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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위헌(違憲)한 경제’(5) 임대차 기간 제한] 왜 있는지도 몰랐던 임대차 기간 제한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20년 이상 불가’ 악용 사례도 … 위헌 결정 영향은 찻잔 속 태풍에 그쳐

‘경제정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원초적 기준은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법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아니, 단순히 합법적인 경제는 정의로운 경제일까. 또는 법에 어긋난 경제활동은 모두 불공정한 행위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모든 법률의 근간이자 잣대가 되는 헌법으로 경제를 짚어봤다. 실제 헌법소원 판례를 통해 개인과 국가가 경제와 법을 의심하고 행동하며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위헌(違憲)’한 한국 경제의 모습을 살펴본다.


▎2006년 당시 신촌밀리오레 분양광고(왼쪽)와 현재 10년 가까이 비어 있는 서울 신촌밀리오레 전경. 건물 유리창에는 신촌역사(주)와 성창F&D 사이의 법적 분쟁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하철 2호선이 아니라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는, 서울 신촌역. 바로 앞까지만 해도 상점과 카페가 즐비한 대학가인데, 명암(明暗)의 경계라도 짓는 듯 이곳만은 을씨년스럽다. 6층 높이로 들어선 신촌민자역사 건물에서 인기척이 있는 곳은 5·6층의 영화관뿐이다. 1~4층 자리의 ‘신촌밀리오레’는 천막으로 가려진 채 불이 꺼져 있다. 영업 중인 점포는 하나도 없다. 이런 상태가 된 게 10년이 돼 간다. ‘유령 건물’이 돼버린 도심 속 대형 쇼핑몰. 그 사연의 한 켠에는 임대차 계약을 둔 ‘위헌(違憲)’한 분쟁이 있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신촌역사㈜다. 2000년대 초반 새 역사를 짓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자 여러 민간 투자자가 모여 만든 민자역사 사업자다. 코레일과 대우건설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2004년 신촌역사㈜는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성창F&D라는 회사와 장기 임대 계약을 했다. 750억원을 일시불로 먼저 받고 1~4층을 30년 간 사용하는 조건이었다. 성창F&D는 동대문 밀리오레로 유명한 분양형 쇼핑몰 업체다. 분양형 쇼핑몰은 건물을 사거나 빌린 후 작은 점포 단위로 쪼개 분양하는 방식이다. 성창F&D는 신촌밀리오레를 1400여개 구역으로 나눠 점포당 6500만~1억원에 분양했고, 2006년 9월 문을 열었다.

사업 실패로 유령 건물 된 신촌민자역사


그러나 사업은 순조롭지 못했다. 각종 온라인 쇼핑몰과 패션 편집매장 등이 넘치고 동대문식 쇼핑몰 관련 비리가 터져나오면서 분양형 상가의 인기가 시들었다. 상권 특성 차이로 인해 동대문과 달리 파리만 날렸다. 자연히 공실이 넘쳤다. 성창F&D가 분양 당시 광고했던 것과 달리 애초부터 철도·전철 노선이 이곳을 지날 계획이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기 분양’ 논란까지 일었다. 점포를 분양받은 대차인 300여 명은 분양대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처럼 사업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자 성창F&D는 신촌역사㈜ 측에 “임대료는 모든 상가가 분양이 됐을 때를 전제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라며 “이대로 가면 30년 간 있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미리 낸 임대료 중 10년치인 250억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신촌역사㈜는 반발했다. 애초에 30년 계약을 요구한 것도 성창F&D고, 계약 당시 ‘나중에도 문제삼지 않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임대료를 돌려달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방은 법정까지 이어졌다.

1·2심은 신촌역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009년 말 대법원에서 결정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현행법상 건물이나 토지의 최대 임대기간을 20년으로 제한하고 있어 성창F&D는 임대료 일부를 반환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의 근거가 된 건 민법 651조였다. 이 조항은 건물이나 토지 임대차의 존속기간은 20년을 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이후 재계약은 가능하지만 20년 이상의 계약은 할 수 없다. 당사자 간 동의가 있어도 이 조항을 어길 순 없었다. 조항대로라면 계약기간이 20년을 넘는 임대차 계약은 무효가 되고, 신촌역사㈜는 초과 기간인 10년치의 임대료를 돌려줘야 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신촌역사㈜는 헌법소원을 냈다. 민법 651조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었다.

