부 15조 벌금에 휘청... 자본 확충 등 위기 탈출 안간힘

▎존 크라이언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는 최근 3000명의 인력 감축안을 발표한 데 이어 10월 6일(현지시간) 재차 1000명의 추가 인력 조정안을 내놨다. / 사진:중앙포토
‘리먼의 악몽’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8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리먼브라더스의 유령을 불러낸 건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다. 독일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이용할 정도로 독일 국민의 자랑이었던 도이체방크가 존폐 위기에 놓이면서 시장에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도이체방크를 벼랑 끝에 세운 것은 미국이다. 미국 정부는 오랜 시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주택 모기지담보대출 유동화증권(RMBS)을 안전한 투자처라고 속여 판매한 은행들을 조사했다. 오랜 조사 끝에 최근 미국 법무부가 도이체방크에 부과한 벌금은 140억 달러(약 15조원). 도이체방크가 벌금을 대비해 충당금으로 쌓아둔 62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였다. 사상 초유의 벌금 부과에 도이체방크 주가는 연초 대비 반 토막이 났고 헤지펀드들은 앞다퉈 돈을 빼내갔다. 시장엔 독일 경제를 지탱하던 도이체방크가 무너지면 연쇄 효과로 은행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세르지오 에르모티 UBS 최고경영자(CEO)가 나서 “도이체방크의 위기가 유럽 은행으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도이체방크에서 시작된 ‘리먼 공포’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도이체방크가 출구를 빨리 찾아내는 것이다. 미국과의 협상이 위기 탈출의 첫 단추다. 최근 독일 정치권에선 미국의 이번 결정이 유럽을 겨냥한 ‘경제전쟁’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며 불안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고 있다. 당초 미국 법무부가 부과하려 했던 벌금액수는 20억~3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불명확한 이유로 140억 달러로 불어났다는 것이다.

도이체방크 역시 빠르게 자구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3000명의 인력 감축안을 발표한 도이체방크는 10월 6일(현지시간) 재차 1000명의 추가 인력 조정안을 내놨다. 주식 매각과 자산 처분을 통해 벌금을 내기 위한 현금 마련에도 들어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투자은행(IB)들은 도이체방크에 약 50억 유로에 달하는 신주발행을 제안한 상태다. 도이체방크는 이들과 주식매각, 자산운용 사업 매각과 같은 자산 처분 방안을 협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이체방크에 대한 독일 정부의 구제금융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민간자본에 의한 구제방식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독일 기업들이 도이체방크 주식을 사들일 준비가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시장은 최악의 경우 독일 정부의 우회 지원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코메르츠방크와의 합병을 통해 도이체방크를 우회지원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양한 출구 모색에도 도이체방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이체방크가 ‘시장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자산이 많다며 도이체방크의 부실을 지적했다. 거래가 드물어 가치평가가 어려운 복잡한 파생상품과 부실채권 보유량이 여타 글로벌 투자은행 대비 2배가량 많다는 것이다. 신(新)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드라크 더블라인 캐피탈 대표는 은행을 둘러싼 시장환경 문제를 지적했다. 경기 부양에 나선 유럽중앙은행(ECB)이 2014년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하면서 은행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도이체방크 사태는 유럽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폐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1355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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