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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4) | 생사의 조건, 노련함] 노력해야 노련하고, 노련해야 살 수 있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포식자이건 피포식자이건 상황 판단이 생사 갈라 … 결정적 순간 위한 준비는 고통스러운 법

몽골에서부터 중앙 아시아 초원까지 넓게 퍼져 사는 들쥐의 일종인 마멋은 덩치가 토끼만하다. 하루 종일 허허벌판에서 먹이를 찾아야 하는 매에겐 둘도 없는 사냥감이다. 매는 5.0이나 되는 시력에 송곳 같은 발톱을 갖고 있어 마멋을 발견하는 즉시 그대로 들이치면 될 듯하다. 그러나 이 초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매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보기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급강하할 때 매는 고정되어 있는 한 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목표를 향해야 한다. 자신이 들이치는 속도와 사냥감이 이동해 가는 속도 및 방향을 감안한 제3의 지점을 덮쳐야 한다. 문제는 이 지점 공략이 어긋날 때다. 평균 시속 240km로 들이치다 보니 맨땅에 발톱이 부딪혀 그대로 부러지기 일쑤다. 힘과 속도가 전부가 아닌 것이다. 마멋이 예상과 달리 다른 곳으로 가버리거나 순발력 있게 그 순간을 피해버릴 때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곳 매를 보면 발톱이 부러져 있는 경우가 꽤 많다. 이런 매는 결정타가 약해져 살아가기가 그만큼 힘들다. 이런 사고를 피하기 위해 노련한 매는 차별화된 기술을 구사한다. 목표물을 급하게 들이치지 않는다. 신중한 관찰을 통해 타이밍을 잘 설정하는 기술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들이치는 순간이다. 마음이 급한 매는 목표물에 이르는 순간 오로지 두 발을 쭉 뻗는 속도로만 승부를 하려고 하지만 노련한 녀석은 다르다. 순간적으로 왼쪽 발톱을 먼저 내밀어 마멋의 엉덩이 쪽을 툭 잡아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란 마멋이 엉겁결에 몸을 휙 돌리게 되는데, 이럴 때 오른 발톱으로 등을 확 움켜쥔다. 세로로 놓인 마멋을 가로로 놓이게 한 다음 꽉 움켜쥐는 것이다. 묵직한 사냥감이라 두 발로 단단히 잡지 않으면 날아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승리의 법칙 ‘노련함’


그러면 마멋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는 없는 걸까?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있다. 매는 한쪽만 움켜쥔 채로 날아오르기 힘드니 힘겹게 퍼덕거릴 것이고 움켜쥔 발은 아직 헐거운 상태라 빠져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좀더 노련한 녀석은 한 술 더 떠 근처 덤불이나 키가 큰 풀이 있는 곳으로 매를 끌고 들어간다.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커다란 날개가 상하거나 깃털이 뽑힐 수 있으니 움켜쥔 발톱을 풀 수밖에 없다. 상대가 바라는 대로 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 특히 민첩하게 움직여야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노련함이다. 노련함이란 말 그대로 오랫동안(老) 갈고 닦은(鍊) 경험에서 나오는 능력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겨도 살아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에서 매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능력이 노련함이고, 마멋은 상대가 만들어가려는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 손자병법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승리의 법칙이 여기에도 있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날이 올 거야.”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실패한 이들에게서 많이 듣는 말이다, 최선을 다해 휴대폰이나 자동차를 만든다고 세계 제일이 될까. 아닐 것이다. 세계 제일이 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개발하는데 최선이라는 의지를 적용해야 한다. 위기가 닥쳤을 때 무조건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고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닥쳐온 위기를 제대로, 그리고 잘 넘길 수 있는 구체적인 능력이 있을 때 악이나 깡도 효력을 발휘한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소한 재치가 막연한 의지보다 낫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프리카 남쪽에 사는 미어캣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아주 수다스럽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귀여운 편이다. 그런데 이들 역시 이곳에 사는 초원수리의 공격을 수시로 받는다. 이럴 때 보통 두 가지로 대응한다. 우선 보초병을 세운다. 언제 어디서든 망을 보는 녀석이 있다. 하지만 초원수리도 만만치 않아서 기민하게 대응한다. 보초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쏜살같이 날아드는 것이다.

