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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헌의 경제에 비친 세상 읽기] 불사조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강자 올라설까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도시바 지분 매각 입찰 뛰어들어... 반도체업계에서 위상 높아졌다는 방증

▎사진:중앙포토
“가슴 아픈 자식 낸드플래시, 이제 확실하게 밀어준다.”

2004년 초 당시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 본격진출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미래 먹거리로서 낸드 플래시의 중요성과 성장성에 대한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 끝날 무렵, 까칠한 한 기자가 질문을 툭 던졌다. “그렇게 전망 좋은 사업을 왜 이제 시작하는 겁니까?”

분위기가 잠깐 어색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업계 후발주자이기는 하지만 기술력을 기반으로 열심히 뛴다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그동안 다른 데 눈을 돌릴 여유가 있었겠습니까”라고 항변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하이닉스는 채권단 관리를 받는 워크아웃(구조개선) 기업이었다. 조기 졸업까지 거론되고 있는 워크아웃 모범생이긴 했지만, 신규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할만한 여건을 갖추지는 못했다.

영업이익 19%에도 위기 극복 선언


하이닉스가 숱한 위기를 극복해 온 ‘사연’들을 언급할 때 빼놓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2001년의 ‘블루칩 프로젝트’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생산장비와 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지속해야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 끊임없이 저어야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두발 자전거와 같다고 한다. 그런데 하이닉스에는 여유자금이 없었다. 블루칩 프로젝트는 기존 투자금액의 3분의 1 수준으로 신공정기술을 개발하고 신규장비 구매 없이 구형장비를 개조해 신제품을 생산한다는 고육지책의 전략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프로젝트 성공으로 원가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 하이닉스가 2012년 SK에 인수될 때까지 살아남았던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2004년에는 300mm 웨이퍼 공장 건설자금(1조원)이 없어 2000억원을 투입해 기존 200mm 웨이퍼 설비를 개조한 300mm공장(M10)을 완공한 역사를 하이닉스는 갖고 있다.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해 SK하이닉스로 간판을 바꿔단 것은 2012년 3월이다. 그 해 반도체 시황 악화로 회사는 227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리고 이후 2016년까지 4년 동안 내리 3조~5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며 사상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SK는 한때 쌍용자동차 인수를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리스크 감내에 자신이 없다며 의지를 접었다. 반도체 역시 SK가 한 번도 해 본 적이 분야다. 리스크 역시 만만찮다. 그런데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하이닉스를 인수한 데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믿음도 있었겠지만, 인적자원과 생존력에 대한 신뢰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눈물 젖은 빵을 씹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제 잊을만한 데도, SK하이닉스 사람들은 아직 그때를 기억한다. 이것이 이 회사의 무형자산인지도 모르겠다. 2016년 1월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시황이 좋지않다며 ‘위기 극복 DNA 재가동’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위기극복 DNA에 대해, 그동안 치열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경쟁을 강한 정신과 혁신으로 돌파해 낸 임직원의 저력이라고 정의한다.

시장 상황이 어렵다며 위기 극복을 이야기했던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매출 17조2000억원, 영업이익 3조2770억원, 당기순이익 2조96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5조3360억원)보다 영업이익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이익률이 19%에 이른다. 2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조차 위기상황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SK하이닉스가 글로벌 경쟁력에 상당부분 자신감이 붙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치킨게임 연상시키는 낸드플래시 증설 경쟁


▎경기도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 정문(행복문).
세계 2위 D램 업체이자 5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SK하이닉스는 이제 낸드플래시에서 강자로 부상할 꿈을 꾸고 있다. 지난해 말 회사는 낸드플래시 메모리에 대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충북 청주산업단지에 최첨단 반도체공장을 건설, 낸드플래시 수요 확대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에는 2019년 2월까지 총 2조2000억원이 투입된다. 이달에도 빅뉴스가 전해졌다. 일본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사업을 분사하면서 지분 19.9%를 매각할 예정인데, SK하이닉스가 지분 인수 제안서를 냈다는 소식이다. 도시바 지분 추정가격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낸드플래시에 대한 회사의 과감한 행보에 시장은 우려 섞인 기대를 보이고 있다. 사실 SK하이닉스에 낸드플래시 사업은 ‘안타까운 자식’이었다. 2004년 후발주자로 시장에 본격 진입한 지 불과 3년만인 2006년 낸드플래시 사업은 세계시장 점유율 17%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그러나 이후 회사는 사업을 더 키우지 못했다. 2007년과 2008년 반도체업계 치킨게임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채산성 낮은 200mm 웨이퍼 공장에서 더 이상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는 없었다. 200mm 라인 생산이 종료되자 2009년 점유율은 10%로 하락했다. 2008년 완공한 청주 300mm 웨이퍼 생산공장(M11)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다.

