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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찌꺼기의 화려한 변신] 비료·활성탄·학습용 점토로 재활용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생활폐기물이 친환경 자원으로 ... 폐기물 등록 업체만 수거하는 제한 풀어야

▎스타벅스는 커피 찌꺼기로 만든 퇴비를 지역 농가에 제공하고 있다. / 사진:스타벅스 제공
아메리카노 한 잔에 보통 원두 15g을 사용한다. 커피를 내린 다음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면 13.5g 내외의 커피 찌꺼기가 나온다. 커피가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전국에서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커피 찌꺼기 양이 어마어마하다. 한국은 20세 이상 성인 1인당 연간 50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나라다. 커피 매장 1곳에서 한 달에 약 1t의 커피 찌꺼기가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습기를 완전히 제거한 커피 찌꺼기 10만t이 해마다 발생한다. 현행법상 커피 찌꺼기는 생활폐기물이다. 함부로 버렸다간 큰 코 다친다. 반드시 종량제 봉투에 넣어 전문 업체에 넘겨야 한다.

이렇게 골치 아픈 생활폐기물이던 커피 찌꺼기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매립·소각 처리하는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으로 접근한다. 해외 사례를 참고하며 커피 찌꺼기 활용법을 연구해왔다. 그 덕에 커피 찌꺼기는 친환경 자원으로 화려한 변신하고 있다. 종량제 봉투에 담겨 실려가던 신세에서 천연비료와 학습용 점토, 활성탄이나 축산사료를 만드는 재료로 거듭나고 있다.

해마다 커피 찌꺼기 10만t 나와


국내에서 커피 찌꺼기 활용의 선구자로는 이현수 꼬마농부 대표가 꼽힌다. 그는 2011년 원두 찌꺼기로 버섯을 재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저렇게 많은 커피 찌꺼기를 그냥 버려야 하나’라는 커피 애호가인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득 들었다. 미국 사례를 연구하며 활용법을 찾았다. 그는 커피 찌꺼기에 목화솜 껍데기와 사탕수수 껍데기를 섞은 후 버섯 종균을 넣어 배양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커피 찌꺼기가 버섯균에 좋은 영양분으로 작용하는 한편, 버섯균은 커피 찌꺼기 속의 카페인을 분해해 커피 찌꺼기를 퇴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사진:도시광부 제공
나용훈 도시광부 대표는 ‘커피숯’을 만드는 스타트업 사업가다. 커피 찌꺼기로 ‘친환경 바비큐 연료’를 생산한다. 말린 커피 찌꺼기 99%와 식물성 성분의 천연 바인더 1%를 섞어 압력을 가하면 탁월한 화력의 숯이 탄생한다. 아이디어와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 평가한 롯데액셀러레이터로부터 자금과 공간을 지원받아 회사를 키우고 있다. 나 대표는 “커피 숯 분석 결과 중금속 물질 함량이 0%였고, 연소하며 나오는 연기도 적다”며 “버리는 자원을 활용해서 환경오염을 줄이며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커피 찌꺼기를 학용품 원재료로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임병걸 커피큐브 대표는 3년 간의 연구 끝에 커피 찌꺼기에 식품첨가물 13종과 물을 넣고 커피 점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11년 커피 점토 분말 국내외 특허도 취득했다. 2012년엔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최우수 수상작으로 뽑히면서 사회적 가치까지 인정받았다. 이준홍 커피규브 이사는 “커피 찌꺼기에 식품 첨가물을 넣어 점토로 부엉이 공예품 ‘씨울’을 제작하는데 화학제품과 방부제가 없다”며 “아토피 아이도 안심하고 만질 수 있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친환경 교구 요청을 받아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하자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정부와 대기업도 움직였다. 스타벅스와 엔제리너스 같은 대형 커피 브랜드가 공공기관과 손을 잡고 커피 찌꺼기 활용에 나섰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최근 좀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커피 찌꺼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6년 배출된 커피 찌꺼기 4417t 가운데 3411t을 재활용했다. 2200t을 친환경 커피 퇴비와 꽃화분 키트로 만들어 지역 농가와 고객에게 제공했다. 2017년에는 4994t 가운데 4425t을 재활용했다.

2016년 4월엔 환경부·자원순환사회연대와 함께 커피 찌꺼기 재활용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스타벅스에서 발생하는 커피 찌꺼기를 2018년까지 모두 친환경 비료로 만들어 농가에 지원할 계획이다. 스타벅스는 카길(Cagil)에 사료용으로 커피 찌꺼기 100t을 전달했고, 환경에너지 소재화 기업인 AMT(Advanced Materials Technology)에 연료용 활성탄 생산을 위해 2000t을 전달했다.

수거→처리→업사이클링 원스톱 업체 늘려야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만든 화분(왼쪽)과 커피 동물 디퓨져. / 사진:커피큐브 제공
커피 찌꺼기에는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질소·인산·칼륨 등이 풍부하다. 이와 달리 중금속 성분이 없어 천연비료로 적당하다. 톱밥·낙엽·왕겨·볏짚 등 유기물과 커피 찌꺼기를 9대 1의 비율로 섞으면 퇴비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퇴비는 냄새가 적고 토양 속에 있는 중금속 흡착 효과까지 있어 인기가 좋다. 전대경 미듬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커피에 벌레가 싫어하는 성분이 있어 농약을 쓰지 않아도 병충해를 방지할 수 있다”며 “커피 내린 물을 식물 잎에 뿌려두면 병충해 방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커피 원액을 추출하고 생긴 찌꺼기를 원예식물 재배에 필요한 배양토로 활용하면 좋다”고 말했다. 롯데리아와 엔제리너스도 2016년부터 커피 퇴비를 생산 중이다. 제작한 퇴비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도시 농업 박람회를 통해 공급해왔다. 2017년에도 친환경 커피 퇴비 3000포와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일회용 투명컵을 화분으로 재활용해 모종과 퇴비를 증정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법을 정비하면 커피 찌꺼기 사업을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원료 공급망 확대가 필요하다. 지금은 폐기물 처리 등록 업체만 커피 찌꺼기를 수거·운송할 수 있다. 수거 업체가 폐기물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커피 찌꺼기만 따로 모으기 어려운 현실이다. 2015년 동서식품은 다양한 커피 찌꺼기 활용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커피 찌꺼기 수거·운송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 그냥 걷으면 불법이고 따로 모으자니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전량 소각·처리하는 중이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사회적기업과 함께 활용법을 찾았지만 현행법상 문제가 있어 사업을 내려 놓았다”고 말했다. 커피큐브 이준홍 이사는 “커피 찌꺼기의 수거·운반·처리 등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며 “수거→처리→업사이클링이 원스톱으로 가능한 업체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문 수집 업체를 활용할 계획이다. 전문 폐기물 수집 업체가 주요 커피점 매장을 방문해 위탁 수거하고 이를 재활용 업체로 운송하는 구조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내 대표적 커피 업체와 함께 시범 사업을 진행했었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1418호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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