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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국내 수산 양식기술] 명실상부한 ‘잡는 → 기르는’ 어업 

 

세종=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세계 첫 명태 완전양식 성공 … 동·서·남해안에서 사라진 수산자원 복원 목표

▎11월 8일 오후 강원 동해안에서 가두리 양식으로 기른 국산 연어가 강원도 고성군 봉포항에서 처음으로 출하되고 있다. / 사진:해양수산부 제공
#1. ‘원산을 지나다 이 물고기가 쌓여있는 걸 봤다. 마치 오강(五江, 오늘날 한강)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19세기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귤산 이유원은 자신의 책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명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하지만 1981년 16만5000t이 잡히던 명태는 2008년 어획량 ‘0t’으로 자취를 감췄다. 북어·동태·황태·코다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던 국민생선이 한국에서 ‘사실상 멸종’ 상태다. 지난해 한국에서 소비된 명태 약 25만t 중 90%가 러시아 등 해외에서 수입됐다. 그러나 이르면 2018년에 우리 바다에서 자란 명태가 밥상에 다시 오를 전망이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 강원도가 10월 명태 완전양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2.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수산물은 연어다. 연간 생산량만 424만t(2013년 기준)이다. 연어는 한국에서도 광어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양식 물고기다. 2010년 1만2000t이던 게 지난해 3만4000t으로 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량(3만2000t)을 수입에 의존한다. 국내에서 잡히는 연어의 수가 많지 않아서다. 이런 연어를 국내에서 본격 생산하는 길이 열렸다. 지난 11월 8일 강원도 고성의 외해(트인 바다) 가두리에서 양식한 국산 연어 500t(5㎏ 연어 10만 마리)이 출하돼 롯데마트 등에서 팔리고 있다.

양질의 수산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세계 수산물 생산에서 양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가량이다. 2030년이면 비중은 60%로 올라갈 전망이다. 주요 선진국의 수산정책은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연어 생산국인 노르웨이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양식 산업화를 이뤘다. 노르웨이에서 연어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이은 세 번째 수출품이다. 노르웨이 연어 수출 기업 ‘마린하베스트’의 연간 매출액은 4조원에 달한다.

노르웨이 마린하베스트 연간 매출액 4조원


▎10월 11일 해양수산부는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 인공양식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수정란에서 부화한 명태(1세대 인공양식 명태)를 키워 다시 수정란(2세대)을 채취하고 부화시키는 기술이다./ 사진:뉴시스
최근 한국도 양식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0월 한국에서 성공한 명태 완전양식기술은 세계 최초였다. 완전양식은 수정란에서 부화한 어린 명태(1세대 인공 명태)가 성장해 다시 수정란(2세대 인공 명태)을 생산하는 단계를 말한다. 자연산 명태 없이 인공 부화한 명태만으로 양식을 이어갈 수 있음을 뜻한다. 한국보다 먼저 명태 인공양식에 나선 일본도 1세대 인공 명태 생산에 성공했을 뿐이다.

명태 완전양식 성공은 2014년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 여만의 성과다. 그동안 자연산 암컷 명태를 얻는 것조차 힘들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09년부터 포상금까지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2014년 포상금을 50만원으로 올린 지 1년 만인 지난해 1월에야 한 강원도 어민의 그물에서 살아있는 어미 명태 1마리를 얻었다. 이 명태에서 53만 개의 수정란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부화한 1세대 인공 명태 중 건강한 200마리가 산란이 가능한 크기인 35㎝ 이상으로 자랐다. 이 중 7마리에서 3만 마리의 2세대 인공 명태가 태어났다. 이들이 10월 6일 0.7㎝ 크기로 성장하며 완전양식을 이뤘다. 폐사율이 높은 명태는 0.7㎝까지 자라야 생존한 것으로 본다.

