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고르디우스의 매듭, 해장술 그리고 경제정책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1. 고대에 프리기아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터키 영토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본디 왕이 없었는데 왕을 염원한 그들은 신탁을 청했다. 신탁이 알려주길 그들의 도시에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들어오는 첫번째 사람이 그들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마침 고르디우스라는 농부가 손재주가 좋은 그의 아들 미다스가 만들어준 소 수레를 타고 들어오자 곧바로 왕으로 추대됐다. 이에 고르디우스의 아들 미다스는 감사의 표시로 그 수레를 프리기아의 수호신에게 바쳤다(미다스는 후에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 곤경에 빠지는 인물로 오늘날까지 ‘미다스의 손’으로 유명하다). 그런 다음 미다스는 이 수레를 산딸나무 껍질로 만든 매듭을 사용해 말뚝에다 단단히 묶어 놓았다. 물론 그의 솜씨를 자랑하고 싶었던 탓인지 매듭을 최대한 복잡 다단하게 꼬아 놓았고 그 매듭의 끝이 어디인지도 전혀 모르게 숨겨 놓아 사실상 아무도 이를 풀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도시의 이름도 왕의 이름을 따서 고르디아가 됐다. 이 수레와 매듭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BC 4세기경에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정복전쟁을 하러 가는 도중에 그 도시에 잠깐 머무를 때에도 그대로 있었다. 그곳에는 또 다시 신탁에 의해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21세의 팔팔한 나이로 정복욕에 불탄 알렉산더는 이 말을 전해 듣고 한참을 낑낑대며 이 매듭을 풀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그러자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칼을 뽑아 이 매듭을 ‘잘라’버렸다. 이 매듭이 어떻게 ‘풀려야’ 되는 방법을 신탁이 세세하게 규정하지 않았으니 ‘잘라 푸는’ 것도 ‘푸는’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과연 그는 이 신탁이 예언한대로(?) 인도 북부까지 점령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됐다.

#2. 해장술은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다. 한자로는 해정주라고 하는데 ‘숙취를 푸는 술’라는 뜻이다. 이것이 오독(誤讀) 등으로 인해 이제는 해장술이 더 통용되는 말이 됐다. 해장술의 뜻으로 미국에서는 ‘Hair of the dog’이라는 속어가 많이 쓰인다. 개에 물렸을 때 그 개의 꼬리털을 태워 상처에 대면 낫는다는 속설에 기인했다고 한다. 즉 ‘술로 술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들어봐도 해장술의 효과는 거의 모든 이가 인정하는 것 같다. 필자의 경험도 그렇다. 오래 전 회사에 몸을 담고 있었을 때 일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밤 늦게까지 폭탄주를 나누어 마시며 회포를 푼 것은 좋았는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중요한 회사 업무를 처리해야만 했다. 새벽에 숙취를 못 이겨 잠을 깨었으나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 도저히 출근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숙취 해소 드링크와 진통제를 먹어도 별 효과가 없던 터에 집에 있던 청주를 따서 2잔을 마시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숙취가 사라졌다.

이렇듯 해장술은 확실히 효과가 있는데 이것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숙취를 다스리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는 규명되지 못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해장술 습관’을 반복하면 숙취가 문제가 아니라 알코올 중독이나 간경화 등 더 고질적인 문제로 이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숙취를 푸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푹 쉬면서 물을 자주 마시고 가벼운 운동이나 사우나로 땀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단 이 경우 해장술을 마실 때에 비해 고통의 시간을 조금 더 감내해야 된다.

요즘 국내에서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이후 북핵 문제가 과연 잘 해결될지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여러 가지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생각하면 (북핵 이슈를) 하나하나 푸는 게 아니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리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신문은 이를 대북 제재, 핵 동결 및 폐기 등 북핵 관련 문제를 ‘원샷 타결’ 해보겠다는 청와대의 의중이 드러난 발언이라 평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에는 북핵 문제가 ‘제대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타결되고 남북 간의 평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경제정책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이 단칼에 정책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면 참 좋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오히려 당장은 효과가 있어 보이기는 하나 부작용은 물론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다시 말해 ‘고르디우스 매듭 끊기’ 식의 정책은 ‘해장술 요법’과 같다는 것이다. 사실 이 ‘해장술 요법’은 양극화, 자산 버블, 장기 불황 등으로 특징 지어지는 오늘날 세계 경제의 모습을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이는 1990년대 초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으로 세계 경제로 편입되면서 시작됐다. 값싸고 풍부하되, 교육 받은 노동력에 끌려 세계의 기업들이 앞다투어 중국에 공장을 이전하자 이 나라는 단숨에 세계의 공장으로 뛰어올랐다. 이렇게 세계로 풀린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세계의 물가를 안정시켰다. 이에 각국의 중앙은행은 저물가를 이유로 더 이상 금리나 통화량 통제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미 연준을 필두로 아예 적극적으로 돈을 ‘찍어 내는’ 행보로 돌아섰다. 경제 규모 대비 과잉으로 풀린 돈은 자산시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제일 먼저 간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때마침 ‘디지털 혁명’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는 나스닥에 특히 많은 돈이 몰렸다. 이는 당연히 큰 버블을 일으키게 됐다. 이른바 닷컴 버블이나 IT버블로 불리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 버블이 꺼지면서 경기가 급랭하자 미 연준은 다시 저금리를 매개로 통화팽창 정책을 반복적으로 구사했다. 이렇게 풀린 통화는 새로운 버블을 만들어 경기를 쉽게 호황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반복되면서 집값 버블 형성 및 파열, 그리고 원유 등 원자재 버블 형성 및 파열이 반복되는 결과가 생겼다. 이 과정에 경제의 기초 체력이 크게 악화됐고, 장기 불황의 씨앗이 잉태됐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도 이러한 메커니즘을 ‘해장술’에 비유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여가 지났다. 공무원 수를 크게 늘리고,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며, 정부수반이 직접 일자리 현황을 챙기는 등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늘리겠다는 여러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왔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도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러나 3월 실업률이 지난 17년 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집값은 더욱 뛰었다. 최근 거래 절벽과 함께 집값이 조정을 받는 조짐을 보이나 이 현상도 얼마 갈지도 의문이다. 이는 혹시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고르디우스의 매듭 끊기’ 식으로 시행됐으나 그 결과는 ‘해장술’의 단기 효과로만 나타나고 근본적이 대책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사족 하나 붙여보자. 앞서 언급한 알레산더 대왕의 이야기이다. 그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은 후 불과 10여년이 지나고 32세가 되던 기원전 323년에 그는 갑자기 죽음을 맞았다. 그의 드넓은 제국은 그를 모시던 4명의 장군에 의해 쪼개졌다. 만약 그가 그 매듭을 ‘끊지’ 않고 찬찬히 풀었다면 그의 수명과 제국의 수명이 훨씬 더 오래 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1430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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