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양상 달라진 코스메슈티컬 2차전] 병원·제약사→화장품 제조사로 주도권 이동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한국콜마, CJ헬스케어 인수로 더마 화장품 공략 강화…제약사 지분 인수하거나 자체 경쟁력 강화

한국콜마는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로 잘 알려졌다. 의약품 영역에서도 위탁생산(CMO) 사업을 펼쳤지만 화장품 사업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그러나 몇 년 새 화장품에 검증된 효능을 지닌 의약 성분을 접목한 ‘더마 화장품’ 수요가 크게 늘었다. ‘더마’는 피부과학을 뜻하는 더마톨로지(dermatology)를 의미한다. 한국콜마가 제조·개발한 더마 화장품인 닥터자르트 세라마이딘 크림, 이아소시카라인 등이 매출을 주도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올 상반기 더마 화장품 의뢰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10배 이상 증가했다”며 “자극이 덜하면서 피부 개선과 진정에 효과적인 더마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콜마는 2월 20일 CJ헬스케어를 1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하며 본격적으로 코스메슈티컬 시장에 뛰어들었다.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은 ‘화장품(cosmetic)’과 ‘의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로, 그 결과물이 더마 화장품이다. 기존 화장품이 피부 관리나 미용에 초점을 맞췄다면 코스메슈티컬 제품은 기능성과 치료에 무게를 둔다. 이번 인수의 배경에는 일찍이 더마 화장품 시장의 성장세를 눈여겨본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의사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CJ헬스케어 인수로 한국콜마는 더마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날개를 얻었다. 그동안 부족했던 제약 기술과 유통망을 한번에 확보하면서 기존 화장품 개발·제조 사업에 시너지 효과를 낼 전망이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CJ헬스케어의 전문의약품 개발 기술 능력과 유통망 등을 활용해 더마 화장품의 신규 판로를 개척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내년 통합연구소 출범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코스메슈티컬 교육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코스메슈티컬 시장은 2012년 320억 달러(약 34조2800억원)에서 지난해 470억 달러(약 50조5600억원)로 성장했다. 인구 고령화로 안티에이징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미용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코스메슈티컬 시장 규모는 5000억원 안팎이다. 전체 화장품 시장의 5% 수준에 불과하지만 해마다 15% 이상 성장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코스메슈티컬 시장의 선전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관련 제품이 하나 둘 탄생해 병원과 제약사를 중심으로 시장을 키웠다. 최근 양상은 조금 다르다. 한국콜마를 비롯해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화장품 기업이 앞다퉈 제약사업에 진출하며 ‘코스메슈티컬 2차전’ 경쟁이 불 붙었다.

5000억원 국내 코스메슈티컬 시장 성장세 가팔라


LG생활건강은 지난해 11월 태극제약의 지분 80%를 446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한 데 이어 2월 주식 3540만주를 850여억원에 취득했다. 이로써 자회사 태극제약에 대한 LG생활건강의 지분율은 91.7%가 됐다. 태극제약은 기미·주근깨 치료제 ‘도미나크림’, 흉터 치료제 ‘벤트락스겔’, 멍·붓기 치료제 ‘벤트플라겔’, 화상 치료제 ‘아즈렌S’, 여드름 치료제 ‘파티마겔’ 등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일반의약품 매출액 중 70% 이상이 피부흉터·여드름·화상치료 기능제품이 차지할 정도로 피부연고 분야에서 강세다. LG생활건강은 이미 2014년에도 차앤박화장품으로 유명한 CNP코스메틱스를 인수해 더마 화장품 시장을 공략 중이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더마 화장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태극제약 인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자체적으로 전문 의약품·바이오 분야 연구개발(R&D)을 강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아토피피부염신약의 안정성 및 유효성에 대한 임상3상 시험을 식품안전의약처로부터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또 계열사인 태평양제약의 사명을 ‘에스트라’로 변경하고 더마 화장품을 전문적으로 제조, 병·의원을 중심으로 상품을 판매 중이다. 에스트라는 지난해 매출액 1141억원으로 전년 대비 10%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9% 늘어난 34억원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에스트라가 효자 역할을 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아이오페’가 최근 ‘더마 리페어 라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KT&G 계열사 코스모코스는 2016년 피부과학 연구소 노하우를 앞세운 더마 화장품 브랜드 비프루브를 선보였다. 색조 화장품 전문이었던 클리오도 지난해 9월 선보인 더마 화장품 브랜드 ‘더마토리’ 매출을 4개월 만에 2배로 키웠다. 에이블씨엔씨의 화장품 브랜드숍 미샤와 네이처리퍼블릭은 기존 브랜드에 더마 라인을 추가했다.

화장품 업계가 제약 사업 강화에 나선 것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해외 사업 부진도 한몫을 했다. 지난 2016년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며 사상 최대 실적을 자랑한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7315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선전한 부문이 더마 화장품을 생산하는 에스트라다. 중국 내 환경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며 환경오염에 대응하는 ‘항(抗)오염’ 소비 트렌드가 뚜렷해졌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뷰티 분야에서 안티폴루션 기능을 갖춘 더마화장품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사드 여파에도 중금속 배출이나 항산화, 해독 기능을 갖춘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더마 화장품만이 돌파구라는 게 중론”이라며 “일반 화장품 브랜드에서도 더마 라인을 준비할 만큼 기술력에 대한 투자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 중국 사업 부진으로 새로운 활로 모색


국내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계절과 상관없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각종 유해물질로부터 피부를 보호할 수 있는 더마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아름 융합연구정책센터 연구원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으로 피부질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해 성분이 배제된 순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며 “또 시장이 세분화되며 여드름이나 악건성 등 본인의 피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마 화장품을 판매하는 채널이 다양해진 점도 국내 화장품 업계가 코스메슈티컬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양지혜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과거 더마 화장품은 약국과 병원에서만 판매됐지만 최근에는 올리브영 등 헬스앤뷰티(H&B) 스토어와 온라인 쇼핑몰로 유통채널이 확대되면서 소비자가 더마 화장품을 접할 기회가 늘었다”고 말했다.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국내 고객의 더마 화장품 구매경험 비율은 2014년 16.1%에서 지난해 25.7%로 증가했다.

