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조지 소로스와 칼 포퍼 

 

김경준 딜로이트 안진경영연구원장

철학자와 펀드매니저는 같은 지구상의 인간계에 속해 있지만 서로 다른 우주의 행성에서 온 외계인만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세상사에 초연하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상과 인간의 본질에 천착하는 구름 위의 철학자와는 달리 땅 위의 펀드매니저는 온갖 세상 잡사를 염두에 두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산가격을 추적하며 돈을 굴리고 이익을 추구한다. 예술가와 펀드매니저는 그림과 조각, 음반을 거래하는 시장과 투자펀드를 매개체로 하는 연관성이라도 있지만 철학은 그나마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접근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접근하는 방식과 목적이 다를 뿐이다. 철학자는 관념적으로 접근한다. 자신의 이론에 대한 현실의 피드백은 제한적이다. 펀드매니저는 명확한 숫자로 접근해 경험에 따른 판단으로 투자를 실행한다. 가설의 결과에 대한 피드백은 시장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관념적 차원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철학자의 이론은 정합성을 이론적 차원에서 검증해 나가지만, 실재하는 자산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펀드매니저가 정립한 가설은 시장에서 이익과 손실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인간계의 직업 중에서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저명한 철학자 칼 포퍼와 펀드매니저 조지 소로스의 사제관계와 상호영향에서 의외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영국으로 이주한 조지 소로스는 젊은 시절 철학을 공부하면서 만난 지도교수인 칼 포퍼의 영향을 받아 정립한 철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독자적인 투자이론을 정립해 오늘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펀드매니저라는 명성을 얻었다.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 소로스는 2차대전 후 영국으로 이주했다. 가난한 이민자로서 철도역의 짐꾼, 웨이터 등으로 닥치는 대로 돈을 벌며 런던정경대학에 입학해서 세계적인 과학철학자 칼 포퍼를 만나 철학을 공부하고 1954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수가 되어 철학공부를 계속하기를 희망했지만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당초 50만 달러 정도를 벌어서 생계를 해결한 후 다시 철학자의 길을 걸으려고 입신한 투자은행업에서 뜻하지 않은 재능을 발견하고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다.

190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칼 포퍼의 대표작은 1945년 영국에서 출판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다. 그는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규범이나 가치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며, 인간이 모여 만든 사회도 오류가 있으며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인간과 사회의 오류를 인식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시켜 나가는 사회가 ‘열린 사회(open society)’인 반면 ‘닫힌 사회(closed society)’는 불변적인 도덕과 이상향을 기준과 목표로 삼고 역사는 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사회이다. 플라톤의 국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등 완전무결한 도덕적인 사회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이상향으로 삼는 사회관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와 독재체제로 향한다고 비판한다.

소로스 투자철학의 근간인 오류성과 재귀성은 그가 평생 스승으로 존경한 포퍼 사회철학의 열린 사회 개념을 접목시켜 형성됐다. ‘오류성’은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한데다 ‘우리 자신’까지 포함해서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관점은 항상 부분적이고 왜곡되며, 인간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착각을 일으킨다는 개념이다.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도 시장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며, 효율적인 시장도 항상 오류가 있으며 시장메커니즘이란 이런 오류를 개선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했다. 오류성은 인간의 생각과 현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재귀성’의 개념으로 연결된다. 오류에 근거한 인간의 왜곡된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져 현실에 영향을 주고, 현실의 흐름은 다시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 고리가 연속적으로 순환한다. 이로 인해 사람의 의도와 행동, 행동과 결과 사이의 연쇄적인 상호작용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된다. 이러한 오류성과 재귀성에 따른 불확실성이 인간사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때로는 무한히 커질 수 있기에 사회든 시장이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영역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단지 상황에 따라 충실한 대응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결국 다른 펀드매니저들이 불확실한 시장을 예측하기 위해 노력할 때 소로스는 반대로 오류와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여기서 투자기회를 포착하는 독자적인 관점을 정립했다.

소로스는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월스트리트에 자리를 잡는다. 오류성과 재귀성 이론에 기반한 고위험 고수익 투자로 명성을 얻었다. 1969년 짐 로저스와 공동으로 설립한 퀀텀펀드의 초기 투자금 400만 달러였다. 1989년까지 20년간 연평균 수익률 34%를 기록했다. 1992년 파운드화 강세를 유도하는 영국중앙은행을 상대로 파운드화 약세에 베팅해 영국중앙은행을 굴복시켰고,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에서도 높은 수익을 올렸다. 소로스는 자신이 태어난 헝가리에 대규모 투자와 기부를 진행해 공산권 붕괴 직후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79년부터 2011년 81세에 은퇴하기까지 8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인권·복지·교육 부문에 기부했다.

조지 소로스에 대한 평가는 ‘박애주의 자선사업가’에서 ‘냉혹한 자본주의의 악마’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으로 나뉜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입장과 생각에 맡길 사안이다. 다만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관념적 철학공부를 통해 습득한 세계관을 실물의 첨단인 글로벌 금융시장을 이해하는 투자철학으로 발전시켜 커다란 성공을 거둔 부분이다.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관념적 철학에서 출발해 정립한 투자론 덕에 논리와 수학의 치열한 영역인 국제 금융시장에서 독보적 성과를 거둔 것이다. 소로스가 진정한 강자가 된 것은 세계와 인간의 오류성을 인정하면서 자신 또한 언제든 틀릴 수 있다고 겸허하게 인정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아이디어의 출발은 칼 포퍼의 과학 철학이었다.

21세기를 혼돈과 격변의 시대라고 한다. 변화가 심할수록 기존의 틀을 벗어나 폭넓게 사고해야 기본을 잃지 않으면서 미래를 향한 새로운 경로를 찾아갈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역사에서 리더십과 조직운영의 교훈을 얻고, 생태계에서 시장질서의 본질을 통찰하고, 진화론으로 기업혁신에 접근하며, 예술사를 통해 소비자 감성을 이해하는 방식의 접근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젊은 시절 철학공부에서 형성된 세계관이 글로벌 투자자로 입신하게 만든 투자관의 기초가 되었던 점은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394호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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