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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되는 해양 규제의 산업별 득실은] 조선업 ‘미소’ 해운업 ‘울상’ 

 

세종 =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선박 연료, 선박평형수 포함 물질 규제... LNG 추진선 신규 발주와 선박 개조 증가 가능성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11월 16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LNG 추진 선박 연관산업 육성 방안’을 보고했다. 회의를 주재하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화된 해양 환경 규제의 도입이 최근 잇따라 예고됨에 따라 국내 해운·조선 업계가 엇갈린 표정을 짓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10월 27일 열린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선박 연료에 포함된 황산화물(SOx) 허용 비율을 0.5%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국제 운항 선박은 IMO 협약에 따라 2020년 1월부터 SOx 함유 비율이 0.5% 이하인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현재 기준(SOx 함유 비율 3.5% 이하)에서 한층 강화되는 것이다. 새 요건을 맞추려면 국제 운항 선박은 기존에 쓰던 벙커C유 연료를 ▶저황연료(디젤 등)로 바꾸거나 ▶벙커C유 연료를 그대로 쓰면서 황을 제거하는 장치를 추가로 부착하든지 ▶근본적으로 황이 없는 LNG를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조선 업계 이중고 … 저운임에 신규 지출 부담까지


IMO는 선박평형수 처리장치(BWMS) 규제도 2017년 9월 8일부터 발효한다. 선박평형수는 배가 바다에서 기울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최근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배의 무게에 따라 평형수를 채우거나 바다에 배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바닷물에 있는 미생물 등 해양생물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 해양 생태계 교란 등이 발생했다. 새 BWMS 규제가 발효되면 선박평형수에 있는 유해한 수상 생물과 병원균을 제거한 후 바다에 배출해야 한다.

해양환경 규제가 강화되자 국내 해운 업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선박이 과잉 공급돼 국제 해운시장은 현재 저운임 구조가 굳어진 상황이다. 이로 인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데 환경 규제로 인해 신규 지출 부담까지 생겼다.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맞추기 위해 고급 연료를 쓰거나 최신 선박을 따로 사야 한다. 평형수 정화 시설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도 해운사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이와 달리 조선 업계는 환경 규제 강화가 선박 수주 가뭄 속 단비가 될 거라 여긴다. 연료 규제가 강화되면 경제성이 높은 LNG 추진선 신규 발주와 선박 개조 수요가 늘어날 걸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LNG 추진선은 아직 흔치 않다. 기술적으로 설계와 건조가 쉽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선급협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77척이 운행되고 있고 이 중 3분의 1 정도는 카페리로 쓰이고 있다. 국제 운항 선박이 6만 대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치다. 하지만 규제 도입으로 앞으로는 컨테이너선 등으로 LNG 추진선의 용도가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디젤 등 저황연료는 일반 벙커C유와 비교해 가격이 70~80% 정도 더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LNG는 디젤보다 30% 정도 저렴하다. 국내 조선사는 LNG 추진선 건조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해양수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11월 16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LNG 추진 선박 연관산업 육성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 지원책의 주요 내용은 ▶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부터 LNG 추진선을 시범 도입하고 ▶LNG 추진선의 항만시설 사용료를 감면해주는 등 세제 지원책을 펴고 ▶중장기적 LNG 추진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등이다.

특히 정부가 2025년까지 국내 발주선박 중 LNG 추진선의 비율을 10%(20척)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운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올해 국내 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누적 선박 수주는 33억 달러로 연초 목표의 10% 정도에 그치고 있다. 선박 수주가 최악을 통과하고 회복세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지만 지난 3년 간 이어진 수주 가뭄 때문에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만일 정부에서 LNG 추진선 수주에 나서 관련 산업을 육성할 경우 조선사들은 업황 개선이 점쳐지는 2018년 상반기까지 버틸 여지가 생긴다. 현재는 유가가 떨어지면서 조선 업체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인 해양플랜트 입찰이 중단됐고, 내년 9월 하순에나 신규 입찰이 시작될 예정이라 그전까지 버틸 물량이 절실하다.

2020년부터 황산화물 규제가 시작되니, LNG 추진선 발주에서 인도까지 2~3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2018년 이전 발주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조선 업계의 희망 섞인 계산이다. 박무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세계 중고선의 95%가 기계식 엔진을 탑재하고 있어 황산화물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LNG 추진선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2000년대 초반 5000척에 달하는 탱커선이 8년의 시간을 두고 이중선체선으로 모두 교체된 것보다 더 많은 선박 교체 수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엑손 발데스호의 알래스카 좌초를 계기로 의무화된 이중선체선이 세계 조선업의 호황을 이끈 것처럼, 이번에도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박평형수 규제도 조선 업계에선 호재로 보고 있다. 해운사들이 기존 선박에 정화장치를 설치하기보다 신규 발주를 택할 가능성이 클 걸로 보기 때문이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선령(船齡)이 20년 이상인 선박은 선박평형수 처리장치를 설치하는 것보다 해체하고 새 배를 건조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요즘 선박 해체 선령은 기존 평균 30년에서 경제성이 상실되는 20년을 기점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박에 BWMS를 설치하는 비용은 200만 달러 정도라고 한다. 20년 내외의 노후 선박의 경우 고액을 들여 BWMS를 장착하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많아도 5년여 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신규 선박 발주가 나을 수 있다.

해양수산부는 선박평형수 시장이 앞으로 5년간 40조원 규모로 성장할 걸로 본다. 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는 핵심기술 연구개발과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구매를 지원하는 내용의 ‘선박평형수관리 협약 발효에 대한 세계 시장 선점 대응방안’을 11월 21일 발표했다. 해운사가 개발사 등과 함께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를 공동구매할 수 있도록 논의하는 민간상생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했다. 선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해 2018년부터 시행한다. 1조원 규모의 에코쉽펀드를 활용해 고가의 설치비용을 지원해주는 방안도 정책금융당국과 협의 중이다. 국내 기업의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 기술은 경쟁력이 있다. 지난 6년 간 3조6000억원 규모의 세계 시장 중 49%(1조 7000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신규 수주보다 개조 선택할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황산화물 배출·BWMS 규제가 도입돼도 신규 선박 수주가 늘 것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산화물 규제의 경우 선령이 오래되지 않은 선박은 탈황장치만 설치해 대응할 수 있다. 고가의 디젤유를 선택할 수도 있다. 많이 오르긴 했지만 아직 과거에 비해 국제유가가 싸다. BWMS도 경제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운항 중인 세계 선박의 80%가 선령 15년 이하다. 이들 배는 신규 수주보다는 개조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세계 10대 해운국 중 한국을 제외한 9개국의 평균 선령은 1995년 15.1년에서 2015년 12.1년으로 줄었다. 한국의 평균 선령은 12.6년에서 13.8년으로 1.2년 증가했다. 한 조선 업계 관계자는 “2003년에 선박 발주가 크게 늘었었기에 20년이 흐른 2023년 이후에야 선박 교체 발주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선 KMI 해사안전연구실장은 “친환경 선박 구매자나 소유자를 지원하고 노후 선박에 대한 조기 폐선 비용 등을 지원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지난 9월 발의된 친환경선박지원법의 국회 통과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362호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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