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로마의 멸망 원인과 일반화의 오류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마라톤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달리기를 하는데, 거북이가 아킬레우스보다 앞서서 출발하면 영원히 거북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제논의 역설’이다. 논리적으로는 아킬레우스가 10m를 따라붙으면 거북이는 1m를 전진하고, 전자가 또 1m를 전진하면 후자는 10㎝, 전자가 또 10㎝를 따라붙으면 후자는 1㎝ 전진하는 식으로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게 된다. 이는 아킬레우스가 거북을 추월하기 직전까지로 개념을 한정해 이동에 필요한 시간 변수를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오류이다. 이처럼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면 미시적 논리가 비록 정교하더라도 비현실적인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천년제국 로마(BC 753~AD 476)의 쇠퇴 이유를 생각해 보자.

먼저 목욕탕 원인론이다. 목욕을 좋아한 로마인들이 제국 각지에 건설한 호화로운 대규모 목욕장에 필요한 대량의 연료를 조달하기 위해 무리하게 산림을 벌채했다. 산림이 줄어들면서 농토가 황폐해져서 생산력이 떨어지고 사회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납중독을 원인으로 삼기도 한다. 로마의 도시들은 수로를 통해서 교외의 물을 공급받으면서 수도관을 납으로 만들었다. 또한 로마의 귀족은 은식기, 평민은 납식기를 주로 사용해 납중독이 발생하면서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져서 패망했다는 시각이다. 도덕파탄론도 있다. 아우구스투스(BC 63~AD 14) 황제 통치기부터 200여년 간 지속된 서양 역사상 전무후무한 로마의 평화, 팍스로마나(Pax Romana)의 시기에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풍조가 유행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사회의 윤리와 도덕이 무너져서 패망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게르만족 이동설은 4세기 후반 흑해 연안에 살던 게르만 계통 서고트족이 아시아에서 침입해온 훈족(흉노)의 압박에 따른 서쪽 이동에 원인을 찾는다. 서고트족의 압력으로 연쇄적인 게르만 계열 부족의 서진이 일어나면서 로마 국경을 침범한 게르만 부족들과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멸망했다는 분석이다.

목욕탕론과 납중독론은 현상의 단면을 보고 원인을 무리하게 추론하고 판단하는 ‘일반화의 오류’ 범주에 속한다. 로마인들이 대형 목욕탕을 호화롭게 짓고 대규모로 연료를 소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멸망의 주요 원인으로 설정하기는 무리다. 로마는 도로 인프라가 우수하고 물자의 유통이 활발했다. 오늘날 영국인 브리타니아에서 중동의 시리아에 이르는 광역권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체제였기에 국지적 연료 부족은 발생할 수 있어도 체제가 멸망할 정도로 심각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로마의 수도(水道)는 돌로 만든 물길을 따라 교외에서 시내까지 물을 끌어오고 마지막 단계에서 납관을 통과하는 구조였다. 수십m에 불과한 납관을 통과하는 동안 물이 인체에 치명적 수준으로 오염되기는 어렵다. 또한 납식기는 로마 멸망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용됐다.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풍조는 주로 종교 계통의 시각이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변방인 팔레스타인에서 태동해 수도인 로마로 진출, 세계성을 확보하고 로마제국의 쇠퇴기에 세력을 확대한 성격상 로마제국의 도덕적 타락을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어떤 나라나 말기에는 여러 가지로 흐트러지게 마련이고 로마도 예외는 아니지만, 오히려 종교의 시대였던 중세 후반과 르네상스 시기 교회의 타락은 로마에 맞먹는다. 교회법상 성직자의 결혼이 금지되었지만 고위직들은 공공연한 사실혼 관계였고 자식들에게 재산과 지위도 상속했다. 게르만의 이동은 중요한 원인이다. 연쇄적인 이동이 로마국경을 압박하고, 군사적 충돌이 빈번해지면서 로마는 급격히 약화됐다. 하지만 이 정도의 군사적 긴장은 로마에 일상적이었다. 융성기에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쇠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이 차이이다. 역사적으로 외침에 의해서 망하는 국가는 기실 이미 내부적으로 약화되고 있었던 상황에 외침이 겹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고, 더 많은 이유를 들 수 있다. 대제국 로마가 멸망한 이유는 여러 요인이 복합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은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다. 수많은 요인이 모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더라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이유를 추출해 내기 위해서는 객관적 근거와 합리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모자 크기로 말하면, 참 놀랄 만큼 차이가 심합니다. 저희는 변호사들과 거래가 많습니다만, 그분들의 머리 치수는 놀랄 지경입니다. 손님도 놀라실 겁니다. 아마 그분들의 머리가 그렇게 커지는 것은 생각할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국의 모자 장수는 머리 크기로 사람들의 자질과 능력을 판단한다는 유명한 예화이다. 이 역시 객관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듯이 우리는 모두 나름의 창문(window)으로 세상을 본다. 깨끗한 창문, 파란색 창문, 흐린 창문 등에 따라 사물의 색깔과 모양이 달라진다. 요즘 표현으로 프레임(frame)은 상황을 단순화시키고 효과적인 사고에 도움이 되지만 프레임의 특성에 따라 세상을 보는 한계를 가진다. 창문을 통해서 바깥 세상의 전부를 볼 수 없듯이, 프레임을 통해서 외부의 모든 사실을 포괄할 수는 없다.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인식할 위험성은 상존한다. 그렇다고 프레임 없이 세상을 보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인은 교역, 변호사는 법, 의사는 의술, 종교인은 신앙, 군인은 무력이 세상을 유지시키는 가장 근본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 관점에 따라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성인이 되어 직업을 가지게 되면 각자의 영역에서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인과관계를 파악해 당면과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간다. 기업·군·행정 등 각 분야에서 의사결정을 위한 사실관계 파악도 쉽지 않지만 원인-결과의 인과관계 이해는 더욱 어렵다. 이는 사소한 부분을 전체로 확대하는 ‘일반화의 오류’와 중요한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간과하는 ‘프레임의 함정’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하지 않은 인간의 한계로 인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가능한 대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관점에 의문을 던지고 성찰하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오류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11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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