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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의 ‘차이나 인사이드’] 잊을 만하면 다시 떠도는 한한령 공포 

 

김재현 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
중국 20~30대도 한류 스타보다 애국심 중시... 제한적·비공식적으로 사용 가능성

▎중국의 한한령에 한류 스타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드라마 [촉산검협전] 제작진은 송중기를 100억원대 개런티로 캐스팅하려 했으나 결국 불발됐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비보(VIVO)는 광고 모델을 송중기에서 중국 배우 펑위옌으로 교체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한한령(限韓令)’ 탓에 중국 관련주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오전 중국 정부가 한류 스타와 콘텐트에 대한 제재안을 발표했다는 뉴스가 나오면서 엔터테인먼트와 화장품 관련주가 급락했다. 사건의 발단은 우리나라 언론이 웨이보의 ‘TV관찰가(衛視觀察生)’라는 아이디가 올린 한류 제한령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부터다. 이에 따르면 11월 18일 강소위성TV가 익일부터 한국 연예인이 나오는 TV 광고를 송출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으며, 직원들에게 즉시 기획부서와 광고주에 연락해서 광고를 바꾸라는 내용의 캡처를 올렸다는 것이다. 11월 19일에는 중국 인터넷 언론이 이 내용을 보도했다. 시나(新浪)연예는 지방 TV 방송국에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결과, 이런 루머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통지를 받은 곳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중 외교부 대변인,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아

중국 인터넷에서 한한령이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건 11월 21일 오후이다. 중국 외교부는 매일 오후 3시 내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정례 브리핑을 진행한다. 이날 한 기자가 한한령에 관한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한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답변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질문: 보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한한령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각 TV 방송국에 한국 연예인이 나오는 광고를 내보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가? 중국의 이런 조치는 사드 배치와 관계가 있는가?

답변: 우선, 나는 이른바 한한령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두 번째, 중국은 중·한 간의 인문교류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간의 인문교류는 민의를 기초로 한다는 것을 모두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세 번째, 중국은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이 입장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 역시 이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유관기관이 이런 정서를 주시했을 것으로 믿는다.

겅솽 대변인은 한한령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행간을 살펴보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대신 ‘민의’를 내세웠다. 한한령에 대한 책임을 일반 시민에게 미룬 셈이다. 정례 브리핑 후 웨이보에서는 난리가 났다. 중국 네티즌들은 겅솽 대변인의 답변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며 애국심 앞에서 한류 스타는 중요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투표 결과로도 이런 분위기가 드러났다. 웨이보에서 7400여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투표 결과를 보면, 한한령에 대한 찬성이 74%를 차지한 반면, 반대는 5%에 그쳤다. 17%는 금지할 것과 금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3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중국 네티즌들이 한한령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나타내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류에 대한 제한 조치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8월에는 드라마 [촉산검협전] 제작진이 송중기를 100억원대 개런티로 캐스팅하려 했으나 결국 불발됐다. 후난위성TV의 [상애천사천년2]에서는 유인나의 출연분량이 삭제되고 주인공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중국 스마트폰 비보(VIVO)의 모델이 송중기에서 중국 배우 펑위옌으로 교체됐고, 황치열은 11월 중국판 [아빠 어디가 4]에서 하차했다.

왜 중국 네티즌들은 한한령에 대해서 찬성하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정치적 이유이다. 한류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배경에는 2000년대 들어 한·중 간의 교역규모가 줄곧 확대된 것과 양국 간에 정치적으로 지속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중국 전승절 열병 행사는 가까워진 한·중 관계를 보여주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7월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면서 한·중 관계에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미국의 대중봉쇄 전략의 일환으로 판단하고 반대의사를 명확히 했다. 최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중국에서 네티즌들은 사드에 반대하는 의견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두 번째는 정서적 이유이다. 한류 인기의 또 다른 이유는 중국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면서 문화적 수요가 급증했지만, 중국 문화산업이 이를 충족시킬 만한 콘텐트를 생산해내지 못하자 문화적·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으로 눈을 돌린 측면이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한류가 너무 인기를 끌다 보니, 한류에 대한 거부감 역시 나타나고 있다. 2014년 초 [별에서 온 그대]가 방영된 이후, 중국은 온통 김수현의 광고로 도배가 됐다. 김수현의 국내 출연료는 8억~10억원인 반면, 중국 출연료는 1100만 위안(약 19억원)을 넘어섰다. 올해 [태양의 후예]가 방영되고 나서는 송중기가 대세가 됐다. 특히 중국 동영상 사이트가 실시간으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면서, 한국과 중국과의 ‘인기 시차’가 사라졌다.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 오락 프로그램도 바로 중국어 자막과 함께 볼 수 있다. 덕분에 [런닝맨]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자 이광수는 중국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인기 스타로 부상했다.

공식문서 아닌 구두 지시 가능성


이런 가운데 한류 스타들이 중국을 돈벌이 대상으로만 여기는 멘트를 하면 중국에서 난리가 난다. 2009년 장나라는 ‘돈 없으면 중국에 공연 간다’ 라는 자막 오보 때문에 중국에서 큰 곤욕을 치렀다. 최근 국내 오락 프로그램에 한류 스타들이 자주 출연해 중국 현지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돈도 많이 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중국을 비하하거나 중국 활동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듯한 표현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한류가 지나치게 인기를 끄는 것을 싫어하는 일부 중국 언론은 이런 표현을 확대 보도하면서 중국 네티즌들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자극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한한령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중국에서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중국 관영언론 기자에게 물어봤다. 이 기자는 한한령은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실제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의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하는 광전총국이 TV 방송국에 공식문서가 아닌 구두로 지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 기자는 중국 네티즌 대부분은 한한령을 찬성하지만, 일부는 구분해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우호적인 한류스타와 중국을 비하하는 한류 스타는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한령은 우리에게 위협적이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만약 중국 동영상 사이트의 한류 콘텐트까지 제한하는 등 전면적인 한류 금지조치를 취할 경우 중국 네티즌의 반대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한한령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재현 - 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이다.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 베이징대에서 MBA를,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상하이교통대에서 재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1년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에서 중국 경제·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도대체 왜 한국을 오해하나] [파워 위안화: 벨 것인가, 베일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1362호 (201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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