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일본에서 자살·범죄가 줄어든 까닭은 

 

타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니혼게이자이신문 서울지국장)
최근 일본 경제가 호황인지 아니면 제자리걸음인지를 놓고 갑론을박 논란이 적지 않다. 지표만 보면 엇갈리는 점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대기업 실적은 확실히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업률도 기록적으로 낮다. 완전고용이라는 견해도 많다. 다만 어느 여론 조사에서도 ‘경기가 좋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경제성장률도 고작 1~2%에 그친다. 이에 대한 평가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경제정책은 무엇을 위해 펼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보자. 경제정책은 결코 주가 부양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숫자만 높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100% 신뢰하기 어렵다. 다만 ‘국민의 행복과 안녕’이라는 목적 자체는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 들어 흥미로운 통계가 발표됐다. 경찰청이 내놓은 ‘자살 통계’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의 세월을 겪는 동안 도쿄의 아침 출근 시간에는 전철이 지연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도쿄 전철은 ‘시계보다 정확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평판과 다르게 연착을 반복했다. 플랫폼에서는 “○○역에서 인명 사고가 있어 전철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자주 흘러나왔다. 그만큼 전철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왜 그토록 자살을 많이 한 걸까.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일본인들은 왜 자살을 많이 하는가”라는 질문을 정말 자주 받았다. 일본은 불명예스럽게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경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1998년 일본의 자살자 수는 3만 명을 넘었다. 이후 14년 연속 3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은 다르다. 예전의 ‘자살대국’의 불명예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난 1월 19일 발표된 자살자 통계를 보면 2017년 자살자 수는 전년 대비 757명 감소한 2만1000명이었다. 가장 많던 2003년 3만4000명에 비하면 1만3000명, 약 40%나 감소했다. 자살자 수는 지난 8년 연속 감소 추세다. 일본 경찰청은 형사 범죄에 대한 통계도 발표했다. 지난해 전국 경찰이 인지한 형사 범죄는 전년 대비 8.1 % 감소한 91만5000건이었다. 2016년 처음으로 100만건을 밑돌았는데, 추가로 더 감소했다. 형사 범죄는 15년 연속 감소했다. 2002년 285만 건과 비교하면 약 70%나 줄었다. 살인·강도 등 강력 범죄부터 소매치기 등 길거리 범죄, 절도 등 모든 범죄가 지난 10년 동안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범죄자 검거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살인·강도 등 강력 범죄의 검거율은 19년 만에 80%를 넘어섰다. 형사 범죄는 줄고 있는 데 비해 검거율은 오르는 점은 일본 사회로 봤을 때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자살·범죄의 감소는 잃어버린 20년 이후 일본에 새로 나타난 모습이다.

물론 그 원인은 다양하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병원·학교, 민간단체들과 협력해 자살종합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에는 ‘자살대책추진실’까지 설치돼 있다. 아동·직장·고령층 등 여러 상황과 세대에 맞춰 대책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범죄 예방의 경우 경찰청이 범죄 유형을 분석해 치밀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방범 카메라와 도난방지 장치, 각종 안전 장치 등의 보급을 늘린 정책의 효과도 나오고 있다. 자살·범죄가 감소한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경제·가계형편의 고충’을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범죄 역시 ‘생존을 위한 범행’의 수가 크게 줄었다. 범죄로 돈을 얻는 데 따르는 리스크보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일본이 버블 붕괴로 장기 침체에 빠져 있던 시절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맛봤다. 이 고통은 자연스럽게 자살과 범죄로 이어졌다. 경기 회복과 함께 자살이나 범죄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는 국민의 행복·안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경제를 이끌어가는 정책은 그만큼 중요하다. 정치인 중에 ‘자살과 범죄를 줄이겠다’를 경제 공약으로 내거는 사람은 없다. 대개 고용과 주가·기업실적·소득 등의 향상을 목표로 내건다. 그러나 자살·범죄야말로 많은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또 다른 경제지표라고 할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 ‘경기회복을 실감한다’고 답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많은 일본 국민이 환경과 분위기를 통해 직관적으로 경제가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고 느끼고 있다. 경기회복으로 자살·범죄가 감소하면서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일단 학생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일본 제일생명은 해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을 묻는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남학생 조사에서는 ‘학자·박사’가 15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2000년 이후부터는 줄곧 야구·축구 선수 등이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찾고 싶다는 아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또 대학생 사이에 뿌리 깊었던 공무원의 인기도 한풀 꺾였다는 조사도 나왔다. 불경기에서 비롯된 안정지향 심리가 사그라들고, 도전의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책은 돈벌이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 행복·희망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

물론 안타까운 점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의 자살자 수는 14년 연속 3만 명이 넘었으며, 90년대 이후 오랜 기간 형사범죄가 늘어났던 걸까. 정부는 과연 무엇을 했던 것일까. 버블이 붕괴했을 당시 많은 국민과 경영자, 고위 관료들은 ‘일시적인 위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때문에 거대한 흐름에는 눈을 감고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작은 대책에만 매달렸다. 과감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몰랐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일군 성공 경험에 취해 실패라는 새로운 현실에 대응하지 못했다. ‘내가 회사 다닐 때까지는 괜찮을 거야’ ‘설마 회사가 망하기야 하겠어’ ‘누군가 해결하겠지’ 등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퍼지며 일시적일 수 있었던 위기는 만성적 위기가 돼 버렸다.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된 이유다.

길을 잃은 기업인들도 외곽을 떠돌았다. 신규 사업을 개척하기 위해 무리하게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에 나섰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신규 유망 사업이 있을 리 없다. 가치도 모르고 거액을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기 일쑤였다. 일본 경제는 20년 동안이나 이런 실패를 거듭하고서야 터널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자살과 범죄율의 감소는 현재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는 지표인 동시에 과거 고통의 대가다. 특히 미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1420호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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