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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이성을 잃은 인간은 마녀를 찾는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본 ‘재귀성 이론’... 버블과 공황, 투자자 편견의 결정체

▎재귀성 이론을 주창한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
감성이 앞서는가, 이성이 앞서는가. 정신이 중요한가, 물질이 중요한가. 이 대결은 철학의 오래된 주제다. 고도로 자본주의화한 사회에서는 감성보다는 이성이, 정신보다는 물질이 숭배된다. 그럼에도 때때로 이성보다는 감성이, 물질보다는 정신이 앞선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은 이런 의문을 따라간다. 초로의 성직자가 젊은 시절 자신이 겪었던 비밀스런 경험을 회상하는 구성이다. 배경은 1482년. 이성과 신학이 균형을 이루던 토마스주의(토미즘)가 저물고 정신을 중요시하는 플라톤주의가 학계를 석권하던 때다. 이성과 정신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신비주의도 힘을 얻어간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신봉하던 수도사(나)는 신학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이교의 철학(신비주의)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가진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책의 원본을 구하기 위해 리옹으로 떠났다가 연금술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금속 물질로 금이나 은을 만든다는 연금술사는 나의 눈으로 볼 때 다분히 이교도적이다. 이교의 철학을 통해 신학을 이해해보려 했던 나는 연금술사에 흥미를 갖고 접근한다. 연금술사 피에르는 엄청난 기를 느끼게 하는 신비의 인물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말도 없다. 그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홀로 연금로를 만들어 연금술을 연구하고 있다. 나는 피에르의 집을 자주 드나들며 친분을 쌓았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우연히 숲으로 향하는 피에르를 발견하고 그 뒤를 좇는다. 그 숲은 악마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피에르가 간 곳은 숲 속의 동굴. 나는 동굴 속에서 충격적인 것을 목격한다. 안드로규노스다. 안드로규노스란 남성과 여성의 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여자의 유방과 남자의 양물(陽物)을 갖고 있다. 가시나무와 뱀이 단단하게 얽히고 설켜 짜인 관을 쓴 안드로규노스는 알몸 상태로 앉아있었다.

이성·감성의 상호 작용에 주목한 조지 소로스


그날 즈음부터 마을에는 기묘한 열병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별 이유없이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냉해에 호우까지 겹치자 풍설이 돌며 분위기가 흉흉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마녀 찾기에 나선다. 마침내 사람들은 안드로규노스 발견하고 결박한다.

[일식]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영화 [곡성]과 매우 비슷하다. 갑자기 사람들이 죽어나가면서 마녀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나 의문의 존재를 동굴 속에 발견하는 음침한 이미지가 빼닮았다. 저자인 히라노 게이치로는 1998년 일본의 대표적 문예지인 [신조]에 [일식]을 투고했다. 당시 저자의 나이는 22세, 교토대학 법학부에 재학중이었다. 이듬해인 1999년 [일식]은 제12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아쿠타가와상은 일본 최고의 문학상이다. 대학생이 이 상을 탄 것은 일본의 대표적 문인인 무라카미 류, 오에 겐자부로, 이시하라 신타로 밖에 없다. [일식]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옛 한자를 많이 쓴 의고문체(옛 고문체를 모방하여 쓴 문체)에다 중세 신학과 철학적 배경이 없다면 제법 난해한 소설이다. 때문에 히라노 게이치로는 천재소설가 평가를 받는다.

수도사가 고민하던 이성과 감성의 존재는 경제학에서도 관심사가 됐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이성과 감성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재귀성 이론(theory of reflexivity)’이라고 불렀다. 소로스에 따르면 어떤 대상과 상황에 대해 이해와 지식을 쌓는 것을 인지기능이라고 한다. 어떤 대상과 상황을 자신의 생각대로 바꾸는 것을 조작기능이라고 한다. 이 두 기능은 동시에 작용하면서 인지는 조작에, 조작은 인지에 영향을 주는 쌍방향 간섭이 일어난다. 이 같은 상호순환관계가 ‘재귀성’이라고 소로스는 정의했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수익이나 경기 전망 등 인지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투자자들의 지배적 편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현실에 근거한 추세가 있지만 이를 해석하는 것은 결국 투자자들이라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편향된 생각은 주식시장에 반영되고, 투자자는 실제 가치보다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투자한다. 현실과 편견의 간극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 끝이 버블 혹은 공황이다. 이런 과정을 잘 이해해 사전에 버블이나 공황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면 투자자는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소로스가 돈을 번 방식이다.

쉽게 설명해 보자. 투기세력이 개입해 주가가 단기간 떨어졌다. 객관적 정보로는 실제 가치보다 주가가 낮아졌기 때문에 주가는 다시 반등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투자자가 ‘이 주식, 그대로 폭락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투매에 나서면 주가는 또 떨어진다. 떨어진 주가를 보고 다른 투자자도 ‘그래 결국 주가가 떨어질 거야’라고 자기 생각을 강화한다. 그러고는 손절매에 나선다. 주가는 또 떨어진다. 재귀성 이론은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가정하에서 출발한다. 수많은 버블과 공황은 인간의 심리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소로스는 저서 [금융의 연금술]에서 재귀성이론을 이같이 설명했다. 소로스는 자신의 철학스승이었던 칼 포퍼로부터 재귀성이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재귀성 이론이 잘 적용된다. 투자자들의 극심한 공포감 속에 파생 상품 시장이 흔들렸고, 위기의 전조로 받아들이면서 시장은 폭락했다. 시장이 자신감을 잃자 애먼 신흥국으로 위기가 전파됐다. 신흥국 시장은 안전하지 않으니, 언젠가 폭락하고 말 것이라는 편향성이 투자자들을 자극했다. 사고는 미국이 치고, 피해는 신흥국이 입었다.

재귀성이론은 효율적시장 가설의 반대편에 서 있다. 효율적시장 가설이란 시장은 모든 내부 정보를 가장 잘 반영해 합리적으로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기업, 개인, 정부 등 경제주체는 감성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지극히 이성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공포가 공포를 부르고

안드로규노스는 마침내 화형장에 끌려나온다. 그의 몸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하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개기일식이다. 그의 몸이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을 때 하늘에서는 거인이 나타나 교합해 한 몸이 된다. 태양과 달도 한 몸이 된다. 안드로규노스가 화형당한 형틀 아래서는 금덩어리가 발견된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연금술사 피에르도 마녀라며 붙잡아 들인다.

마을에 번지는 역병과 냉해, 홍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불안한 심리는 마녀를 찾는다. 이성을 잃은 마을 사람들 눈에는 안드로규노스 뿐 아니라 연금술사, 혹은 연금술사와 친한 수도사도 마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수도사는 마을을 떠난다. 인지와 조작, 이성과 감성이 혼합되면 이렇게 무섭다. 특히 위기 시점에 나오는 ‘가짜뉴스’는 위험하다. 정치든 경제든 말이다.

1378호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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