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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미니멀 라이프, 대량 생산·소비 시대의 종말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이상의 [권태]로 본 미니멀리즘 … 새로운 기조로 떠오른 공유경제

▎‘동양적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받는 전광영의 한지 오브제 작품 ‘집합 001-MA050’
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생활. 눈뜨면 출근했다가 전쟁을 치른 뒤 녹초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번쯤은 ‘전원의 삶’을 꿈꾼다. 남진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어’라고 했다. 그가 1972년에 꿨던 꿈은 45년이 지난 2017년에는 ‘귀농’혹은 ‘귀촌’이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하지만 한평생을 도시에서 나고자란 도시인들에게 농촌이 마냥 신나고 즐거운 곳이기만 할까.

‘어서 차라리 어둬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이상은 수필 [권태]를 통해 벽촌의 여름을 이렇게 표현했다. [권태]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수필 중 하나다. 무대는 평안남도 성천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서 나고 자란 이상은 1930년대 모더니스트였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이상에게 시골 농촌의 자연과 사람은 지루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은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10여 호가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휘청거린 나무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똑같다. 오늘도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할 흰둥이, 검둥이도 변화가 없다. 나는 아침을 먹었지만 할 일이 없다. 낮잠 자는 최 서방네 조카를 깨워 장기를 두지만 그것 자체가 권태다. 밤낮 두어도 이기니 지겹다. 개울가로 가보지만 권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사색을 하려 해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나에게는 지구를 덮고 있는 초록조차도 공포스럽다. 지구는 너무나 단조 무미한 채색이다.

권태, 권태, 권태…


▎이상의 수필 [권태].
농민들의 일생도 초록의 벌판처럼 권태 일색으로 덮여있다.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할 뿐이다. 낮닭이 울지만, 어제도 울던 닭이 오늘도 또 울었다는 외에는 아무 흥미가 없다. 동리 개들도 짖지 않는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은 이 마을에 오지 않는다. 도적도 없다. 개들은 그냥 낮잠 잔다. 신문도 오지않고, 승합차도 통과하지 않는 마을. 답답한 하늘이고, 답답한 지평선이고, 답답한 풍경이고 답답한 풍속이다.

이런 권태롭기 그지없는 마을에도 진기한 현상이 하나 있었다. 썩은 웅덩이에 송사리떼가 사는 것을 발견했다. 송사리는 잠시 가만있지 않고 저물도록 움직였다. 하지만 5분 뒤 송사리들은 하류를 향해 내려갔고, 나는 다시 권태로워졌다. 작가 이상에게 엄습한 권태의 원인은 농촌의 단조로움이다. 주변은 죄다 벌판이고 하나 있다는 산도 곡선이 굴곡 없이 단조롭다. 농민들은 물론이고 동네 개, 소의 일상도 뻔하다.

이 같은 삶은 ‘미니멀라이프’의 전형이다. 미니멀라이프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을 두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삶을 일컫는 말이다. 식습관, 생활방식은 물론 심지어 인간관계도 최대한 단순화하려 한다. 너무나 복잡하고 정신없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새롭게 추구하는 삶의 한 형태다. 미니멀라이프에서는 사고 모으는 것 대신 정리하고 버리는 것이 중요해진다. 잡다한 가구, 전자제품은 내버린다.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구질구질한 앱도 지운다. 소비의 형태도 바뀐다. 단순한 디자인이 선호된다. 기능이 복잡한 제품보다는 단순화한 제품이 좋다. 패션과 리빙제품, 가전제품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진다. 작은 결혼식, 셀프 인테리어(DIY)도 미니멀라이프의 한 현상이다. 스마트폰과 아이팟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미니멀라이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를 넘어가는 사회에서 유행이 된다고 한다.

미니멀라이프는 일본의 단샤리(斷捨離·물건과 인간관계의 집착 버리기)와 비슷하다. 단샤리는 불필요한 것을 끊고((斷), 버리고((捨), 집착에서 벗어나는(離)는 것을 지향하는 정리법이다.

비슷한 의미로 덴마크에서는 ‘휘게(Hygge)’라는 단어를 쓴다.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뜻하는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소박한 덴마크식 라이프 스타일이다. ‘촛불 곁에서 마시는 초콜릿 한잔’ 같은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일상을 말한다고 한다. ‘휘게’는 접두사로도 쓰인다. 주방이나 거실의 아늑한 구석 공간은 ‘휘게크로그’, 일요일에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쇤다스 휘게’, 친밀한 대화는 ‘휘게스나크’ 라고 부른다.

금융위기 직후 미국에서는 ‘킨포크(kinfolk)’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영어사전적 의미로는 ‘친척, 친족 등 가까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의미가 확장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느리고 여유있는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현상을 말한다.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작가, 화가, 사진가, 농부, 요리사 등 40여 명의 지역주민이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하여 창간한 계간지인 킨포크(KINFOLK)가 시발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니멀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을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른다. 이들이 지향하는 생각은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은 그저 단순한게 아니라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본모습을 되찾자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예컨대 아이에게 동화책이나 장난감을 사주는게 아니라 함께 도서관 가고, 시간을 나눈다면 ‘미니멀 육아’라 할 만하다.

경제학의 근원을 흔드는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은 경제학의 근원을 흔들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효용’을 경제가 움직이는 동력으로 봤다. 효용은 소비를 통해 얻어지는 만족감을 뜻한다. 효용을 더 많이 얻으려면 소비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소비를 하기위해서는 경제활동을 해야한다. 그런데 미니멀라이프에서는 이런 전제가 무너진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면 더 이상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미니멀라이프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종말을 알린다. 소유보다는 렌탈, 공유로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공유경제’가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트렌드로 떠오르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다시 수필 [권태]로 돌아가 보자.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 없다. 길거리에는 사금파리, 벽돌도 없다. 돌을 주워와 흔해 빠진 풀을 짓찧으며 논다. 10분 만에 지루해지자 아이들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그리고 소리를 지른다. 껑충껑충 뛴다. 단순한 삶에서 오는 권태를 깨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갑자기 아이들이 나란히 앉는다. 무엇을 하나 봤더니 대변을 본다. 속수무책인 아이들의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 나는 한탄한다. ‘주물주여 아이들을 위해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

이상의 [권태]는 단순히 농촌생활의 지루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시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었던 청년들의 답답한 심정이 담겨있다. 세상은 암흑인데, 그 막막한 암흑이 언제 가야 끝날 지 알 수 없다. 이상이 ‘어디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이 창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라고 [권태]의 끝을 맺은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1388호 (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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