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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거듭하는 막걸리] 크림치즈 막걸리 한 병 주세요~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젊은층 사로잡으려 바나나·청포도·멜론·밤 맛 제품 내놔 … 과일맛 소주, 수입맥주 등과 경쟁

박성훈(36)씨는 요즘 대형마트에 갈 때면 꼭 빼놓지 않고 막걸리를 구매한다. 일반 막걸리가 아니다. 바나나맛·복숭아맛 막걸리를 주로 산다. 지난해만 해도 수입맥주를 주로 구매했지만 지금은 막걸리에 푹 빠져 있다. 박씨는 “막걸리의 텁텁하고 시큼한 맛을 좋아하지 않아 즐기지 않았다”면서 “최근 나오는 다양한 막걸리는 이런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어서 자주 마신다”고 말했다.

막걸리는 쌀이나 밀 등 곡물을 쪄서 고두밥을 만든 후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켜서 만든다. 발효가 끝난 후 술을 거르는 용기를 넣어 맑은 술만 떠내면 청주, 탁한 상태가 막걸리다. 동동주는 막걸리 발효과정에서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밥풀이 뜬 상태서 떠낸 술이다.

이젠 막걸리의 정의가 바뀌어야 할 판이다. 익숙한 막걸리 대신 새로운 막걸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업계에서는 젊은층 입맛에 맞는 맛을 내기 위해 수입 과일과 치즈 등 다양한 재료를 첨가한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한때 잘나가던 막걸리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업계가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판매량 정점으로 주춤


막걸리가 큰 인기를 끌었던 시절은 2000년대 후반. 한류를 등에 업고 국내는 물론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1년에는 세계 35개국에 5237만 달러어치를 수출하는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했다. 유산균과 아미노산, 효모, 젖산균이 풍부해 막걸리를 적당히 마시는 게 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도 잇따르며 막걸리 열풍에 힘을 보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내수 기준 막걸리시장 규모는 13만5000kl였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해 2011년에는 40만8000kl를 기록했다. 이때만 해도 소주나 맥주를 넘어 국민술로 막걸리가 등극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낙관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와인을 누를 정도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막걸리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12년부터 조금씩 내수량이 줄더니 지난해는 34만5000kl로 쪼그라들었다. 상황은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까지 25만1800kl가 소비돼, 지난해 9월까지의 소비량(26만3500kl) 대비 4.4%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잘나가던 막걸리가 갑자기 추락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옛맛 그대로’를 고집한 데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소주·맥주와 더불어 서민의 술이었던 막걸리가 변화하지 않는 동안 다른 술은 끊임없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고 과일소주가 등장하는 등 업계의 지각 변동은 계속 진행 중이다. 여기에 수입맥주 소비가 늘어난 것도 막걸리 이탈 현상을 부추겼다.

이런 위기의식이 바나나·복숭아 등 과일을 넣거나 다양한 맛의 막걸리를 잇따라 내놓은 배경이다. 그동안 막걸리는 쌀과 누룩으로 빚은 일반 막걸리 일색이거나 밤·잣·감귤 등 지역 특산물을 소량 첨가해 만드는 정도에 불과했다. ‘무슨맛’ 막걸리라고 하기보다는 단순한 향을 첨가한 수준을 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도 젊은층 공략에 소홀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세법이라는 장벽이 있었기 때문에 신제품 출시에 소극적이었다”면서 “최근에는 그럼에도 실험적인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주세법이 막걸리의 다양화를 막았다는 속사정은 이렇다. 막걸리(탁주)에 맛과 향을 첨가하려면 농산물 원액만 사용해야 한다. 과실 사용량도 20% 이하로 제한된다. 그 이상을 넣거나 그 외의 색소나 향료를 넣으면 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탁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되면 소비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기타주류는 세금이 30%로 탁주(5%)보다 많이 붙는다. 이름도 달라진다. ‘막걸리’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고 별도의 제품명을 붙여야 한다. 이런 원인으로 업계는 기타주류 제품 개발을 꺼려왔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막걸리라는 제품 자체가 갖는 이미지가 서민술이기에 가격이 몇백원만 올라도 소비자는 민감하다”면서 “여기에 막걸리를 주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도 ‘막걸리’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니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에 출시된 제품들은 우려와는 달랐다. 다양한 막걸리의 가격은 기존 제품보다 40~70% 정도 비싸지만 출시 초반부터 인기몰이에 나서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오랜 연구개발 끝에 제품의 질을 끌어올린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한 젊은층 사로잡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평이다.

주세법 걸림돌 넘어 성공 조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국순당이다. 국순당은 올해 4월 국내 최초로 기존 막걸리에 바나나를 접목한 ‘쌀 바나나’를 선보였다. 국순당 쌀 바나나는 출시 후 9월 말까지 총 300만병 팔렸다. 쌀 바나나 성공에 힘입어 국순당은 복숭아를 원료로 한 자매품 ‘쌀 복숭아’를 선보였다. 9월에는 더 실험적인 제품을 내놓았다. 막걸리에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우유를 첨가한 ‘국순당 쌀 크림 치즈’를 출시했다. 쌀의 부드러움에 크림치즈의 고소함, 탄산의 상쾌함까지 더해져 입안에 치즈향이 가득 퍼지며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SNS에서는 치즈토핑 안주와 결합한 ‘치막(치즈+막걸리)’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 질 정도로 젊은층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배혜정도가는 멜론 맛 막걸리 ‘메로니아’를 출시했다. 메로니아는 쌀로 만든 생 막걸리에 국산 멜론 농축액을 첨가했다. 멜론 아이스크림과 같은 감미롭고 부드러운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제품은 열처리를 하지 않은 ‘생 막걸리’로 개발됐다.

금복주의 자회사 경주법주도 청포도를 이용한 제품을 내놓았다. 막걸리 베이스에 청포도향과 탄산을 가미한 ‘경주법주 쌀 청포도’가 그것. (주)우리술은 ‘톡쏘는 알밤동동’을 출시했다. 국내산 막걸리 전용 쌀에 국산 밤과 프랑스산 밤 추출물을 첨가해 빚었다. 고소하고 달달한 맛에 탄산을 주입해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톡쏘는 알밤동동’은 11월 15일 ‘업사이드다운’이라는 캔 포장용기 제품으로 나왔다. 막걸리를 즐기려면 바닥의 침전물을 흔들어 적절히 섞이도록 해야 하는데, 캔 막걸리는 내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같은 아이디어 제품을 내놓았다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 제품은 캔 입구가 아래쪽에 위치해있다. 소비자가 캔을 따면서 자연스럽게 뒤집어 섞일 수 있도록 했다. 국순당 관계자는 “막걸리가 수입맥주 등 다른 주류와 경쟁하려면 주류 시장의 트렌드를 앞서가는 젊은층을 잡아야 한다”며 “기존에 없던 차별화된 독특한 맛의 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어 앞으로 막걸리 제품은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1361호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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