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탈 진실 시대의 시장·정부 실패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세상에 위험한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경제학자와 정치 사상가의 아이디어들이다.’ 경기 진작을 위해 정부의 시장 개입과 재정지출 확대를 옹호했던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했던 말이다. 오늘날 세계에 유행하는 정부 팽창의 길을 열었던 케인스는 그의 대표적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1935)의 끝을 이렇게 맺고 있다. ‘경제학자와 정치 사상가의 아이디어는 옳든 그르든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들의 아이디어만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없다. 누구의 어떠한 지적인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실용주의자조차도 현존하지 않은 경제학자의 노예인 경우가 많다…(중략)… 그래서 선이든 악이든 세상에 위험한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아이디어이다.’

케인스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로 마무리했을까? 고인이 된 지 오래니 그의 진정한 속내를 알 길은 없으나 틀린 말은 아니다. 케인스 본인의 아이디어부터가 그렇다. 그가 주창한 수정자본주의 아이디어는 지금도 시장 실패의 가설을 기저에 깔고 경제 문제에 대한 정부 역할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논리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예산은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정부는 규제와 육성 또는 보호의 명분을 앞세워 경제에 대한 직·간접적 지휘와 관여의 범위를 갈수록 넓혀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가 시장실패(market failure)보다 더 개연성이 높고 위험하다. 그러나 케인스는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한 흔적이 없다. 전통적 의미의 시장실패는 외부효과나 정보의 불완전성 또는 무임승차의 문제가 심각한 경우에 나타나고, 그 결과 사회적 필요량보다 과소 또는 과대 생산·공급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론적으로는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과소 생산 상품에는 보조금을, 과대 생산 상품에는 세금을 적절히 부과하면 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정책 실무에 들어서면 혼란과 어려움이 가중된다. 어느 부문에서 얼마만큼의 시장실패가 존재하는지는 아무리 유능한 정부라 해도 정확히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시장이든 완전하지 않다. 동일한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포진해 경쟁하는 것조차도 시장실패의 한 단면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니 완벽한 세상을 꿈꾸는 니르바나 관점(nirvana approach)에서 보면 정부는 거의 모든 시장에 언제든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실제로 어느 시장, 어느 산업에 정부의 보이는 손길을 작용시킬지의 여부는 경제학의 냉철한 이론과 체계적인 분석보다는 여론으로 포장된 민심의 향배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애써 시장실패 분야를 정확히 식별했다고 해도 또 다른 난제가 있다. 정부가 개입해서 또 다른 왜곡을 유발하지 않고 시장 실패를 깔끔하게 해소하려면 세금 또는 보조금을 얼마만큼,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관련 사안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 때문에 경제학자들에게 이 문제를 물어봐도 열이면 열 모두 의견이 갈린다. 더구나 경제에 관한 정책이라고 해도 정책 입안을 책임진 공무원으로서는 경제학적 논리만 따질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시장실패 때문에 정부 개입 논의를 시작했어도 정책을 실제로 입안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적 논리는 퇴색하고 다른 논리에 밀려나는 게 다반사이다. 예를 들면 5년 주기로 바뀌는 국정철학, 조세수입 걱정, 예산 승인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의 정치적 이해득실, 이익집단과 시민단체의 압력 등의 요인이 경제학적 논리보다 정책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그렇게 되면 시장실패론에 기초한 정부 정책은 식별의 첫 번째 난관, 측정의 두 번째 난관을 넘는다고 해도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듯이 대개의 경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그리고 때로는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정부실패로 귀결된다.

앞의 인용구를 다시 보면, 케인스는 경제학자의 힘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善)이든 그릇된 방향(惡)이든 경제학자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시장실패론에 기초한 정책을 포함해서 경제 정책 전반에 경제학적 논리가 얼마나 제대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의문이 인다. 우리나라만의 최근 현상일까? 케인스가 이 시대를 살았더라면 그래도 여전히 경제학자의 영향력이 위험할 정도로 높다고 했을까? 1930년대에는 미국이라 해도 보통사람의 언로(言路) 접근성은 제한적이었고 특히 케인스처럼 저작물 발간을 통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층은 더욱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지식인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그만큼 컸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원하는 이상의 정보를 손쉽게 접하고,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와 단상(斷想)을 지구인에게 실시간으로 날릴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지금은 누구나 지식·정보의 생산자이자, 편집·공급자이며 여론 조성자이다. SNS를 통해 유대감을 쌓고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지식인의 영향력은 당연히 케인스 시대만 못하다. 그러나 인터넷과 SNS의 보편적 접근성은 경제 외적 영역에서의 또 다른 시장실패를 부각시키는 문제를 낳고 있다. 지식과 정보시장이 완전하다면 거짓 지식과 가짜 정보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같을 경우 품질 좋은 제품이 선호되고 열악한 제품은 경쟁에 밀려 도태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지식·정보·여론시장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가끔 발생한다. 197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Herbert Simon)은 죽은 경제학자의 아이디어에 빗대어 이런 현상을 ‘지식사회의 그레샴 법칙(intellectual Gresham’s law)’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먼 옛날 금속화폐 시대에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했듯이 거짓 지식·정보가 참 지식·정보를 몰아낸다는 의미이다.

사이먼이 이 표현을 쓸 때만 해도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이전이었다. 그러다 인터넷과 SNS가 적극 활용되면서 가짜 뉴스(fake news)와 그 영향력이 세계적인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이에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2016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탈 진실(post-truth)’을 꼽은 바 있다. 탈 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더 크다는 의미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대표적 사례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을 꼽았다. 이처럼 지식·정보·여론시장의 불완전함이 공공선택의 중대한 실패 또는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는 사례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SNS에서 횡행하며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문제도 심각하다.

작금의 현실에서는 지식·정보·여론시장의 불완전함이 경제 영역의 시장실패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해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케인스의 표현을 바꿔서 세상에 위험한 것은 경제학자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탈 진실의 확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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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호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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