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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프리타와 최저임금, 그 비루한 현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자본주의 세태 풍자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체념적 일상 그려

▎2017년 최저임금 결정 법정기한 마지막날인 지난해 6월 28일 정부세종청사 밖에서는 민주노총 등 노조원들이 최저시급 1만원을 요구하며 집회를 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처음 들은 대중가요 기성 전문가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마디로 “이게 무슨 가요야”라는 표정들이었다. 전문가들이 준 점수는 10점 만점에 7.8점이었다. 소설가 박민규가 출연했을 때 문학계도 그랬다. 박민규는 30여 편의 단편을 신춘문예에 지원했지만 예심을 통과한 것은 [카스테라] 밖에 없었다. 박민규 소설은 기존 소설의 문법과 달랐다. 문장은 자기 맘대로 끊어졌다 이어졌고, 주제는 안드로메다까지 늘어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소재도 문법도 대중없었다. 하지만 문학 소비자들은 달랐다. 2003년 발간된 두권의 소설 [지구영웅전설]과 [삼미슈퍼트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열광했다. 그제야 신춘문예에서 낙마한 작품들이 다시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소설가 이외수는 “대한민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 하나를 지목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박민규라는 작가의 출현을 지목하겠다”고 말했다.

왜 ‘나’는 프리타가 됐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가 실린 박완규의 단편 소설집 [카스테라].
박민규의 소설집 [카스테라]는 대중에게 인기몰이를 시작한 2003년 여름부터 2005년 봄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10편을 수록했다. 10편을 고른 것은 추앙하는 지미 핸드릭스가 데뷔 앨범에 10곡을 담았던 것을 흉내 낸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그렇습니까?기린입니다]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승객들을 열차 안으로 미는 푸시맨 아르바트생의 이야기다. 애초엔 2004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실렸다.

‘나’는 상고 졸업반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오후엔 주유소에서, 밤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의 편의점 알바일을 주선해주는 형이 있는 데 일명 ‘코치’형이다. 코치형이 이번에 주선해 준 일은 ‘푸시맨’이다. 시간당 3000원짜리 고급일이다. 이제 하루에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버지는 시간당 3500원짜리 일을 하시고, 어머니는 청소일을 한다. 할머니는 아프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푸시맨 일이 어느정도 손에 익었었던 8월의 어느날, 열차에서 튕겨나온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를 열차에 억지로 쑤셔넣고 나서 나는 왠지 모를 허무감에 빠졌다. 여름방학이 끝났지만 다시 푸시맨을 해야 했다. 어머니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회사는 날로 어려워져간다고 했다. 내가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도리가 없다. 겨울 어느날 아버지가 사라진다.

고정적인 직업 없이 2~3개의 겹치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일본에서는 ‘프리타’라 부른다. 프리타는 ‘프리 아르바이타(free arbeiter)’를 줄인 일본식 영어 합성어다. 원래 프리타는 새로운 문화현상이었다. 일본 경제가 한창 좋던 1980년대 말, 기업에 종신고용돼 평생토록 일하기보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청년들을 칭했다. 하지만 1990년대 시작된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의미가 바뀌었다. 정규직 일자리를 잡기 힘들어지면서 아르바이트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나’는 전형적인 프리타다. 아침에는 푸시맨, 오후에는 주유소,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번다. 푸시맨은 시간당 3000원, 주유소는 1500원, 편의점은 1000원을 받는다. 코치형에게 사준 250원짜리 카프리썬은 편의점 알바 인생의 25분이다. 콜라와 오예쓰를 사느라 쓴 1500원은 푸시맨 인생의 30분에 해당한다. 나는 편의점에서 받는 1000원은 적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1시간에 1000원어치보다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사장은 말한다. “그러면서 세상을 배우는 게야.”

편의점 일이 ‘열정페이’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있다.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이란 노동자에게 주어야하는 최소한의 법적 임금을 말한다. 근로자가 1명 이상인 모든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면 모두 적용된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따지지 않는다. 최저임금제는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최저임금제 실시 근거가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 경제가 최저임금제를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계속 미뤄졌다. 70년대 중반 지나친 저임금은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정부는 행정지도에 나섰지만 저임금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저임금을 해소하고 노동자에 대해 일정수준 이상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공포됐다. 최저임금제는 헌법에 의해 보장받고 있다. 87년 개정된 헌법 제32조1항을 보면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최저임금제를 최초로 도입한 나라는 뉴질랜드다. 1894년의 일이다. 미국은 대공황 때던 1938년 도입했다. 독일은 금융위기 때던 2009년 도입했다. 금융위기 전까지 독일은 굳이 최저 임금이 필요없는 나라였다.

최저임금제, 다양한 사회적 목표 달성에 기여

전통 경제학은 최저임금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최저임금제가 오히려 실업을 불러와 노동자 간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반론을 편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최저임금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주는 제도다. 실제보다 높은 임금을 주니 노동자들은 서로 일을 하려한다. 반면 비용부담이 커진 기업은 고용을 꺼린다. 노동공급은 늘어나는데 노동 수요는 감소하니 노동은 초과공급 상태가 된다. 기업이 초과 공급된 노동자를 해고하면 비자발적 실업이 늘어난다. 실업이 장기화되면 일하는 노동자와 일하지 않는 노동자 간 소득격차가 크게 확대된다.

기술과 경험, 노하우가 풍부한 숙련노동자는 충분한 보상을 받기 때문에 최저임금제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문제는 비숙련노동자의 경우다. 단순반복업무를 하는 비숙련 노동자의 노동은 가격에 민감하다. 때문에 최저임금제로 임금이 높아지면 자신은 잘리고 금세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에 대한 우려는 경제학 교과서의 이론일 뿐이고, 현실은 좀 달라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전망 2015’를 보면 “최저임금은 분배와 빈곤에 미치는 영향 외에도 공정한 임금보장, 노동자 착취예방, 세입 증대 등 다양한 사회적 목표 달성에 기여했다”며 “합리적인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19대 대선에 나온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시급 1만원 최저임금 공약을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7년 4월 최저임금은 6470원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화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2004년의 최저임금은 얼마였을까. 최저임금위원회 자료를 찾아보니 2004년 8월까지는 2510원, 9월부터는 2840원이 적용됐다. 시간당 1500원을 주던 주유소와 1000원을 주던 편의점은 최저임금제를 위반했다.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용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문다.

돈을 주지 않으려는 편의점주와 나는 몸싸움을 벌인다. 편의점주는 급기야 나를 고발하겠단다. 이때 나선 사람이 코치형이다. 코치형이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니 편의점주는 군소리 없이 돈을 던져준다. 청년들의 열정페이를 당연시하던 편의점주가 왜 순순히 밀린 임금을 내놨을까. 혹시 코치형이 편의점주에게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고지한 것은 아닐까. 작가 박민규에게 물어보면 왠지 이렇게 답할 것 같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1384호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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