연구진은 인공 명태가 살 적정 수온이 10도인 것도 확인했다. 5~15도의 수온을 구간별로 나눠 어떤 환경에서 명태가 잘 자라는지 반복 실험을 해 얻은 결과다. 28도 이상에서 살던 먹이생물(플랑크톤)도 10도 이하에서 살도록 적응시켰다. 강준석 국립수산과학원장은 “저온성 동물성 플랑크톤과 고에너지 명태 전용 배합사료 개발로 명태의 성장 기간을 3년에서 1년 8개월로 단축했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2018년을 목표로 국산 명태의 대량 생산에 나선다. 내년에 15억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양식업자에게 명태 종자도 분양한다. 양식 명태를 동해에 방류해 자연 서식도 유도할 계획이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지난 6월 서해안 뱀장어 완전양식에 이룬 후 동해안에 사는 명태 양식에도 성공했다”며 “남해안 쥐치 양식에도 나서 동·서·남해안에서 사라진 수산자원을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연어 양식도 성공 과정이 쉽지 않았다. 연어는 강과 하천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란 후 산란을 위해 다시 민물로 돌아온다. 민물과 넓은 바다에서 양식하는 기술이 모두 필요하다. 생육 최저 수온은 17도로, 20도까지 올라가면 죽는다. 여름철에 수온이 오르는 국내 바다에선 양식이 쉽지 않다. 국내 수산업체 동해STF는 2014년 캐나다에서 수입한 연어 알을 부화시켜 10개월 간 200∼400g의 치어로 키운 후 지난해 3월 바다 가두리에서 양식했다. 수심 25m까지 내릴 수 있는 ‘부침식 가두리’ 시설을 활용해 수온을 15~18도로 유지했다. 덕분에 연어는 20개월 만에 5㎏으로 자랐다. 양식 연어는 수입산 연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수입산 연어 가격은 1㎏당 1만3000원 수준이다. 국산 양식연어는 이보다 10% 싼 가격에 판매될 전망이다. 윤학배 차관은 “국산 연어는 비행기로 운송되는 수입 연어보다 원가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맛은 노르웨이산보다 기름기가 덜하고 담백하다.

이미 한국은 양식을 통해 대량 생산에 나서 수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고 수출도 하고 있다. 광어·김·전복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양식이 시작된 광어는 이미 ‘국민생선’이자 효자 수출품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생산된 양식 광어는 총 4만5759t으로 세계 1위다. 한국보다 광어 양식을 먼저 시작한 일본도 자국 소비량의 25%를 한국에서 사들였다. 세계 생산량의 55%를 차지하는 김도 지난해 단일 품목으로 수출액 3억 달러(약 3340억원)를 달성했다. 국내 농수산, 축산 수출 품목 중 가장 많은 액수다. 보양식으로 꼽히는 전복도 대량 양식이 본격화된 2003년 이후 가격이 내려가 대중화와 수출에 성공했다.

한국의 수산 양식 생산량 세계 7위

10월에는 아프리카 알제리의 사하라 사막에 세운 새우양식연구센터에서 양식한 새우 5t을 수확하기도 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새우를 기를 수 있었던 건 ‘바이오플록’이란 기술 덕분이다. 이는 미생물을 활용해 물의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새우의 먹이를 만드는 기술이다. 양식장에 한 번 물을 채우면 정화해 재사용할 수 있다. 강준석 원장은 “한국의 양식 기술은 수산 강국 사이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다”며 “현재 수산 양식 생산량이 세계 7위 수준이지만 순위가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양식산업엔 그늘도 있다. 명태 완전양식 기술이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건 이유가 있다. 변순규 국립수산과학원 선임연구사는 “명태 주요 생산국인 미국·캐나다·일본·러시아에선 어획량이 크게 줄지 않았다”며 “일본도 자원 관리 차원으로 양식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만 1980년대 이후 노가리(어린 명태)를 무분별하게 잡아 명태를 멸종시키고선 뒤늦게 복원에 나서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한 셈이다. 국산 연어도 노르웨이와 비교하면 대량 생산까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폐사율이 1% 미만인 노르웨이에 비해 국내 연어 양식 폐사율은 10%나 된다. 국내 연어 양식은 외국에서 수정란을 들여와 기르는 ‘부분양식’이다. 인공수정으로 만든 연어가 어미가 돼 다시 새끼를 낳는 완전양식 기술은 아직 갖지 못했다. 김성욱 동해STF 이사는 “국립수산과학원을 중심으로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며 “보다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1360호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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