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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절체절명의 위기 극복하는 타개법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바둑에서 공격의 반대 개념... 고수는 상대 약점 파고들어 실마리 찾아

▎조치훈 9단의 기풍은 타개형으로 분류된다.
‘난국을 타개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위기에 몰린 대마 즉 대기업을 살려내는 것이 바로 타개에 속한다. 바둑에서는 특별하게도 ‘타개(打開)’란 말을 매우 흔하게 사용한다. 그만큼 위기에 몰린 돌을 타개하는 노하우도 많다. 바둑에 나오는 타개의 기술을 살펴보고 비즈니스에서의 교훈을 알아보기로 하자.


타개와 방어: 바둑에서 타개는 ‘공격’의 반대말로 쓰인다. ‘공격은 최선의 수비’와 같이 일반적으로 공격과 대비되는 말은 ‘수비’나 ‘방어’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는 공격적인 축구와 수비적인 축구로 구분한다. 그러나 바둑에서는 ‘타개’를 흔히 공격의 반대말로 쓴다. 물론 수비나 방어도 있다. 일본의 이시다 9단이 영어로 쓴 <공격과 방어(Attack&Defense)>란 책도 있다. 여기서 방어는 수비와 타개 등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바둑팬들은 타개할 때 수비나 방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타개와 수비의 차이를 실제 장면을 통해 알아보자.

[1도]와 같은 모양에서 백1로 다가와 A의 침입을 노린다고 하자. 그 침입을 방지해 흑2로 지키는 수가 ‘수비’다. 흑2와 같이 한 칸 뛰는 수는 수비수로 흔하게 두어진다. ‘중앙으로 한칸 뜀에 악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도]에서 흑진에 백1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흑2로 씌워 공격한다. 밖으로 나갈 길은 잘 보이지 않으니 백1이 상당히 위험해 뵌다. 이 돌을 살려내는 것이 ‘타개’다. 지금 상황에서는 백1 한 점을 구출해 내는 것이지만, 때로는 커다란 대마를 살려내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수비와 타개는 차이가 있다. 바둑에서는 수비보다 타개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프로기사의 기풍 즉 바둑스타일을 구별할 때도 ‘공격형’과 ‘타개형’으로 구분한다. 유창혁 9단이나 가토 마사오 9단 같은 공격형이 있고 조치훈 9단이나 왕년의 사카다 에이오 9단이 타개형으로 꼽힌다. 이세돌 9단은 전투의 화신으로 불리는데, 공격형보다는 타개형에 가깝다.

바둑에서 이렇게 타개 부문이 특별하게 발달된 것은 돌이 잡히면 출혈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영토싸움을 하다 보면 돌이 위험에 처할 때가 있고 이런 돌을 잘 타개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비즈니스나 국가 경영에서도 위기국면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내는 위기관리가 중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타개의 기술: 위기에 몰린 돌을 타개하려고 할 때는 어떤 기술을 쓰는 것이 좋을까? 일반적으로 타개의 기술은 공격의 기술과 반대가 된다. 흔히 공격할 때는 적군을 돼지처럼 살찌워서 잡으려고 한다. 공격 목표가 무거운 모습이면 더욱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 돌을 타개할 때는 무거운 돌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요령이다. 달아날 때는 가급적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이다.

또한 적군을 공격할 때는 가급적 많은 반대급부를 지불하도록 하는 전략을 쓴다. 고수들은 상대편 대마를 공격하면서 실리(집)이나 세력 등 부수적인 전과를 올리려고 한다. 적군을 살려주더라도 상당한 대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타개할 때는 가급적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돌을 살려내려고 이런저런 손실을 너무 많이 보면 안된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살려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면 차라리 폐업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손해를 최소화하면서 살려내는 것이 타개의 묘인 것이다.

이 밖에도 타개의 요령은 많이 있다. 그중에서 고수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하수들이 잘 흉내 내지 못한다. 그것은 상대편의 약점을 찾아내 타개를 하는 방법이다. 하수들은 위기에 몰리면 심리적으로 당황해 달아나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고수들은 상대방 돌과의 관계 속에서 침착하게 타개의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한다.

[3도]는 ‘타개의 사카다’로 불린 왕년의 최고봉 사카다 에이오 9단이 둔 바둑이다. 백◎의 돌들이 미생으로 위험한 모습.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사카다 9단은 백1로 흑의 급소를 때렸다. 위험한 상태에서 달아나지 않고 상대의 급소를 치다니 시류를 모르는 이상한 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흑2로 움직일 때 백3을 이용해 백5 이하로 모양을 갖추자 순식간에 백이 수습된 모습이다. 상대방의 급소를 찔러 그 돌이 움직이는 틈에 타개의 실마리를 갖춘 기법으로 백의 타개술에 감탄사가 나온다. 이처럼 위기가 닥쳤을 때 주변 상황을 잘 살펴 타개의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다. 당황하면 이런 수단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비즈니스의 타개: 타개의 개념은 비즈니스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회사 경영에서도 크고 작은 위기가 언제든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평균수명은 중소기업 17년, 대기업 32년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어떤 면에서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기업이 쓰러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능력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난국을 타개해 회사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고 나면 많은 사람이 실업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바둑의 타개법이 기업이나 국가의 위기관리에 도움이 될까? 위기에 대처하는 마음가짐과 요령은 비슷하니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몇 가지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위기가 왔을 때 타개가 가능한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살릴 가망이 없다면 타개를 시도하는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기업도 회생 가능성이 있을 때 재정 지원 등을 해야 할 것이다. 바둑고수들은 가망이 없을 때 그 돌을 포기하거나 잠정적으로 손을 빼는 전략을 쓴다. 또는 다른 것과 바꿔치기를 시도한다.

둘째, 가능하면 조직이 무거워지지 않게 관리해 두는 것이 좋다. 몸집이 무거워지면 운신이 불편해진다. 위기가 왔을 때 이런 회사는 타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바둑고수들은 돌을 가급적 ‘탄력 있게’ 만들어둔다. 몸집은 가볍지만 신축성이 풍부한 상태를 탄력이 있다고 한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둔다면 위기가 왔을 때 벗어나기가 쉬울 것이다.

셋째, 상황에 따라서는 돌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어느 CEO의 말처럼 어느 것이든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타개가 쉬어진다. 현재의 상태를 무조건 고수해야 한다는 경직된 사고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실제로 바둑에서는 언제든지 교환하거나 버릴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해 타개를 용이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앞에서 본 상대방의 약점과 같은 급소를 찾아 타개를 할 수도 있고, 주변의 응원군을 이용하는 타개법도 있다. 가능하다면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스스로 위험 요인을 만든다면 아무리 타개의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바둑에서 위기에 처한 돌을 구출해 내는 타개의 개념과 기술을 알아보았다. 어려움에 처한 상태라면 바둑의 타개법과 사고방식을 응용해 보시기 바란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58호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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