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푸른 하늘 보기 어려운 회색빛 서울 

 

타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니혼게이자이신문 서울지국장)
1980년대 중반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도시 풍경에 감탄했다. 도심 가까운 곳에 펼쳐진 아름다운 산세와 시내 중심부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모습. 당시 이제 막 여의도에 건설된 63빌딩에서 서울 거리를 지켜보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그랬던 서울이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 돼 버린 걸까. 얼마 전 도쿄에서 서울을 찾은 한 지인은 인천공항 공항철도에서 본 차창 밖 풍경을 ‘새하얀 세계’라고 표현했다. 서울의 대기오염은 기분 나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지인은 동정심 섞인 말투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필자에게 “이런 곳에서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최근 서울에 주재 중인 일본인 사이에서도 가족을 동반하는 사례가 줄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은 주재원 본인보다 가족에게 더 좋은 파견지였다. 일본과 가까운 것은 물론 음식이 맛있고 치안이 좋고, 청결해서다. 그런데 요즘은 가능하면 주재원 본인만 부임해야 하는 지역으로 인식이 적지 않게 바뀌었다. 북한 등 안보 이슈도 큰 문제지만, 대기오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한국에 온 일본인 주재원은 대부분 ‘PM 2.5’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갖고 있다. 오늘 대기의 상태가 어떤가를 보여주는 앱이다. 주재원들끼리 모이면 반드시 이야깃거리로 나온다.

몇 년 전부터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푸른 하늘’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푸른 하늘을 볼 기회가 없어지는 데 비해 도쿄는 맑은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1960~70년대 도쿄의 대기는 지금의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일 광화학 스모그 주의보가 발령됐다. 한 중학교에서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40명 넘는 학생들이 눈과 목의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공기만이 아니다. 수질오염도 심각했다. 도쿄만으로 흐르는 강은 모두 오염됐고, 악취를 뿜어냈다. 냄새가 심해 수돗물은 마실 엄두도 못 냈다. 도쿄 동부에 흐르는 스미다(隅田)강은 도쿄의 대표적인 수원이며, 강변은 도쿄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처였다. 1773년부터 여름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그러나 심각한 수질오염과 악취로 1961년부터 불꽃놀이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런 최악의 환경문제에 시달리던 도쿄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이다. 이 해 벌어진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진보 계열의 미노베 료키치(美濃部亮吉)는 여당인 자민당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뒀다.

미노베 전 지사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선거에서 ‘도쿄의 푸른 하늘’을 중점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취임과 함께 도쿄도에 환경오염 문제를 전담하는 ‘공해국’을 설치하고, 국가 기준보다 엄격한 ‘공해 방지 조례’를 제정해 대기·하천 오염에 대응했다. 당시 환경 문제와 관련한 도쿄 도정은 국가 환경 정책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미노베 전 지사는 ‘쓰레기 처리’ 문제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가 취임하기 전까지 도쿄의 쓰레기는 대부분 도쿄만에 묻었다. 그러나 쓰레기 급증에 위기감을 느낀 미노베 전 지사는 1971년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쓰레기를 소각하기 시작했다. 첨단 청정 소각 시설을 도입했고, 소각장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는 “쓰레기 배출한 동네에서 쓰레기를 처리하자”며 설득을 거듭했다.

이에 현재 도쿄 23구 중 21구가 자체 소각 시설을 도입해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 미노베 전 도지사의 환경 정책은 도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그는 이후 두 번의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1979년까지 12년 간이나 도지사를 지냈다.

이런 노력 끝에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의 도쿄의 공기는 극적으로 깨끗해졌다. 도쿄의 한 사립 고등학교는 ‘도쿄에서 후지산이 보이는 날’을 매년 조사하고 있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몇 년 간 후지산이 보이는 날이 늘어나고 있으며 현재는 연 100일을 넘고 있다. 미노베 전 지사가 취임하기 전에는 1년에 20일을 밑돌았다. 5배 이상으로 증가한 셈이다.

환경 문제는 정치적 이념과 노선 문제가 아니다. 자민당 소속이었던 이시하라 신타로 전 지사는 1999년 도지사에 취임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국회의원이 된 초강경파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국회의원 시절 미노베 전 지사와 크게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두 정치인의 이데올로기는 완전 반대였지만 환경을 중시하는 자세는 같았다. 이시하라 전 지사는 미노베 전 지사의 도정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대기오염 대책 등은 더욱 강화했다.

이시하라 전 지사는 취임식 때도 인상 깊은 장면을 남겼다. 그는 취임식 때 새까만 물체가 든 페트병을 들고 나타났다. 디젤 자동차에서 나온 폐기물 입자였다. 그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디젤차 수는 전체 자동차의 20%에 불과하지만 전체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의 70%와 분진의 대부분을 배출하고 있다. 도쿄에서 하루에 500cc 페트병 12만 개 분량의 먼지가 디젤 자동차에서 나오고 있다”며 디젤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TV와 신문에 보도된 검은색 페트병의 위력은 대단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디젤차 보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디젤은 질소산화물과 분진을 배출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정치인이던 이시하라 전 지사가 ‘디젤 차량은 악’이라고 규정하면서 일본에서 디젤차 보급에 급제동이 걸렸다. 2000년 이후 디젤차가 급속히 보급된 한국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 배경이다.

이시하라 전 지사는 또 ‘집에서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을 목표로 물 정화 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하수도를 정비하고 오·폐수를 흘려 보내는 업체를 적발하는 한편 정수시설을 개량했다. 이제 도쿄는 세계에서 흔치 않은 ‘가정에서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도시’가 됐다.

도쿄도는 정수장에서 깨끗한 물을 페트병에 채운 ‘도쿄 물’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40~5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악취 등으로 중단됐던 스미다강의 불꽃놀이도 1978년 재개돼 도쿄의 대표적인 여름 축제로 자리잡았다. 미노베·이시하라 두 전 지사의 업무 방식 등을 두고 일본에서는 비판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도쿄의 공기와 물이 깨끗해진 데에는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두 정치인의 역할이 컸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도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과제를 국가보다 빨리 대담하게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지사의 역할이다.

‘공기와 물은 무료’라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난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 비용을 어떻게 부담하면서 깨끗한 공기와 물을 확보할 것인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모두 시민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절실한 문제다. 한국에서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도 환경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진지하게 논의되길 바란다. 한국의 아름다운 강과 산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모습을 더 이상 참고 지켜보기 어렵다.

1431호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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