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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19)] 사진적인 사진 회화적인 사진 

 

주기중 기자 clickj@joongang.co.kr
사진은 인간이 세상을 보는 방식 다루는 미학... 고유의 표현문법에 충실해야

▎별헤는 밤, 2015
사람들은 좋은 풍경 사진을 보면 ‘그림 같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담은 것 같다는 뜻입니다. 또 미적인 요소들이 정치하게 구성돼 있어 마치 그린 것 같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칭찬인 줄 알지만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뒷맛이 개운치가 않습니다. ‘사진은 그림보다 한 수 아래 매체’라는 인식이 은연 중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림 같다’는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집니다. 사진비평가나 전문가들이 사진에 대해 ‘그림 같다’고 한다면 이는 칭찬이 아니라 욕이 됩니다. 예술의 한 장르로서 사진 고유의 ‘문법’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이 사진다워야 하는데 그림을 흉내낸다는 것이지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뉘앙스도 풍깁니다. 한 때 유행했던 살롱사진의 탐미적인 경향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살롱사진은 사진에 덧칠을 하거나 특수효과를 이용해 그림처럼 보이게 하는 사조의 하나입니다. 지나치게 회화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발견의 미학 선보이며 예술의 영역 개척

사진과 그림은 시각예술이지만 표현기법이 서로 다릅니다. 그림은 상상력의 산물이 될 수 있지만, 사진은 반드시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소재로 삼습니다. 그림과는 문법이 다릅니다. 사진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진의 문법은 사람의 눈과 카메라의 눈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사진은 인간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다루는 미학입니다. 1839년 사진술이 발명되면서 인간은 성능 좋은 ‘사이보그 눈’ 하나를 더 얻게 됐습니다. 카메라는 사람 눈이 가진 한계와 허점을 파고들며 새로운 세상을 선보였습니다. 기계가 열어 젖힌 혁명적인 개안(開眼)입니다. ‘보는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사진은 ‘발견의 미학’을 선보이며 예술의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이는 사진이 그림과는 다른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오늘날 사진이 예술의 중심 매체로 각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뉴욕현대미술관 사진 큐레이터를 역임한 존 사코우스키(John Szarkoowski, 1925~2007)는 1964년 [사진가의 눈] 전시 서문에서 사진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는 사물 그 자체(The things itself)입니다. 사진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같은 피사체라도 찍는 이에 따라, 보는 이에 따라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흔히 보는 평범한 대상이라도 정지된 이미지로 표현될 때 그 느낌은 예상보다 더 강렬한 힘을 발휘합니다. 객관적으로 보아왔던 어떤 대상에 주관적인 감정이입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존재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술은 보이지 않은 존재를 현시한다’는 하이데거의 예술론과도 통합니다.

둘째는 디테일(detail)입니다. 사진은 피사체를 사람의 눈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기름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는 노동자의 손, 진흙탕 길에 나 있는 바퀴자국, 얼굴의 주름 등 생생하게 표현된 현실의 한 단면은 그 자체로 기호적인 상징이 됩니다. 디테일은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키며 시적인 레토릭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사진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담아 냅니다.

셋째는 프레임(Frame)입니다. 사진은 사각의 틀 안에 구현됩니다. 프레임 안과 밖, 취사선택이 극명하게 나눠집니다. ‘화가는 중심에서 선을 긋기 시작하고 사진가는 사진의 테두리에서 표현하기 시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진은 크로핑, 즉 뺄셈의 예술입니다. 현실의 단면들을 잘라내는 프레이밍은 그림에서 보기 힘든 역동적인 구도를 만들어 냅니다. 사진은 현실을 편집하는 기능이 가장 뛰어난 매체입니다.

넷째는 시간(Time)입니다. 사진은 시간을 다루는 매체입니다. 사진에 찍힌 현실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됩니다. 이 시간성이 사진만의 독특한 매력을 뿜어냅니다. 또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수백, 수천 분의 일초를 정지된 이미지로 보여주는 순간의 미학은 사진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정지된 이미지로 보여주는 장노출 사진도 사진만이 갖고 있는 매력입니다.

다섯째는 관점(Vantage point)입니다. 사진은 피사체의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 매우 다양한 앵글을 구사합니다. 올려 보고, 내려 보고, 틈새로도 봅니다. 피사체의 모습을 온전하게 담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뭔가에 가려진 어느 한 부분을 찍기도 합니다. 사진가는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사진은 발로 찍는다’는 말은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삶의 복잡다단한 모습들을 드러내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공동체의 가치관을 모색합니다. 풍경사진은 속성상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공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연풍경을 다루는 산수화가 태동하던 시대상황도 오늘날과 비슷합니다. 송나라의 대화가이자 이론가인 곽희는 그의 저서 <임천고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회화적 아름다움 담되 사진적 사진 고민해야

“백구(白驅)의 시(주나라 시대 재야에 은둔한 현사의 시)와 자지(紫芝)의 노래(한나라 시대 은사의 노래) 같은 것은 모두 당시의 불안한 세상에서 부득이 멀리 은둔한 인사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임천(林泉)을 사랑하는 뜻과 구름이 안개를 벗삼으려는 것은 꿈속에서도 그리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과 귀가 보고 듣고 싶은 것이 단절되어 있는 형편이므로 훌륭한 솜씨를 가진 화가를 얻어 그 산수 자연을 울연(鬱然)하게 그려낸다면 대청이나 방에서 내려가지 않고도 앉아서 샘물과 바위와 계곡의 풍광을 한껏 즐길 수 있으며, 원숭이 소리와 새 울음이 흡사 귀에 들리는 듯하고 산빛 물빛이 어른거려 시야를 황홀하게 빼앗을 것이니, 이 어찌 남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자신의 마음을 완전하게 사로잡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이 산을 그리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근본 뜻이다.”

풍경사진도 사진입니다.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은 산수화의 표현 기법을 흉내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관점에서 산수화의 정신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풍경사진이 차고, 넘치는 시대입니다. 회화적인 사진이 아닌 ‘사진적인 사진’의 표현 형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풍경사진 역시 사진 고유의 문법에 충실해야 예술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63호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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