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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보복으로 정치 문제 푸는 중국] 한국은 눈 뜨고 당하고 대만·일본은 당당히 맞서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노벨평화상 수상자 놓고 노르웨이도 원칙적 대응 … 한국은 사드 갈등 불씨 남아

▎한·중 정상회담 등으로 유커 관광 재개 기대감이 커졌지만 한산한 지난해 연말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
2018년에는 중국이 정치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풀려는 시도가 사라질까? 지난해 중국은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비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한국에 경제 보복 등 갖은 압박을 가해왔다. 중국의 경제 보복 사태는 한국 경제에 충격을 줬을 뿐 아니라 한국 국민에게 큰 앙금을 남겼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과 관련해 외교적 ‘무례’ ‘홀대’론이 나온 것과 관련이 크다.

한국 외교가 대범하게 대처하고 항의하지 못해 일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의 외교부 국감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3대 원칙을 밝히면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시도한 것부터 비판 대상이다.

물론 정부는 갈등 봉합을 위한 노력이며 이런 원칙은 한국 정부가 이전부터 유지하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치 문제를 경제 압박으로 해결하려는 중국의 막무가내 행태 앞에 우리가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굽히고 들어가 주권 사안인 안보 입지를 스스로 좁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국제 규범에 정면으로 대항해 정치적 불만을 경제 보복으로 풀려는 중국의 고압적이고 비합리적인 처사를 합리화해주는 측면도 있다.

중국의 고압적·비합리적 처사 합리화 우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중구 신세계면세점에서 유커들이 면세품을 구매하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인 관광객의 연말 쇼핑 수요가 다소 늘었다. / 사진:뉴시스
앞으로 중국이 정치적 불만이 있으면 한국에 경제 보복을 가하는 것을 하나의 ‘규범’으로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크다. 실제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14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에 대해 “한국의 적절한 처리”를 촉구했다는 것도 석연치 않다. 사드 문제를 계속 불씨로 남겨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중국의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연말 한·중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국 단체관광객 송출을 여전히 규제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단체관광객 송출을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나 시장 기능이 아닌 당과 국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중국의 존재는 거북하기만 하다.

사실 지난 몇 년 새 중국이 정치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풀려고 시도한 대상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2010년 일본이 센카쿠열도(尖閣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臺)) 인근 해상에서 중국 어선을 나포하자 희토류 금속 수출 금지, 일본 관광 자제, 도요타자동차 뇌물공여 혐의 조사 등 전방위로 압박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계기로 희토류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대체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기술과 경제력, 통상외교를 바탕으로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물론 중국인 선장을 석방하고 양국 총리회담을 열어 민간경제 교류 재개에 합의하는 등 외교적 노력도 병행했다. 하지만 일본은 센카쿠 영유권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중국은 2012년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 방침에 반발해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자동차와 화장품 수입이 일시 감소한 후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흐지부지됐다. 당당히 맞서는 나라에 중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국과 달라도 너무도 다른 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센카쿠열도 갈등 후 일본은 중국 의존도 벗어나려 노력


▎2016년 1월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독립을 강력히 주장하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앞서 나가자 중국은 대만의 중국 의존을 이용해 경제 제재를 위협했다. 중국은 차이 후보가 당선하자 단체관광객 송출을 중단하는 등 전방위 경제 압박에 나섰다. 사진은 차이 총통(가운데) 취임식 모습 / 사진 제공 : 타이베이 사진기자협회
중국은 2010년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뽑는 노르웨이 의회가 중국 반체제 인사 류사오보(劉曉波)를 선정하자 연어 수입을 줄이며 노르웨이에 보복했다. 중국이 감히 세계적인 권위와 역사가 있는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개입하려고 시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먹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중국의 이미지만 악화시켰을 뿐이다. 노르웨이는 중국과 화해를 원했지만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이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굽히지 않았다. 대신 한국·일본 등에 냉동연어 대신 선어 수출을 늘리고 홍콩을 통한 대중 우회 수출로 타격을 줄였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에도 간섭하려는 규범 파괴자라는 비난만 들었을 뿐이다.

