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러다 중국 뒤쫓기 급급할 수도 

 

양재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재계의 대표 창구인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이 1월 2일 공개된 기자단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우리가 더 규제가 많다” “새로운 산업이나 중대한 변화에 대해 규제 벽이 더 많다면 이해가 되겠느냐”고 토로했다. 이튿날 정계·관계·재계 인사가 모인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도 “후발주자로 생각해왔던 중국에선 가능한 일이 한국에선 불가능한 사업 모델도 상당수”라며 같은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17만 상공인을 대표하는 대한상의 회장이 새해 벽두 절규에 가까운 심정을 토로한 것은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가는 ‘규제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 때문이다. 박 회장은 “국회를 다섯 번 찾아갔고, 발이 아플 정도로 다니면서 호소했는데도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허망하다”고 털어놓았다. 20대 국회가 발의한 기업 관련 법안 1000여 건 중 690여 건이 규제 법안이란 수치를 제시하며 “한국의 유일한 경쟁력이 스피드인데 국회가 그 장점을 와해시킨다”고 꼬집었다.

닷새 후엔 우리나라 창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1~9월 중국에서 신설 법인이 하루 1만6500개씩 생긴 데 반해 한국은 270개에 불과했다. 인구 규모가 워낙 차이가 나니 인구 1만 명당 하루 평균 창업기업 수로 보자. 중국이 2012년 14개에서 지난해 32개로 두 배 넘는 수준으로 증가한 반면 한국은 15개로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 창업기업들이 탄탄한 창업생태계와 정부의 적극 지원에 힘입어 성장동력으로 자리를 잡는 사이 한국은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다.

한국 경제가 자꾸 중국에 비교당하고 있다. 경제단체부터 공공기관, 연구소, 오피니언 리더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비교해 못하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한국에는 중국에도 없는 낡은 규제가 널려 있는데다 과학·기술 경쟁력 순위에서 이미 중국에 밀렸고(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평가), 핀테크·인공지능(AI)·드론·재생에너지 등 4차 산업혁명과 미래 먹거리 산업에서 뒤처졌다는 내용 등이다.

1970~80년대 한국이 대만·싱가포르·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4룡’으로 불리며 초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중국 경제는 비교 대상에 끼지 못했다. 1990년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목표로 세계화를 추진할 무렵에도 주된 비교 대상은 OECD 회원국이었다. 중국이 1978년부터 개혁개방 정책을 취하며 용트림을 할 때에도 중국 땅은 저임금을 노린 공장 이전지로, 중국 제품하면 ‘짝퉁’ 취급했다.

언제 추격해오겠냐며 한국이 방심한 사이 중국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굴기(崛起)’를 외치며 기술 추격국 단계를 벗어나 기술 선도국으로 급성장했다. 13억 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넓은 시장과 정부의 저강도 사후 규제가 혁신창업을 이끌며 디지털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 사이 한국 경제는 조선·철강·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이 흔들리고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서 늙어갔다.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세계 100대 사업모델이라도 한국에서 창업했다면 절반 이상(57개)이 제대로 꽃 피우지 못했거나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고 분석할 정도다. 융·복합 서비스나 세상에 없는 혁신산업을 시도할 경우 산업 분류가 돼 있지 않거나 기존 사업자 위주라서 등록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인 유니콘 수로 판가름 난다. 미국이 108개, 중국 58개인 데 비해 한국은 단 두 개에 불과하다.

중국 베이징에선 현찰 없이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다. 집 앞에 세워진 노란색 오포 공유 자전거부터 공유 자동차와 지하철 이용, 가판대에서 물건 구입, 식당에서 밥 먹고 계산하는 일까지 QR코드를 찍거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모바일 결제가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민 식당에서 식사한 후 대사관 직원이 테이블 위 바코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자 결제되는 것을 보고 놀랐을 정도다. 이는 중국에 신용카드 사용이 활성화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입 문턱이 높은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뛰어넘어 모바일 결제로 직행한 경우다. 중국 인구의 3분의 2인 9억 명이 스마트폰 위챗(微信, 한국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 앱을 사용한다.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일지 모르지만 모바일 결제 등에선 중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

AI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1월 9일 개막한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 2018’의 키워드는 AI. 주역은 가전·자동차 메이커에서 구글·아마존 등 미국 IT 2강으로 바뀌었다. 구글과 아마존이 자사의 AI 플랫폼 어스시턴트와 알렉사를 내세워 앞서가고, 가전·자동차 업체들은 두 회사 AI 플랫폼을 탑재한 제품을 선보이거나 탑재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도 주목을 받은 곳은 중국의 IT 기업 바이두다. ‘중국의 구글’로 불리는 바이두는 독일 다임러 등 글로벌 기업 50개사가 참여하는 아폴로 계획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구축하고 있다. 한때 기조연설의 대표주자였던 한국 기업들은 2년 연속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전기차와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 양방향 인터넷·모바일 서비스가 가능한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카셰어링(차량공유 서비스) 등 차량 제조와 이용 면에서 차세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 자동차산업과 시장은 이런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종주국인 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인도까지 화석연료 차량의 퇴출 시기를 2025~2040년으로 선언하는 등 전기차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생산량 6위인 한국은 화석연료 사용 제한 시점을 설정하기는커녕 전기차 안전 기준도 이제야 입법예고한 상태다. 현대·기아차도 전기차보다 수소연료 자동차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

전기차 대비도 중국에 뒤졌다. 중국은 2015년 전기차(신에너지 차량) 육성을 포함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다. 2025년까지 전기차 700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전기차 생산쿼터를 2019년 10%, 2020년 12%로 정했다.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 순위 10위 업체 중 6곳이 중국 브랜드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지난해 -28%라는 참혹한 판매 실적을 받아 든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CES 2018 현장에서 털어놓았다. “굉장히 심각했다. 좋은 주사를 맞은 것 같다”고. 예방주사는 접종자의 건강이 괜찮을 때 맞으면 효과가 있지만 허약한 상태에선 오히려 탈이 나기 쉽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굼뜨면 죽는다. 기술혁신과 소비행태 변화에 머뭇거리다 도태되는 것은 순간이다. 중국도 하는 일을 우리가 속도감 있게 더 잘해내려면 정부와 국회가 사명감을 갖고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이것만 하라’는 포지티브 규제방식에서 ‘이것만 빼고 다하라’는 네거티브 규제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은 구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중국에 비교당하면 경제 주체들의 심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체질을 강화하고 앞서나가자.

1418호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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