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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18)] 수묵산수화에서 보는 미니멀리즘의 미학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기교 최소화하고 사물의 본질 표현... 비울수록 내성 줄고 단순할수록 아름다워

▎겨울이야기, 2014 / 사진:주기중 기자
흔히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너무 자주 들으면 실증이 납니다. 내성(耐性)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내성의 원래 뜻은 약을 반복해서 먹으면 약효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약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각 기관도 내성이 있습니다. ‘듣기 좋은 콧노래’처럼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후각·미각·촉각도 내성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영화의 폭력 장면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주먹에서 칼로, 칼에서 총·대포·미사일로 더 강한 무기를 사용합니다. 표현 형식도 점점 더 잔인해 집니다.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영화적 폭력의 강도가 한계에 다다르면 디지털 합성을 이용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약물 중독자가 약물의 강도와 횟수를 늘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의 내성 때문입니다.

영화도 사진도 점점 ‘더 강한 것’ 찾아

사진에서도 내성은 작용합니다. 세계적인 사진비평가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진은 아름다움을 창조하지만(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고갈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저 아름다운 자연도 지칠 줄 모르는 아마추어 사진광들의 손길에 무릎을 굽히지 않았던가. 이렇듯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면 저녁놀조차 진부해져 보이는 법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저녁놀은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수전 손택은 ‘저녁노을’의 내성을 이야기합니다. 손택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풍경사진 즉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서부 개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인들은 황금과 석유를 찾아 동에서 서로 길을 닦고, 철도를 놓으며 영토를 확장해 갔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서부 개발을 위한 지질 조사를 했습니다. 민간 기업들도 철도를 깔기 위해 측량팀과 함께 사진가들을 파견했습니다. 이때 활약했던 대표적인 사진가가 티모시 오설리번(1840~1882)입니다.

처녀지였던 요세미티·옐로스톤·데쓰밸리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금이야 차고 넘치는 진부한 풍경입니다. 그러나 사진이 발명된 지 얼마 안 되는 1860년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서부 대자연의 신비에 넋을 잃었습니다. 명망있는 사진가들이 서부로 향했습니다. 지질 조사를 위해 촬영했던 처녀지의 풍경이 예술의 옷을 입고 재탄생했습니다.

사람들은 안셀 아담스(1902~1984) 같은 당대 최고의 사진가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풍경사진에 열광했습니다. 유명한 F64클럽이 결성된 것도 이 시기의 일입니다. 요세미티를 비롯한 서부 국립공원의 풍경 사진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안셀 아담스는 미국 사진사에 사진을 가장 많이 판매한 사진가 중의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는 풍경사진의 전성시대를 누렸습니다.

풍경사진이 인기를 끌자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나섰습니다. 누가 더 화려한가, 누가 더 아름다운가로 승부했습니다. 그러나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입니다. 풍경사진이 쏟아지다 보니 시각의 내성이 작동했습니다. 내성은 중독현상을 불러옵니다.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합니다. 서부 풍경 사진은 더 이상 구매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수잔 손탁의 풍경사진 비판은 이러한 시대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사진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고갈시키기도 한다”며 소재주의와 탐미주의 빠진 풍경사진가들에게 일침을 가했습니다. 예술은 창조적인 아름다움과 철학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사진가들은 ‘더 강한 장면’을 찾아서 지구촌 오지로 향합니다. 아프리카의 밀림, 아마존의 늪, 깊은 바다 속, 북극과 남극에까지 진출합니다. 신비한 자연현상과 현란한 색으로 승부하려 듭니다. 이제 시각의 내성이 극에 다다랐습니다. 우주의 신비를 담은 NASA의 사진도 이제는 진부한 시대가 됐습니다. 풍경사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요. 지금 우리나라 사진계도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철학이 없는 풍경은 공허합니다. 소재가 떨어지면 바닥을 드러냅니다. 자연풍경을 대하는 서구의 미학이 불과 100년 만에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풍경사진은 이제 예술의 경계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풍경사진의 위기는 동양미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풍경사진의 역사를 산수화와 맞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풍경사진과 산수화는 표현형식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사진이 흑백에서 컬러로 색의 자극을 더해 갔다면 산수화는 채색에서 수묵산수화로 색을 빼는 경향을 보입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등장한 산수화는 당(唐)대 때까지만 해도 채색 산수화가 주류를 이룹니다. 그러나 왕유·미불과 같은 걸출한 문인화가들이 등장하면서 수묵산수화가 중국 회화를 이끌어왔고, 송(宋)대에 이르러 꽃을 피웁니다.

철학이 없는 풍경은 공허해

이는 자연을 대하는 동서양의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미국의 랜드스케이프 사진은 탐구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 자체에 방점을 둡니다. 산수화는 자연에서 배우는 정신을 중시합니다. 자연은 스승이었습니다. 무위자연과 상선약수의 철학이 보여주듯 산수화는 비움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색(色)을 빼고, 형(形)을 단순하게 처리합니다. 동양화에서 선(線)이 발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수묵산수화의 추상적인 표현 기법은 서양의 미니멀리즘(minimalism)과도 통합니다. 미니멀리즘은 산업혁명과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물질의 과잉에 대한 반성에 나왔습니다. 예술에서 기교를 최소화하고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리얼리티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예술뿐만 아니라 철학·음악·건축·패션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 일고 있는 ‘안 쓰는 살림살이 버리기’ 열풍도 미니멀리즘과 관계가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불교와 도교 등 동양철학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산수화는 이미 오래 전에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실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나라 때 화가이자 비평가인 심종건(沈宗騫)은 시대를 아우르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무릇 ‘華(화)’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고, ‘質(질)’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안에 감추어진 것이다. 그러한 즉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난 華(화)는 한때 널리 떠다니는 허황한 명성을 얻지만, 아름다움이 안에 감추어진 質(질)은 천고에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다.”

비울수록 내성이 줄어듭니다. 단순할수록 아름답습니다. 위기에 처한 풍경사진의 답을 미니멀리즘에서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1361호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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