이 혼비백산의 순간에서 경험이 많은 녀석과 초보가 드러난다. 노련한 녀석은 무조건 도망가지 않고 아주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먼저 상황을 파악한다. 어디로, 어떤 속도로 피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무조건 뛰는 것보다 낫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고, 일단 뛰는 게 급선무라고 먼저 뛰는 녀석은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다. 수시로 비슷한 위기를 당하는 얼룩말이나 사슴에게서도 같은 상황을 볼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더 정확한 상황 판단에서 살아있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 어디로든 달아날 수 있는 목표물을 공략해야 하는 사냥꾼에게도 이런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호랑이는 대개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 사슴이 눈에 보이는 순간 득달같이 쫓아가 단번에 성공한다. 밀림의 왕 호랑이답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무엇보다 사냥 성공률이 10%밖에 안 된다. 열 번 쫓아가면 한 번 성공하는 것이다. 달아나는 사슴도 죽기 살기로 뛰니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 호랑이는 제대로 된 기회를 만들기 위해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여섯 시간까지 사슴을 은밀하게 뒤쫓으며 자신이 바라는 상황을 만든다. 기회는 상황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200kg이 넘는 커다란 덩치가 이만한 시간을 가지고 미행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려 다 된 밥이 어그러질 때도 있고, 나무 위의 원숭이들이 소리를 질러 산통을 깨기도 한다. 사슴 또한 미심쩍은 존재가 계속 따라다닌다는 걸 아는 순간 일제히 ‘경계 경보’에 해당하는 소리를 질러 호랑이의 존재를 온 숲에 알린다. 이럴 때 호랑이의 인상적인 ‘연기’가 일품이다. 멋쩍은 듯 먼산을 쳐다보며 ‘나는 너희에게 관심 없어’라는 척을 한다. 모든 증거가 완연한데도 오리발을 내미는 ‘발 연기’다. 밀림의 제왕 호랑이도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살아갈 수 있다.

호랑이의 사냥성공률 10%


왜 이런 능력이 중요할까. 어떤 행동을 언제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야 할지 아는 게 생존을 좌우하는 까닭이다. 시작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 기다려야 할 때와 뛰쳐나가야 할 때를 아는 것, 이것이 생사를 가른다. 언제 어디서든 가장 위험한 상황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를 때’ 아닌가. 상황을 잘 알수록 맥을 잘 짚을 수 있고 승부수 또한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초원 중의 하나인 아프리카 동부의 세렝게티 초원에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마라강이 있다. 이 초원에 사는 초식동물이 일 년에 두 번씩 건너야 하는 죽음의 강이다. 수많은 나일악어가 일 년에 두 번뿐인 이 대목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 여정 끝에 강에 도착한 수많은 초식동물은 선뜻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물가를 서성댄다. 서성거리다 보면 뒤에서 밀려드는 녀석들 때문에 초만원이 되고 무리는 딜레마에 휩싸인다. 뛰어들자니 위험하고 그대로 기다리자니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온 터라 굶어 죽을 판이다.

결정적 순간을 위한 긴 인내


그런데 이럴 때 용감하게 강으로 뛰어드는 녀석이 있다. 무리의 우두머리일 수도 있고 용기 있는 녀석일 수도 있고 성질 급한 녀석일 수도 있다. 어쨌든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강에 뛰어들었으니 이제 녀석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을까. 의외로 이런 녀석들이 공격받는 일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악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기다리던 중 가장 먼저 뛰어드는 녀석을 공격한다면 어떨까. 눈앞에서 이 광경을 빤히 보고 있는 수많은 초식동물은 아마 며칠 동안 강을 건널 엄두도 내지 않을 것이고 악어들은 그만큼 굶어야 한다. 다른 곳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 이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경험 많은 악어는 기다린다. 건너가도 괜찮다는 걸 확인한 얼룩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다 줄지어 건너가는 상황이 되면 그때 중간을 공격한다. 시작해야 할 정확한 타이밍을 잘 만들다 보니 승률이 좋을 수밖에 없다. 우악스럽게 생겼다고 사는 것까지 그렇진 않다. 그러니 2억 년 넘게 살아오고 있을 것이다.