한편 제약기업의 화장품 사업 진출은 최근 수년 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2016년 기준 25개 제약사와 18개 바이오 업체도 더마 화장품을 출시하고 있다. 2015년 더마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 24’를 선보인 동국제약은 상처치료연고인 마데카솔의 성분을 활용한 ‘마데카크림’을 출시해 1년 반만에 200만개의 판매고를 올렸다. 홈쇼핑과 백화점·대형마트·면세점 등으로 유통채널을 확대하며 판매 중이다. 최근에는 미국 FDA 등록과 유럽에서의 임상테스트 등 해외 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동국제약 측은 홈쇼핑 채널을 먼저 공략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병·의원을 상대로 영업활동을 펼칠 때보다 구매력이 높고 입소문 마케팅을 펼칠 수 있었다”며 “지난해부터는 신규 라인업을 추가하고 마케팅을 강화해 매출액 역시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스메슈티컬 제품 유통채널 다양해져


대웅제약은 2016년 자회사 디엔컴퍼니를 통해 코스메슈티컬 브랜드 ‘이지듀’를 선보였다. 이지듀는 대웅제약의 특허 기술인 상피세포성장인자(EGF)를 함유한 화장품을 개발했다. 체내에서 생성돼 피부의 세포를 성장시키는 인자로, 피부 재생과 주름 완화, 피부 탄력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이지듀가 내놓은 ‘DW-EGF 크림 프리미엄’은 소비자 사이에서 ‘단백질 크림’으로 입소문을 타며 출시 1년 만에 175만개 팔렸다. 대웅제약은 국내의 인기에 힘입어 중국·홍콩·일본 등 아시아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종근당그룹의 건강기능식품 계열사 종근당건강에서 내놓은 ‘콘트라마크 크림’도 홈쇼핑 방송 2회 만에 단품 기준 3만5000개 주문을 기록하며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종근당은 앞서 독일 에스테틱 전문 제약사 ‘멀츠’와 제휴해 피부개선 화장품을 국내에서 독점 판매하기도 했다. 일동제약은 2013년 미백·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 ‘고유에’를 시작으로 ‘퍼스트랩’ 등 화장품 브랜드를 연달아 론칭하면서 화장품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화장품 사업을 사내에서 신사업팀을 통해 운영해오다 지난해 5월 화장품 법인 유한필리아를 설립, 2월에 유아용 스킨케어 제품 출시를 시작으로 화장품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바이오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지난해에만 3개 바이오벤처가 화장품 브랜드를 내놨다. 세포배양 전문 테고사이언스는 화상 피부 재생용으로 개발한 동종 유래 피부 줄기세포 치료제인 ‘칼로덤’ 기술을 적용해 ‘액트 원 씬 파이브’를 선보였다.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파미셀은 ‘셀바이텐’ 브랜드를 출시했다. 강스템바이오텍은 동화약품과 공동사업체를 설립하고 줄기세포 배양액 화장품 브랜드 ‘배내스템을 내놨다. 바이오기업인 파마리서치프로덕트는 2월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자회사 에스트라의 필러 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계약을 했다. 파마리서치는 히알루론산 필러 ‘클레비엘’ 브랜드를 확보해 피부과 등을 통한 전문 피부미용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제약·바이오 기업이 화장품 사업을 전방위로 펼치는 까닭은 브랜드보다 성분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체 특허기술을 보유한 제약사의 경우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도 높다. 이들은 피부에 좋은 유효 성분 함량이 높으면서도 안전하고 저렴한 제품군을 꾸준히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했다. 주름 제거 등 미용 시술에 주로 쓰이는 보툴리눔톡신(보톡스)이나 필러, 여드름 흉터 제거용으로 사용되는 연고 등이 보편화되며 생활건강(뷰티·헬스케어)과 치료의 경계가 흐려진 점도 한몫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몸에 좋은 성분을 찾아내 제품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신약개발과 화장품사업은 비슷한 측면이 많고 여러 임상실험을 거쳐야 하는 의약품에 비해 화장품에 대한 진입장벽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사업을 안정적인 캐시카우(수익 창출원)로 삼아 오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신약 연구개발 등에 투자하는 구조도 확립됐다는 설명이다.

더마 화장품 법적 규제 없어 … 신뢰도 확보 과제

코스메슈티컬 시장이 확대됐지만 더마 화장품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은 아직 없다. ‘더마’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규제조차 없다. 예컨대 임상시험이나 전문의의 소견 없이도 더마 화장품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 연구소 제품이 아니거나 검증된 수준의 기능성을 갖추지 않았는데도 코스메슈티컬 제품임을 강조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김강현 식품의약품안전처 주무관은 “소비자가 의약품으로 잘못 인식할 우려가 있지만 해외에서도 아직 관련 규정은 없다”며 “국내에서만 규제를 강화할 경우 자칫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더마 화장품이라고 해도 기능성 면에서 의약품에 비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업계 차원에서 일시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삼기보다는 새로운 원료와 기술 개발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430호 (2018.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