낸드플래시 제품시장이 단품(SD카드, USB 등)에서 솔루션(스마트폰 내장형 멀티미디어카드, SSD)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성능을 좌우할 수 있는 ‘컨트롤러’ 기술력이 필요했다. 회사는 자금 사정 등으로 이 기술을 완전히 내재화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부모가 여력이 없어 똘똘한 자식의 학업을 더 강하게 밀어주지 못한 셈이 됐다. 다시 낸드플래시 사업에 박차를 가한 것은 SK에 인수된 후다. SK하이닉스는 청주 M12 공장 가동, 해외 컨트롤러 개발업체 인수 등에 나서며 플래시메모리 글로벌 강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작업들을 진행했다. 그리고 대규모 국내 투자 단행을 결정하며 플래시메모리 강자인 도시바의 반도체 지분인수까지 고려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전세계 낸드플래시 생산업체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경우 앞으로 공급과잉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SK하이닉스와 업계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다. 삼성전자는 2014년 중국 시안과 2015년 화성 17라인에 이어 올해 평택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2위인 도시바는 일본 미에현 요카이치에 구축한 3차원(3D) 전용 팹을 2016년부터 가동 중이다. 이달에는 새로운 공장 착공에도 나섰다. 미국 마이크론 역시 지난해 싱가포르팹을 확장했고, 같은 진영인 인텔도 중국 대련팹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도록 개조할 방침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올해부터 이천 M14에서 3D 낸드플래시 양산에 돌입한다. 지난해 말 발표대로 올해 청주에 추가 공장 건설에 나서 2019년 6월 완공할 계획이다.

낸드플래시 공급과잉 가능성 작아

이처럼 낸드플래시 업체들이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 반도체 공장 건설이 곧 생산량 급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때 메모리 산업에서 신규 팹 건설은 곧 생산량 확대로 이어졌고, 이는 ‘공격적 경영’으로 표현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선 공경적 경영이라기보다는 급변하는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 투자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또한 지금은 늘어나는 메모리 수요에 비해 공급 증가 폭은 과거에 비해 제한적이다. 지금보다 반도체 기술구현이 어렵지 않았던 시절에는 투자로 출하량 증가 폭을 대폭 늘리는 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메모리업계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2006~07년 2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552억 달러 시설 투자가 집행됐다. 출하량 증가율(Bit Growth)은 D램이 2007년 89%, 2008년 66%, 낸드플래시는 각각 170%, 132%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은 어려워진 기술구현이 생산량 감소를 불러오고 있다. 공정 전환에 따른 생산성 증가 폭이 과거 대비 줄었다. 공정 미세화만으로 수요대응을 위한 생산량 확대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적극적인 시설 투자 없이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요를 맞춰 나가는 것이 몹시 어렵게 됐다. 한편으로 생산에 필요한 장비대수가 늘고 장비 크기가 대형화하면서 한정된 공간에서 생산할 수 있는 웨이퍼 양은 자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2016~17년 2년 동안 메모리업계 시설투자는 550억 달러로 전망된다. 치킨게임 당시를 능가하는 시설투자다. 그런데도 출하량 증가율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다. D램이 2016년 31%와 2017년 20%, 낸드플래시는 각각 45%와 44% 정도로 추정된다.

이런 점들을 종합할 때 전세계 낸드플래시 시설투자 확대가 공급과잉을 초래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지분 인수에 대해 회사 재무 건전성 저해나 실익 측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회사는 최근 공시에서 “구속력이 없는(Non binding) 제안서를 제출했다”며 최종입찰 여부는 아직 미정”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신중한 입장이다.

하이닉스는 SK에 인수된 뒤 2012년 일본 D램 업체인 엘피다 매각 입찰에도 참여했다. 메모리업계의 주요 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위상으로 성장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도시바 지분을 인수하면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으로 낸드플래시 사업에서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지분 인수에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국내 신규 반도체 공장건설은 계획대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청주 낸드플래시 공장 등은 지분 투자와는 무관하게 회사의 자체 생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국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 미디어&리서치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맡고 있다.

1372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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