중국은 자국 경제에 핵심적인 부품과 소재 공급 국가인 대만에도 정치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풀려고 시도했다. 중국과 대만은 특수 관계다. 국공내전 패배로 1949년 7월 정부를 대만의 타이베이로 옮긴 중화민국(대만)은 그해 10월 들어선 중국으로부터 끊임없는 공세에 시달렸다. 중국은 1958년 저장(浙江)성 해안에 인접한 대만령 진먼다오(金門島)에 포탄 47만발을 퍼부은 것을 시작으로 대만에 무력 공세를 계속하다가 경제 교류가 시작되면서 이를 중단했다. 중국이 대만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경제 발전에 나선 중국은 1992년 11월 홍콩에서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會)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구두 합의하면서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중국은 이후 대만의 역대 정권에 ‘92원칙’으로 불리는 이 내용의 재확인을 계속 요구해왔다. 2000~2008년 대만 독립 성향을 드러냈던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집권기에 양안관계는 얼어붙었다.

2008~2016년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총통 시절에는 다시 훈풍이 불었다. 2010년 사실상 ‘양안 자유무역협정(FTA)’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체결되면서 양안 교역 규모는 2009년 1062억 달러에서 2014년 1983억 달러로 늘었다. 지난해는 1987년 양안 교류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양안은 지난 30년 간 정치적인 대립에도 경제 부문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만의 중국 의존이 심화했다는 점이다. 대만 경제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대만 대외무역(5108억 달러)에서 중국대륙(홍콩 포함)이 차지하는 비율은 30.8%(1576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대륙은 대만 수출 2803억 달러의 40.1%(1223억 달러), 수입 2305억 달러의 19.7%(453억 달러)를 차지한다. 대만은 동남아(아세안 10개 회원국)에 512억 달러(18.3%), 미국에 335억 달러(12.2%), 유럽에 262억 달러(9.4%), 일본에 195억 달러(7%)를 수출했다. 대만은 전체 무역에서 497억 달러의 흑자를 봤지만 대륙에서는 669억 달러의 흑자를 봤다.

민간 교류를 담당하는 해협기금회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 거주하는 대만인은 100만 명이 넘으며 2016년 중국의 단체관광객 송출 제한에도 중국인 350만 명, 대만인 570만 명이 양안을 오갔다고 밝혔다. 중국의 압박으로 양안 지도자 간 교류만 이뤄지지 않을 뿐, 중국 경제에 필요한 대만산 부품·소재 수입이나 인적 교류 등 다른 분야는 중국 정부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있는 셈이다.

2016년 1월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독립을 강력히 주장하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앞서 나가자 중국은 대만의 중국 의존을 이용해 경제 제재를 위협했다. 대만총통 선거 개입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이 선거에서 차이 후보가 56.1%를 득표해 31% 획득에 그친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에 압승을 거두자 당선하자 단체관광객 송출을 중단하는 등 전방위 경제 압박에 나섰다. 중국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중국과의 관계를 빼놓고는 침체된 대만 경제를 바꿀 수 없다. 독립 노선을 추구하면 죽음의 길을 걷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중국의 뜻을 거스르면 경제 보복을 하겠다는 압박이다.

단체관광객 송출 중단은 중국의 경제적 압박의 가장 가시적인 분야다. 대만 관광국 통계에 따르면 매달 40만 명에 육박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2016년 5월 처음으로 20만 명 수준(27만1478명)으로 줄었으며 지난 6월에는 처음으로 10만 명(18만 9078명)대로 내려앉았다. 단체관광객 송출을 중국 당국이 좌우한 것이다. 이에 대만의 차이 총통은 “대만 국민은 대만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정부를 선택했다”라며 “대만의 민주주의 제도와 국가 정체성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는 중국에 대해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하며, 지속 가능하고, 대등한 양안 상호관계를 구축하겠다”라는 원칙을 밝히고 “어떤 형태의 압박이든 양안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오히려 맞바람을 놓았다. 양안관계는 정치·경제할 것 없이 호혜평 등이 원칙이며, 대만에 경제 보복을 가하면 중국에도 손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오히려 중국에 압박을 가한 것이다.