악어는 단순히 기다리는 게 아니다. 이 순간을 위해 몇 달 동안 자기네끼리 ‘토너먼트’를 치르며 결정적 순간을 준비한다. 토너먼트를 통해 각자 서열에 맞는 자리를 차지한 후 물속 지형을 면밀하게 탐색해둔다. 이 기회를 잘 살려 포식을 하게 되면 6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니 이 대목은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노련한 녀석일수록 사전 준비에 각별히 공을 들인다.

이런 살아있음의 원리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영하 40~50℃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동토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북극곰과 바다표범은 쫓고 쫓기는 관계다. 북극곰은 500kg을 넘나드는 거구이고 상대는 10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일방적인 승부는 없다. 북극곰은 덩치가 크다 보니 보통 멀리서 신중하게 관찰한 후 한발 한발 조심조심 다가간 다음 이때다 싶은 순간 급습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바다표범 또한 하도 많이 당해온 터라 열에 아홉은 미리 파놓은 얼음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실패일까?

아니다.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다. 바다표범은 포유류라 20~30분마다 한 번씩 밖으로 나와 숨을 쉬어야 하는데, 주변은 온통 얼음이라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얼음 구멍뿐이다.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다시 나올 수밖에 없으니 이때부터 2라운드가 시작된다. 북극곰은 얼음 구멍 옆에서 숨 죽인 채 기다린다. 언젠가는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얼음 구멍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통은 서너 개, 많게는 10개가 넘는 얼음 구멍이 있다. 바다표범이 만들어 놓은 숨구멍이다. 이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바닷속으로 들어간 바다표범이 어디로 나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구멍이 3개라면 곰에게는 33%의 가능성이 있지만 10개라면 가능성은 10%밖에 안 된다. 그래도 곰은 이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기다려야 한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 예민한 바다표범은 그 진동을 감지할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보통 한두 시간, 많게는 서너 시간 동안 언제든 덮칠 만반의 준비를 한 채 언제 올지 모르는 희망이 불쑥 솟아나오기를 꼼짝없이 응시하고 있어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한 준비는 언제나 길고 고통스러운 인내다.

노련함으로 가는 길


바닷속으로 피한 바다표범은 어떨까. 녀석 또한 전전긍긍일 수밖에 없다. 20~30분마다 한 번씩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어느 구멍 옆에 북극곰이 발톱을 세우며 기다리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자기가 파놓은 구멍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그 선택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 순간 녀석의 목숨은 평소에 얼마나 구멍을 많이 뚫어 놓았느냐가 좌우한다. 많이 뚫어 놓을수록 녀석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지고 북극곰의 성공률은 반대로 적어진다. 하지만 보통 두께가 50cm가 넘는 얼음에 구멍을 뚫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뚫어 놓았다고 해도 금방 다시 얼어버리기 때문에 많은 구멍을 얼지 않은 상태로 관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곰이 안 올 수도 있으니 안 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과도 싸워야 한다. 평소에 어떤 노력을 했느냐가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교토삼굴(狡兎三窟), 노련한 토끼는 굴을 세 개 만든다는데, 바다표범은 그 세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내일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생명체에게 한없이 차갑고 가혹한 세상의 특성은 북극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노련한 곰은 기다리던 희망이 다른 곳으로 올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노련한 바다표범 또한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불행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아니까 더 노력하는 것이고, 미리 노력하는 것이다.

얼마 전 사업을 시작한 지 35년이 되었다는 한 사장의 뜬금없는 푸념을 들었다.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왜 사업을 하는 게 익숙해지지 않을까?” 항상 지나고 나서야 왜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든다는 것이다.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역시 변화무쌍한 사업을 하는 데 어찌 익숙해질 수 있을까. 어제 하던 일을 오늘도 하고, 오늘 하는 일을 내일도 하는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게 사업이다 보니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고 노련함에 대한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안이 될까 싶어 자연의 노련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살아가는 일이 다 똑같군요!” 그렇다. 어디서든 노련함으로 가는 길은 하나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노련해질 수 있다.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379호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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