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스타트업 생태계의 숨은 가치 

 

김홍일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상임이사(디캠프 센터장)
디캠프에 온 지 한 달여가 지난 3월에 창업지원기관 모임이 열렸다. 공공기관·지자체·민간기업 등 창업 지원과 관련한 66개 기관이 모인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좋은 창업자를 유치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당사자들끼리도 모여 스스로 장단점을 공개하고 서로 도움을 요청했다. 이 모임에선 ‘영업비밀’ 따윈 없었다. 신설 조직은 창의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고, 기존 조직은 창업 지원 제도 변경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교류했다. 아직 기존 산업계의 경험과 논리에 젖어 있던 필자는 처음 행사를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뭐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A은행 행사에 B은행이 참석해 자기 은행을 소개하고 경영 전략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토론하는 광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를 보는 사람들은 종종 신기루처럼 느끼기도 한다. 필자처럼 기존 산업의 틀로 이 생태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에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가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먼저 기존 산업에 없는 다양한 형태의 구성원이 참여하고 있다. 창업자에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유·무상으로 제공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업체’, 마치 갓난 아기와 같은 극초기 창업기업이 자가호흡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생존의 필수 요소를 제공해주는 ‘인큐베이터’, 자본회수에 성공한 선배 창업가 등이 창업자를 지원하는 ‘액설러레이터’, 이 모든 것을 조금씩 하고 있는 ‘창업지원기관’ 그리고 스타트업계에 전문화된 미디어 등이다. 여기에 성장 단계별로 필요로 하는 ‘돈’을 제공하는 전문화된 투자 업체도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규모도 성장하는 추세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다른 소속의 전문가 혹은 프리랜서들이 하나의 업무 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나누는 협업 공간을 의미한다. 지난 3월 디캠프에서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세계적으로 120만 명이 1만3800개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용 중이다. 사무실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자기들만의 연대적 커뮤니티를 형성해가고 있다. 생태계의 또 다른 중요한 주체인 액설러레이터나 인큐베이터는 엔젤투자와 창업보육을 결합한 형태다. 초기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 다양한 조언과 지원을 하고 직접 투자를 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2000개, 국내에는 20개 정도 액설러레이터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제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한 창업지원기관도 많다. 디캠프 역시 코워킹 스페이스, 인큐베이터·엑셀러레이트 중에서 어디에 가까운지 해석이 다양하다. 누군가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인큐베이팅 기능이 충실하다고 정의하고, 매월 여는 데모데이(창업경진대회)와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착안해 엑설러레이터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 창업 생태계는 민간뿐 아니라 공공 영역과도 상호 협력해 진화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비영리 공익법인부터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생존 가능성 극대화를 위해 스타트업 창업계로 자연스럽게 진입해 오고 있다. 그러면서 창업자들은 단순히 창업 공간뿐 아니라 멘토링부터 지분투자 및 인수·합병(M&A)까지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이에 힘입어 통상 12년의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IPO(상장)뿐 아니라 창업자들의 다양한 성공 출구가 만들어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대표하는 문화이자 가치사슬은 이런 다양한 구성원을 잇는 ‘협력’이다. 협력을 무기로 창업 생태계는 어떤 산업계보다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다른 산업계에선 말로 그치고 마는 ‘협력’이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에선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상호작용을 통해 생존하고 발전하는 체계’라는 뜻의 ‘생태계’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구조적 저성장을 맞고 있는 기존 산업계가 눈여겨봐야 할 것이 이런 독특하고 자생적인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1440호 (201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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