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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의 이슈의 이면 (4) | 임박한 전기료 누진제 개편] 국민 불만 달래는 미봉책에 불과? 

 

나현철 중앙일보 논설위원 tigerace@joongang.co.kr
요금폭탄 논란은 잦아들 전망... 거시적 에너지·산업 정책 고민은 부족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1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 보고를 마친 후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 방안이 곧 확정된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1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누진 구간을 3단계, 누진 배율을 3배 전후로 줄이고, 모든 구간에서 전기요금이 더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구성한 ‘전기요금 당정 태스크포스(TF)’가 이 같은 전제 하에 세 가지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어떤 안으로 결정되더라도 현재 ‘6단계, 최저-최고 요금 차이 11.7배’에 비해 크게 완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산업부는 이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 보고한 후 11월 말에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확정된 최종 개편안은 전기위원회 심의 등 세부 절차를 거쳐 12월 중 시행된다. 주 장관은 “새 요금 제도는 12월 1일부터 소급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2월은 난방수요 때문에 여름철 못지 않게 가정용 전기소비가 많아지는 시기다.

새 요금체계의 누진제는 필수 전력 소요량을 반영한 1단계, 평균 사용량을 토대로 한 2단계, 그 윗 단계인 3단계로 구분된다. 각 단계의 상한은 1단계 200㎾h, 2단계 400㎾h 언저리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4인 도시가구의 봄·가을 월평균 전력사용량은 342㎾h, 부담하는 요금은 부가가치세와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빼고 5만3000원이다. 산업부는 또 여름 및 겨울철 교육용 요금을 평균 20% 가까이 줄이고 스마트 계량기(AMI) 시스템 구축 일정을 앞당겨 2020년부터 가정별 개별요금제가 가능하도록 추진키로 했다.

새 요금제도 12월 1일부터 소급 적용


가정엔 반가운 소식이다. 해마다 반복돼온 ‘요금 폭탄’ 논란도 잦아들 전망이다. 어떤 가정도 요금이 올라가지 않도록 요금체계가 설계됐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새로운 누진제가 도입되더라도 기존 6단계 각 구간의 요금은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일부는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한다. 봄·가을엔 모든 가정의 요금이 인하되거나 최소한 동결되고, 여름·겨울철 요금은 크게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이번 누진제 개편은 전체 전기 소비의 14%에 불과한 가정용 요금제를 손보는 일로 끝났다. 전기의 56.6%를 사용하는 산업용과 21.4%를 쓰는 일반용(공공·영업용)은 건드리지 않았다. 원가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한 농사용 개편도 빠졌다. 전체적인 전기 소비의 합리성이 아니라 누진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는 정무적 차원에서 다뤄졌다는 얘기다. 정부는 “산업용은 지금도 원가 이상으로 요금을 받기 때문에 현재 체계를 크게 손대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TF 출범 초기엔 “산업용과 일반용을 포함해 요금체계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했었다.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고민도 이번 개편에선 묻어나지 않는다. ▶원가와 요금 사이의 괴리 ▶환경 등 외부비용을 반영하지 못한 가격체계 ▶비합리적 소비를 부추기는 에너지원별 가격구조 왜곡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개편에선 연 1조원에 가까운 경감액을 한국전력의 영업이익에서 부담하도록 했다. 한전은 지난해에만 11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해도 그 이상의 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은 개편으로 줄어들 이익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이익은 저유가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다. 배럴 당 100달러를 넘는 원유가가 40달러 선으로 하락하고 천연가스 가격도 떨어지면서 발전원가가 크게 낮아진 덕이다. 유가가 다시 오르면 한전 경영이 다시 부실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전의 누적 채무는 110조원에 가깝다. 이 때문에 원유나 가스 등 발전원료 가격을 요금에 반영하는 원가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와 한전이 요금제의 기준으로 삼는 원가가 과연 정확한지에 대한 의문도 많다.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이 때문에 석탄이나 석유보다 가스와 대체에너지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는 발전단가의 상승과 막대한 신규 투자를 필요로 한다. 발전소를 짓거나 배전망을 구축할 때 생기는 사회적 갈등 비용도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이런 비용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전체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럼에도 이번 개편에선 이런 차원의 고민이 이뤄지지 않았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둘러싼 논란도 해소되지 않았다. 기금은 2001년 발전소 등 전력시설 주변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됐다. 용도와 관계 없이 전기요금에 3.7%가 붙는다. 내년 한 해 걷기로 한 금액만 2조3038억원에 이른다. 논란의 대상은 두 가지다. 우선 걷기만 하고 쓰지 않는 돈이 너무 많다. 현재 전력기금 여유자금이 4조3304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가정은 물론 기업들까지 과도한 준조세라며 요율을 낮춰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요율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 큰 문제는 공적 기금인데도 정부와 사업자의 쌈짓돈처럼 쓰인다는 점이다.

산업용 요금 개편은 결국 용두사미


국제핵융합실험로 공동개발(273억원)은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에서, 원자력산업홍보예산(53억원)은 원자력기금에서 각각 지출하는 게 상식적이다. 페루·필리핀 등 개도국 배전망 지원사업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된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최근 주택용 기금은 1.85%로 낮추고 산업용은 5.55%로 높이자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누진제를 적용받는 주택용 전기요금과 누진제가 없는 산업용에 대한 전력기금 부담률은 달리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이 역시 산업부는 부정적이다.

결국 이번 개편은 에너지나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거시적 시각이 아니라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는 미시적 개편으로 끝나게 됐다. 낮은 전기요금은 국민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고 미세먼지가 많아지면 그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 이 비용을 요금에 반영해 가격을 높이면 효율적 소비를 유도해 부담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산업용도 마찬가지다. 낮은 전기료가 갈수록 떨어지는 제조업 경쟁력을 다소 보완하는 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과도하게 낮으면 생산설비 효율성과 신기술을 개발하려는 기업의 의욕이 감퇴한다. 과도하지 않으면서 국가경쟁력을 촉진하는 전기요금 개편은 기약 없이 또다시 뒷날로 미뤄지게 됐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tigerace@joongang.co.kr).

1362호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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