결국 중국은 단체관광객 송출 제한 외에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대만이 중국에 의존하듯이 중국도 대만에 상당히 의존하기 때문이다. 중국 수출상품 생산에 필요한 대만산 부품, 소재 수입과 인적 교류는 줄지 않았다는 것이 증거다. 중국의 경제 보복은 양날의 검이어서 자칫 중국도 피해를 볼 수 있다. 더구나 부메랑 성격이 있어 언젠가 그 역풍이 중국에도 올 수 있는 셈이다. 한국이 간과한 부분이다.

대만에 대한 경제 보복은 중국에게도 부정적 영향


▎지난해 12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사드 문제는 불씨로 남아 있다는 평가다.
그래도 단체관광객 송출 금지만으로도 대만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경제적 충격보다 심리적 충격이 더 강했다. 중국 관광객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은 대만 여행업자들은 지난해 9월 12일 타이베이의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숙박업·관광버스업 종사자와 여행 가이드 등으로 이뤄진 13개 노조단체 2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차이 총통에게 중국 단체관광객 송출을 복권할 대책만 촉구한 것이 아니라 ‘제3의 대안’도 제시했다. 줄어든 중국 단체 관광객만큼 다른 나라 관광객을 늘릴 수 있도록 동남아 10개국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도 요청한 것이다. 인구 2355만 명의 대만에는 이미 동남아 출신을 중심으로 약 3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가 있다. 불법체류자 증가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해 비자 규제 완화는 예민한 주제였다.

하지만 대만 정부는 오히려 더 앞으로 나갔다. 국가 정책과 국민 경제, 자존심과 밥그릇 사이에서 고민하던 대만 정부의 선택은 ‘동남아 관광객’ 확대였다. 대만은 지난해부터 ‘신남향정책’을 추진하고 동남아 지역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해 해당 지역 관광객을 늘리고 있다. 대만 관광국의 황이핑(黃怡平) 국제과장은 “무슬림(이슬람신자) 인구가 많은 동남아 지역의 특성에 맞춰 수출용 할랄산업을 키우고 동시에 국내 식당과 호텔을 ‘무슬림 프렌들리’로 전환하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할랄은 코란 규정에 맞춰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가리킨다. 대만을 다니면서 ‘할랄’ ‘무슬림 프렌들리 업소’ 마크를 붙인 호텔과 식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중국 관광객 줄자 대만은 동남아로 눈 돌려

민간의 노력은 더욱 적극적이다. 대만소상인단체인 아태연맹총상회(亞太聯盟總商會)의 린팅궈(林定國) 이사는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야시장부터 ‘글로벌 프렌들리’ ‘무슬림 프렌들리’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타이베이의 닝샤(寧夏) 야시장을 찾았더니 중간중간에 영어는 물론 태국어·베트남어 안내가 붙어있다. 뿐만 아니고 야시장 포장마차에 QR코드까지 붙여놓고 있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이를 갖다 댔더니 팔고 있는 대만 특산 요리의 재료 원산지오 조리법이 중국어와 영어로 나왔다. 린 이사는 “앞으로 동남아 언어를 포함한 다국어 지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라며 “손님들에게 플라스틱 포장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친환경 스테인리스 도시락을 배부해 음식을 사서 숙소에서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만을 ‘동남아 관광객에 친절한 나라’로 느끼게 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대만은 이렇게 정부부터 야시장 상인까지 나서서 새로운 관광객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중국 의존증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중국이 정치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풀려는 무리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1418호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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