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멤버십

World News

[장기 집권 노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경제 등에 업고 거침없는 군사굴기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10월 당대회 앞두고 군의 충성 다짐 받아... 강력한 당주석제 부활 제안 보도 나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군사굴기’ 행보가 거침없다. 시 주석은 지난 7월 30일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기념 열병식을 네이멍구(內蒙古) 주르허(朱日和) 사막의 훈련기지에서 열었다. 전투태세가 완비된 정예 장병 1만2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핵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를 포함한 첨단 장비를 총동원해 행사를 열었다. 해방군은 장시(江西)성 난창(南昌) 봉기 개시일인 1927년 8월 1일을 창군기념일로 삼는다. 이날은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에 대해 처음으로 무장봉기를 일으켜 군사적으로 대응한 날이다. 1912년 신해혁명을 일으켜 청나라를 무너뜨린 중국 혁명가 쑨원(孫文, 1866~1925)의 국민당은 원래 공산당에 너그러웠다. 소련의 지원을 받으면서 1924년 1월 공산당원의 개별적인 국민당 입당을 허용하는 제1차 국공(국민당과 공산당)합작을 했다.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황포 군관학교를 세워 군사지도자를 양성했는데 국민당과 공산당 군사지도자가 모두 이곳에서 배출됐다.

1949년 건국 이래 첫 건군절 열병식

하지만 쑨원 사후 국민당의 당권을 장악한 장제스가 1926년 시작한 북벌이 성공해 여러 지역을 할거하던 군벌을 제거하면서 우경화됐다. 장제스는 1927년 4월 12일 상하이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를 포함한 공산당원을 대거 숙청했다. 4.12사건 또는 상하이 쿠데타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300~4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공산당은 난창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국민당에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난창봉기 당시 구성된 중국 공산당 공농홍군은 팔로군 등을 거쳐 오늘날 중국 인민해방군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공산당은 8월 1일 벌어진 난창봉기를 기념해 휘장과 깃발에 팔일(八一)이라는 숫자를 새기고 있다. 난창봉기를 시작으로 그해 장시성성·후난(湖南)성의 추수봉기와 광둥성 광저우 봉기 등 공산당 무장투쟁이 연이어 벌어졌다. 무장봉기는 훗날 중국 공산당이 전국을 석권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는 기틀이 됐다.

이날 주르허 사막기지에서 열린 행사는 1949년 건국 이래 건군절에 맞춰 벌어진 열병식으로는 처음이다. 이례적인 행사인 것이다. 열병식이 열린 장소도 독특하긴 마찬가지다. 1949년 신중국 건설 이후 중국의 열병식은 주로 베이징 중심부인 천안문 광장과 그 주변에서 열렸다. 이번처럼 베이징 밖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은 36년 만이다. 이번 행사 이전 베이징 바깥에서 열렸던 마지막 열병식은 지난 1981년 6월 29일 당시 개혁·개방을 지휘하던 덩샤오핑(鄧小平)이 허베이(華北) 군사훈련에 맞춰 개최했던 열병식이었다. 덩은 그해 6월 29일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취임했으며 그 자격으로 열병식에서 군대를 사열했다.

당시 덩은 군사위 주석이었지만 시 주석은 군사위 주석은 물론 당 총서기에 국가주석까지 맞고 있다. 이에 따라 1981년의 열병식은 ‘군대급 열병식’이었으며 2017년 행사는 ‘국가급’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행사 참석자들도 차이가 있다. 1981년 행사 때는 거의 모든 정치국 상무위원이 모두 참석했지만 이번 행사에는 시 주석과 군 고위층만 등장했다. 시 주석이 주인공으로 ‘단독 출연’한 행사라는 이야기다. 올 가을로 예정된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대)를 앞두고 군 내부의 충성 맹세를 받는 행사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최고지도자 시 주석 개인이 당의 무력인 인민해방군과 사막의 훈련장에서 ‘독상’을 받은 셈이다.

