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 묵묵부답박근혜 대통령은 AI 사태에 대해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사실상 국정을 지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을 대신해 움직여야 할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응도 늦긴 마찬가지였다. 황 총리는 11월 17일 ‘총리-부총리 협의회’에서 다른 안건과 함께 AI를 다루며 “선제적이고 광범위하게 방역 대책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고 지시했을 뿐이다. 황 총리는 11월 25일에야 경기도 의정부시 ‘AI 방역대책 상황실’을 직접 방문하며 상황 점검에 나섰다.‘AI 발생 후 24시간’. 한국과 일본은 이렇게 달랐다. 인체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가축 감염병 방역에 가장 중요한 건 대응 속도다. 이번에 한·일 양국을 덮친 AI 바이러스는 중국과 홍콩을 휩쓴 H5N6형이다. 공기를 통한 감염 속도가 매우 빠르고 폐사율도 높다. 그래서 고병원성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조류→인체’ 감염과 함께 사망자 사례까지 낸 유형이다. 일본에선 확진 발표 후 2시간여 만에 아베 총리가 대응 지침을 내렸다. 총리실 직속 위기관리센터에서 직접 지휘에 나섰다. 한국은 모든 것이 느렸다. 확진 발표부터 대통령을 대신한 총리의 지휘까지 정부 대응은 더디기만 했다.
인체 감염 등 최악의 상황 가정해야그 사이 구멍 난 국내 방역 체계를 뚫고 AI는 빠르게 확산했다. 11월 30일 현재 경기도와 충남·충북·전남·전북·세종까지 6개 시·도로 번졌다. AI에 뚫리지 않은 지역은 제주도와 경남·경북 지역뿐이다. 최초 농가 AI 발생 이후 2주 만에 전국 13개 시·군 47개 가금류 농가에서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살처분된 오리·닭 수는 212만2000마리에 이른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11월 29일 ‘역학조사위원회 AI 분과위원회’을 열어 이번 AI 최초 감염원을 철새라고 발표했다. 역학조사위원회 측은 “이번 고병원성 AI H5N6형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중국 등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철새를 통해 유입됐다”며 “지역별 최초 발생농장은 대부분 주변에 철새 서식지와 농경지가 있어 야생 조류 분변에 오염된 차량 또는 사람에 의해 유입되거나 쥐·텃새 등 야생 조수류의 축사 침입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그러나 철새 탓만 하기엔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닭·오리 농장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농장과 농장 간 감염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11월 29일 농림축산검역본부 역학조사위원회는 “이번에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폐사 등 임상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발생이 지속되고 있다”며 “초기 강력한 방역대책 추진과 가금 농가의 자율 방역 강화와 신속한 신고 등을 당부한다”고 발표했다. ‘강력한 초동 대응’이 중요하다지만 벌써 농가 AI 최초 발생 이후 2주 넘게 지났다. 전문가들은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갔다고 지적한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이번과 같은 고병원성 AI는 한 번 번지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발생 전 예방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한 데 타이밍을 놓쳤다”며 “지금과 같은 ‘바이러스 따라가기식 대책’으로는 추가 피해 방지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10월 28일 충남 천안시 철새 분변에서 고병원성 AI가 대학 연구팀에 의해 검출된 적이 있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10월 철새에서 AI 바이러스가 처음 검출됐을 때 정부에서 비상 방역 체계를 갖추고 차단 방역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대규모 피해는 예방할 수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백순영 카톨릭대 의대 미생물학 교수는 “이번 AI 바이러스는 국내에서 최초로 발생한 유형으로 방역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인체 감염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두고 지금이라도 철저한 차단 방역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