민법 651조는 왜 만들어졌을까. 어떤 규제나 법에 문제가 있다면 먼저 따져봐야 할 건 그것의 목적 또는 취지다. 왜, 무엇을 위해 그 규제나 법이 생겼냐는 것이다. 그래서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도 유효하고, 큰 부작용이 없는지를 보는 것이다. 헌재가 민법 651조에 대해 먼저 따진 것도 입법 취지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조항의 입법 취지는 알 수 없었다. 민법 651조는 1958년 민법이 제정되면서 생긴 조항이다. 제정 당시 기록을 봐도 임대차 존속기간을 최장 20년으로 제한한 이유에 대해서는 국회의 토의 과정이나 검토 관련 자료가 없다. 이 조항은 그냥 어느 순간 민법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고, 임대인을 위한 것인지, 임차인을 위한 것인지, 어떤 사회·경제적 효용성을 고려한 것인지 목적이 불명확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유사 조항이 일본에만 있는 걸 보면 제정 당시 일본법을 베끼면서 따라온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일본에는 이와 관련한 보완 장치나 부속 조항이 있지만 우리 법에는 그런 게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 취지·목적 등 오리무중인 민법 651조


▎임차인 보호를 위한 임대차 기간 ‘하한선’이 이슈가 됐을 뿐 ‘상한선’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14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세입자협회, 참여연대 등 관련 단체 회원들이 상가·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촉구 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수십 년이 지나서야 법학계에서는 이 조항의 취지를 이렇게 해석하기도 했다. 빌리는 사람은 당연히 주인보다 빌린 물건에 대해 소홀할 수밖에 없다. 너무 오랜 기간에 걸쳐 임차인에게 건물이나 토지의 이용을 맡겨 놓으면 관리가 안 되고 개량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사회·경제적으로 손실이기 때문에 어느 기간 이상은 계약을 갱신하거나 다른 계약을 하도록 보완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특히 제정될 당시 환경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쉽다. 건축물 수명이 길지도 않았고, 전후 복구와 건물 등 시설 신축·개량이 시급했던 때인 만큼 장기 임대차로 인해 낙후된 시설을 오래 방치할 가능성을 줄이려 했다는 것이다.

이 취지가 맞다 해도, 문제는 지금의 현실이었다. 신촌역사㈜도 헌법소원을 내면서 이 부분을 공격했다. 건축 기술이 발달해 건물의 수명이 늘어났다. 그런데 법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공사 규모가 커지면서 건축주가 건물의 규모에 따라 일정 기간의 임대료를 먼저 받고 건축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늘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상권 전망이 좋다고 보면 임차 기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이런 계약을 한다. 그런데 공사 규모가 클수록 그만큼 공사비가 많이 들고, 돈이 더 필요한 만큼 임차인에게 요구하는 돈의 액수도 크다. 그렇다고 무작정 임대료만 늘릴 수는 없으니, 임대기간을 늘려 장기 계약을 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민자도로 같은 공공발주 사업의 경우 이런 장기 계약 사례가 많다. 기획재정부의 ‘민간투자사업 운영현황 및 추진실적보고’에 따르면 사업 시행자에게 통상적으로 부여되는 관리운영권의 부여 기간이 항만시설은 50년, 물류기지나 터널시설은 30년, 주차장시설은 20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사업의 경우에는 20년 이상 계약이 가능해서다. 신촌역사㈜ 측은 헌법소원에서 이 부분도 지적했다. “동일한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또는 ‘장기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삶의 질 향상 지원법’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임대를 하는 경우에는 30년 이상을 임대할 수 있는데 민간에서 민법상 임대를 할 경우에는 20년 이하로 밖에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장기 계약 해놓고 불리하면 “무효”