군을 앞세운 공산당 지배와 개인 통치 강화

이번 열병식에 참석한 각급 부대의 군인들과 사열을 하는 시 주석이 공식적으로 주고받는 공식 인사말도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이전까지 천안문 광장 등에서 열렸던 열병식에서는 최고지도자는 자동차를 타고 각 부대 앞을 지날 때마다 ‘퉁즈먼하오(同志們好, 동지들 안녕하신가)’라고 인사하면 해당 부대원들이 일제히 ‘서우장하오(首長好, 지도자님, 안녕하십니까)’라고 대답한다. 그 다음에는 최고지도자가 다시 ‘퉁즈먼 신쿠러(同志們辛苦了, 동지들 수고했다)’라고 인사하면 해당 부대원들이 입을 모아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 인민을 위해 복무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부분 인사말이 ‘서우장하오’ 대신 ‘주시하오(主席好, 주석님, 안녕하십니까)’로 바뀌었다. 자신이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 즉 인민해방군의 군 통수권자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구호가 바뀐 셈이다. ‘주시하오’를 사용한 것은 지난 6월 말 홍콩 주권 회귀 20주년에 맞춰 현지에서 벌어졌던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열병식에 이어 두 번째다. 이제 이 용어는 중국 열병식의 공식 용어로 굳어지게 됐다.

이례적인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이날 시 주석은 얼룩무늬 위장전투복 차림으로 위장도색이 된 해방군 야전지프에 타고 도열한 장병을 사열했다. 이전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졌던 열병식에서 시 주석을 포함한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통상 중산복 차림에 일반 의전차량을 이용하던 것과 확연히 구별됐다. 게다가 열병식에 참가한 장병은 완보가 아닌 속보로 이동했다. 열병식이 의전용이 아니라 실전용임을 강조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실제로 이날 행사에 참가한 군인들은 보병·전차·포병·로켓 등 전투병과 일색이었다. 군악대도 없이 모든 음악은 녹음된 것을 사용했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등장했는데도 그 흔한 의장대도 등장하지 않았다. 권력의 기반이 군임을 확실히 하면서 군의 충성을 다짐 받고 이를 바탕으로 인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포석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 경제는 날로 글로벌화, 고도산업화, 네트워크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시 주석은 군을 앞세운 공산당 지배와 개인 통치 강화로 향후 통치의 방향을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 주석이 이렇게 군사굴기로 매진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세계 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의 경제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로 명목금액 기준 11조2182억 달러로 미국(18조 5691억 달러)에 이른다. 3위인 일본(4조9386억 달러)의 2배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1인당 GDP는 아직 8113달러 수준으로 러시아(8929달러)·브라질(8727달러)·멕시코(8555달러)와 같은 8000달러대다. 하지만 중국이 1인당 GDP 1만 달러 시대에 접어드는 일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다. 참고로 2016년 기준 세계 평균 GDP는 1만38달러이니 중국 인민의 평균적인 삶도 이제 전 세계의 가난한 절반에서 살 만한 절반으로 접어드는 셈이다. 경제가 이렇게 받쳐주니 시 주석은 군사력으로 아시아 지역은 물론 글로벌 세계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싶을 것이다. 이런 중국의 군사몽(軍事夢)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 네어멍구 열병식일 것이다.

측근 등용해 권력 집중 노려


▎지난 7월 30일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기념 열병식에 군복을 입고 사열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사진:CCTV 생방송 화면 캡처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올 가을의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유지해온 집단지도체제의 전통을 깨고 1인 지배를 본격적으로 강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에 들어간 셈이다.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한다면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부정부패를 더욱 강력하게 다스리면서 고도경제를 위한 기반을 닦을 것이란 전망도 가능하다. 물론 반대파의 불만을 사서 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사정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전반적으로 시 주석의 페이스다.

