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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수익성 높이려면] 성과에 책임지는 지배구조 확립 시급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경영진 임기 짧고 낙하산 인사 잦아 … 지나친 안전 운영 성향도 약점
“예대마진이 너무 떨어져서 먹고 살기가 힘듭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은행권에선 이런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국내 은행은 ‘가만히 앉아서 돈 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예금과 대출금리 차이를 통한 이자 장사로 편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좋은 시절’은 옛말이됐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은행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업계의 가장 큰 화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은행의 수익성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1.89%였던 국내 은행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2014년 0.55%로 떨어졌다. 물론 이는 은행의 예대마진을 갉아먹는 저금리 영향이 있다. 하지만 저금리·저성장은 거의 모든 국가가 겪고 있는 일이다. 제로금리인 미국의 주요 금융회사 (JP모건·BOA·씨티그룹·웰스파고·HSBC 평균)의 ROA가 2010년 0.58%에서 2014년 0.71%로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은행이 저금리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자본 규모 비슷한 싱가포로 은행에도 수익성 뒤져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비교해도 해외 주요 은행계 금융그룹에 비해 국내 은행의 열세는 뚜렷하다. 지난해 3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의 평균 ROE는 6% 수준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이나 영국의 은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 은행보다 낮은 수준이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지역별 주요 대형 은행의 평균 ROE는 캐나다 14.9%, 미국 10.0%, 일본 7.6%, 유럽 5.2%, 영국 0.2%로 나타났다. 기본 자본 규모가 국내 은행과 비슷한 수준인 싱가포르 주요 은행도 10%를 웃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 수익성 하락의 배경엔 이자수익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점점 더 치열해지는 은행 간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4대 금융그룹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평균 28.9%에 불과하다. 글로벌 100대 은행(국내 은행 제외)의 평균치(39.5%)와 차이가 큰 편이다. 이자이익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보니 저금리 심화가 수익성 하락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저금리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려면 비이자이익 부분을 키우는 게 답이라는 점은 사실 각 은행도 알고는 있다. 은행의 수수료 수익은 위기시에도 담보가치 하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된다. 하지만 은행에선 경쟁이 워낙 치열한 상황이라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과거 독점적 경쟁상태에 있던 국내 은행산업 구조는 2009년 이후 완전경쟁에 근접한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해 대출금리는 물론 비이자서비스의 가격인 수수료를 둘러싼 경쟁도 심화됐다.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선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비이자 부문을 키울 여지가 줄어든다.

이러한 경쟁 상황은 사실 은행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국내 은행 간 서비스가 차별화되지 않고 비슷비슷한 탓이 크다. 어차피 서비스에 차이가 없다면 가격이 싼 곳을 찾는 게 소비자로선 당연하다. HCM투자증권 김진상 애널리스트는 “국내 은행 수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니까 수수료 책정에서 은행이 주도권을 갖기가 힘들다”면서 “또 각종 서비스는 수수료 없이 무료로 해주는 게 국내 은행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도 이유”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미국이나 일본 은행이 고객에게 부과하는 계좌유지 수수료의 경우 국내에선 한국씨티은행이 이제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에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 고객들은 ‘은행에 예금을 해줬는데 왜 수수료까지 내야 하느냐’는 거부감이 강하다. 돈을 지불할 정도로 수준 높은 금융서비스를 제공 받고 있다는 인식을 은행이 심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 은행은 계좌유지 수수료 때문에 고객들이 주거래 은행에 거래를 집중하는 데 비해 국내 은행은 그런 비용이 들지 않다보니 고객들이 자유롭게 여러 은행과 거래를 한다”면서 “게다가 정부가 계좌이동제 등 고객 유치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서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안전하게 운영하려는 국내 은행의 보수적인 성향도 은행업의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서정호 선임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위험 부담을 하지 않고 가계대출처럼 안전자산 위주의 시장에만 집중해왔다”며 “이로 인해 은행의 건전성은 좋아졌지만 그만큼 수익성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은행의 위험회피 성향은 각종 수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중하위등급(6등급 이하) 차주에 대한 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취급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고, 중소기업 대출 중 담보·보증부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은행의 수익성과 건전성이 지나치게 주택가격 변동성에 연동돼있다는 점은 잠재적인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수익성 악화되는데 비용은 상승 곡선

수익성은 악화되는데 비해 경비비용은 경직적이라는 점은 국내 은행의 약점으로 꼽힌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임금 총액은 2010년 16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26조8000억원으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은행의 총이익(이자+비이자이익) 대비 임금의 비중은 이 기간 동안 7.6%에서 10.6%로 늘어났다. 이는 은행 측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이기도 하다. 연공서열에 기반해 보상이 이뤄지는 호봉제 구조에서는 사회 전반적인 고령화와 맞물려 인건비 부담이 과도하게 커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금융노조 측은 은행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은 관치금융이라며 맞받아친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나 계좌이동제 같은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상품·서비스가 은행의 수익성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은행권이 수수료 인상에 소극적인 것도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서라고 지적한다. 사측과 노측이 각자의 입장에 맞춰 수익성 하락의 원인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은행이 수익을 다변화하기 위해 해외 진출이나 투자은행·자산관리 등 신규 시장을 개척하고 비용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나왔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설 만한 주인이 없다는 점이다. 김진상 애널리스트는 “은행에 주인이 있다면 수익성을 일차로 생각하고 전략을 취하겠지만 지금은 직원도 생각하고, 정부도 생각해야 하다보니 이도 저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은행 경영진이 임기는 고작 2~3년이다. 경영진 입장에선 일을 열심히 해서 받을 보상에 비해 실패 시 받을 패널티가 더 크다. 일부 은행에선 성과와 상관 없이 사실상 정부가 낙점한 인사가 행장에 오르기도 한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해야 할 동인이 없는 셈이다.

1356호 (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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