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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혁신성장으로 파이 키우자 

 

양재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우리가 건국 이래 최장인 열흘 연휴에 취해 있는 와중에도 세계 경제는 휙휙 돌아갔다. 특히 9월 중순부터 들려온 세계적 기업의 몰락과 변신을 다룬 뉴스는 글로벌 무한경쟁 체제에서 기술·경영 혁신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세계 최대 장난감 소매체인점 토이저러스가 막대한 부채를 견디다 못해 9월 18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아마존 등 온라인 상거래 업체가 시장을 잠식하고 스마트폰이 진화하면서 장난감을 대체하는 ‘디지털 대전환’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그런가 하면 날개 없는 선풍기, 진공청소기 등으로 유명한 영국 기업 다이슨이 9월 26일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창업주인 제임스 다이슨은 20억 파운드(약 3조원)를 투입해 2020년부터 전기차를 생산·판매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기차 선두 주자인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5년 간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25억2000만 달러)보다 많다.

28일엔 ‘일본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도요타가 나섰다. 중견 자동차 메이커 마쓰다, 자동차 부품회사 덴소와 손잡고 1조원을 들여 전기차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전기차 개발에 뛰어드는 것은 상당수 국가들이 이르면 2025년(노르웨이)이나 2030년(인도), 늦어도 2040년(영국·프랑스)부터 가솔린·디젤 등 화석연료 차량을 퇴출하기로 선언한 것과 관련이 있다.

9월 12~24일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주인공도 비싼 럭셔리카나 힘 좋은 수퍼카가 아닌 전기차였다. 클린 디젤에 매달렸던 독일 자동차 3총사(메르세테스 벤츠, BMW, 아우디-폴크스바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전기차 위주로 전시장을 꾸몄다.

세계가 전기차 100% 시대를 향해 질주하는데 자동차 생산량 6위인 한국은 자동차 메이커든 정부든 전략 부재 상태다. 정부는 화석연료 사용 제한 시점 설정은커녕 전기차 안전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현대·기아차도 전기차보다 수소연료자동차에 치중하는 한편 초대형 사옥 짓느라 바쁘다. 이웃 일본에선 완성차 메이커와 부품회사가 함께 전기차 개발회사를 설립하는데 한국은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삼성SDI와 현대·기아차가 손잡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자동차는 전후방산업 연관효과가 큰 산업이다. 최신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 양방향 인터넷·모바일 서비스가 가능한 커넥티드(connected) 카와 자율주행 차량으로 진화하는 등 기술혁신이 떠받쳐야 지속 가능한 분야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일부 정보기술(IT) 업종만 잘 나갈 뿐 철강·조선 등 주력 업종이 흔들리는 판에 자동차마저 기술력에서 밀리면 한국 경제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진다.

주요 국가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앞다퉈 기술혁신과 ‘비즈니스 디스럽션(disruption, 파괴적 재편)’을 꾀하는데 국내 기업들은 30년 전 굴뚝산업 시대의 낡은 규제에 갇혀 있다. 업종간 경계를 넘나들며 사업을 전개하는 ‘산업의 커넥티드화’가 절실한데 어떤 사업이든 입지·진입 규제를 받아야 하니 신산업에 진출하기 어렵다. 그 결과 임금 상승도, 일자리 증가도 둔화되며 경제가 저성장 터널에 진입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극복하자며 일자리 및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웠지만 가시적 성과 없이 부작용을 빚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두 자릿수로 정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압박하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부터 신음하고 있다. 중소기업들 사이에 직원을 줄이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식당과 편의점들이 아르바이트 인원을 줄이면서 무인계산대를 설치하고 있다. 청와대에 상황판을 설치하고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지만 8월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목표한 올해 3% 성장이 불확실해졌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6일 국무회의에서 혁신성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혁신성장의 개념을 조속히 정립하고 집행 전략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동안 추진해온 ‘J노믹스(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정책 기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신호다. 같은 날 고용노동부 장관도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의 속도조절 가능성을 내비쳤다.

J노믹스가 내세운 ‘사람중심 경제’는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의 3대 축이 떠받치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제로(0)화,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프랜차이즈 ‘갑질’ 근절 방안 등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보면 소득주도 성장이나 공정경제에 비해 혁신성장은 존재감이 없다. 분배를 중시하는 정책이 우선 추진되는 가운데 성장을 떠받칠 산업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양극화와 소득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분배 개선이 필요하지만, 성장을 도외시한 분배 우선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의 외축으로는 사람중심 경제를 온전히 세울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꾀하겠다는 판단은 J노믹스의 성공을 위해서도 필요한 방향 전환이다.

혁신성장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경기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소득주도 성장과 달리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운다는 점에서 기존 성장론과 흡사하다. 그러나 기존 성장론이 파이를 키우는데 주로 대기업과 수출에 의존했다면 혁신성장은 창업·중소기업·벤처기업·4차 산업혁명을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사실 혁신성장은 문 대통령이 대선 때 강조한 주요 공약 중 하나다. 대선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 수록된 12대 약속 중 미래 성장동력 확충 항목의 ‘신생기업의 열기가 가득한 혁신창업국가’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인 정보통신기술(ICT) 르네상스’가 그것이다.

혁신성장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지론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혁신성장의 개념 정립과 집행 전략 마련을 지시한 만큼 ‘정책을 정책답게’ 만들어 속도감 있게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에 합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경제부총리 입에서 “(청와대 참모진 등) 시어머니가 너무 많다”는 하소연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

혁신성장 공약의 핵심인 4차 산업혁명위원회는 지각 출범에 격도 당초 총리급에서 낮아졌다. 민간 주도 위원회가 부처간 칸막이를 허물고 신산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날 부처별 규제 마찰을 제대로 조정·개혁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힘 빠진 위원회의 선입견을 벗고 혁신성장 추진체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4년 연속 26위로 제자리걸음이다. 2007년 11위까지 올랐다가 지난 10년 간 드물게 순위가 크게 하락한 나라로 꼽힌다. 잦은 파업과 노동시장 유연성 및 금융혁신 부족 등이 핵심 원인이다.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규제혁파와 신산업 육성에 매진하지 않으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더 내려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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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호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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