시 주석이 가장 먼저 손댈 부분은 과거 마오쩌둥이 맡다가 1982년 폐지된 공산당 주석 자리의 부활로 예상된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월 30일 당 관계자를 인용해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참가하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공산당 주석 직의 부활을 제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런 제안이 시 주석 장기 집권의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공산당의 총서기인 시 주석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올 가을로 예정된 공산당 당 대회를 노린 권력 개편을 시도할 것이란 보도다. 이를 위해 당 대회 이후의 새로운 체제를 협의하는 중요 회의를 이른 시일 안에 열고 강한 권한을 지닌 당주석의 부활을 제안한다는 이야기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 주석은 1949년 10월 1일 신중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이 그해 6월 19일부터 1976년 9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 넘게 한시도 놓지 않았던 자리다. 마오쩌둥이 휘두른 막강한 권력의 핵심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과 개인숭배 수준의 권위를 누렸다. 이를 바탕으로 1958년부터 1962년 초까지 농공업 대증산정책인 대 약진운동을 밀어붙였으나 실패로 끝나면서 약 2500만~3000만 명이 굶어죽었다. 마오의 권위를 찾기 위해 1966년 5월~76년 12월 벌인 문화대혁명으로 다시 2000만~3000만 명의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 하지만 지금도 마오에 대한 향수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마오와 다른 노선으로 중국을 재건한 덩샤오핑도 마오에 대한 평가를 ‘공7 과3’ 정도로 했을 정도이지 않은가.

시 주석이 그런 마오의 ‘공산당 주석’ 자리의 부활을 노리는 것은 권력 집중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마오가 차지했던 그 막강한 권력을 21세기에 재현하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신문에 따르면 5년에 한 차례 열리는 당대회에서 68세 이상의 간부를 은퇴시켜온 정년제도를 수정하는 논의도 하게 된다. 현재 시 주석을 포함해 7인으로 이뤄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시 주석의 오른팔로 부패청산을 주도해온 왕치산(王岐山) 정치국 상임위원이 69세로 정년에 걸린다. 정년제도를 수정하면 그의 임기 연장을 꾀할 수 있게 된다. 시 주석은 아울러 측근인 리잔수(栗戰書) 정치국원을 7인 상무위원의 한 사람으로 발탁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리잔수 정치국원은 헤이룽장성 성장과 구이저우성당위원회 서기를 지낸 인물이다.

허베이(河北)성 출신인 리 정치국원은 2012년 11월 15일 정치국원이 되면서 동시에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를 맡아왔다. 같은해 8월 31일부터는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도 겸하고 있다. 중앙판공청은 과거 중앙비서국으로 불리던 기관으로 당의 최고 지도자인 중앙위원회 총서기의 비서 역할을 맡는다. 총서기를 포함한 당 중앙위원회 주요 지도자들의 의료·보안·통신 등을 책임진다. 중앙판공청 주임은 빠짐없이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왔다. 이번에 시주석의 이런 제안이 실현된다면 개혁개방 이후 확립돼온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대대적인 전환을 맞게 된다.

올 가을 당대회에서 시 주석 운명 갈릴 듯

중국 공산당은 매년 7월 말부터 8월 상순까지 허베이성 친황다오(秦皇島) 시에 있는 보하이(渤海)만 연안의 해변 리조트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당의 현역 지도자와 은퇴한 원로들,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연다. 베이다이허에서는 간부 인사와 주요 정책을 주요 의제로 삼아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 때문에 중국 정치에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비공식 회의라는 점 때문에 협의 내용과 일정은 물론 참가자들도 전혀 공표하지 않는다. 수영을 좋아했던 마오쩌둥이 여름철 피서지로 이곳에서 머물면서 당과 정부, 군의 간부들을 불러 모았던 것이 회의의 기원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에는 일시 폐지되기도 했지만 이후 부활됐다. 이미 물러난 원로들이 발언권을 행사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2015년 여름에는 당과 정부 미디어들이 베이다이허 회의의 존재 의미에 의문을 던지는 내용의 평론을 게재하기도 했다. 원로들과 전문가들은 현역 당 간부들보다 한 발 앞서 7월 중순에 베이다이허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베이다이허는 경비가 엄격하며 검은색 차량 행렬이 종종 목격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올해는 8월 1일 인민해방군 창군 90주년 기념행사가 끝난 뒤 베이다이허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베이다이허 회의 결과를 반영할 올 가을 당대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따라 시 주석의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미래와 중국 경제의 전망도 이에 따라 출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내부 정치가 경제를 흔드는 왝더독(Wagthedog,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의미) 현상이 과연 나타날 것인가. 아니면 중국의 정치와 무관하게 경제는 계속 전진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간에 중국 정치와 경제의 오묘한 함수관계를 올 가을 전 세계가 목격하게 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의 상황은 한국 경제, 아시아 경제, 나아가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images/sph164x220.jpg
1396호 (2017.08.1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