현실적인 부작용도 있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이 조항은 임대차 당사자가 원하더라도 어길 수 없다. 이 때문에 양측이 20년 이상의 계약을 원할 경우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사실상 30년 계약을 하고 그만큼의 임대료를 먼저 지급하되, 서류상으로는 ‘20년 계약 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10년 연장’이라는 식으로 계약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해도 이후가 더 문제다. 사정이 달라지면 불리한 쪽이 조항을 악용하는 경우다. 임차인은 상가 주변 상권이 괜찮다 싶으면 계약을 유지하고, 반대로 전망이 좋지 않다 싶으면 20년 초과 부분을 무효라고 주장하는 일이 발생했다. 신촌역사의 사례도 이와 비슷했다. 역으로 임대인이 상권 전망이 좋을 경우 20년 초과 부분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임대료 인상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이와 달리 이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에 반론도 있었다. 어쨌든 이 조항이 일정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몇몇 헌법 재판관도 “너무 긴 임대차 계약이 계약 당사자 일방에게 지나치게 불리할 수도 있다”며 “이 조항은 계약의 재검토 기회를 당사자에게 부여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사정 변경에 따른 계약의 재검토 기회 부여가 입법 당시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부작용에 대해서는 “우회적인 방법이 당사자로서는 불편할 수 있지만, 이 정도의 불편이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권리남용 등 계약 상대방을 보호하는 다양한 법리에 따라 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봤다. 또 공사대금 마련 등 현실적인 제약은 결국 20년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생기는 것인데, 이는 입법을 통해 상한의 수준을 조정하면 되는 것이지 법 자체를 없애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치열한 논의 끝에 2013년 12월 헌재는 답을 내렸다. 결론은 ‘위헌’이었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이 위헌이라고 봤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 조항이 현저히 변화된 현재의 사회·경제적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적 자치에 의한 자율적 거래관계 형성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사자의 의사를 배제하고 계약 기간을 강제함으로써 이를 악용할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은 이 조항이 의도하는 바가 전혀 아니다”라며 “이 법이 실현하고자 하는 공익은 극히 미미해 보이는 반면, 부작용 내지 불이익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2015년 12월 국무회의를 통해 민법 651조는 삭제됐다. 조문이 사라지면서 임대료를 돌려달라는 성창F&D의 소송도 기각됐다.

이후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당시만 해도 임대기간 제한이 사라지면서 부동산시장이 크게 변할 거라며 떠들썩해지기도 했다. 임대차시장이 유연화되고 신축 빌딩이 경우 투자 유치에도 유리해져 개발이 촉진될 거라는 전망이었다. 당시 언론에 나온 전문가들은 “20년을 초과하는 계약을 통해 거액의 임차료를 선납 받을 수 있게 되고 이렇게 되면 개발사업 자금 조달이 원활해져 개발사업이 활성화될 것” “20년을 초과하는 장기간의 임대차계약 체결이 가능해 향후 더욱 다양하고 유연한 부동산 거래 및 임대차 계약 구조를 설계할 것” “상가나 대형마트 등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더욱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장기간 영업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고 언급했다.

헌재 “공익은 미미하고 불이익은 매우 크다”

그러나 변화는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20년 이상의 장기 임대 계약이 늘지도 않았고, 이를 통한 투자 유치와 개발이 활발해지지도 않았다. 웬만한 계약은 기존의 관습인 ‘20년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활황일 때야 임대인도 임차인도 장기 계약을 선호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장기 계약은 서로에게 부담스러워졌다”며 “오히려 1~2년의 단기 계약을 피하는 임차안정성 문제가 중요해졌을 뿐 20년 초과 계약이 준 파급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제 사정으로 장기 계약보다는 단기 임대차 계약이 늘었고, 이로 인해 임차인 보호를 위한 임대차 기간 ‘하한선’이 이슈가 됐을 뿐 ‘상한선’은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법의 변화는 때로는 경제에 폭풍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이번엔 경제 사정으로 인해 찻잔 속 태풍에 그친 셈이다.

1406호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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