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선택의 자유 확대하는 저출산 대책을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백약이 무효란 말이 떠오른다. 안타깝게도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그러하다. 그동안 한국은 우리보다 출산율이 두 배 가까이 높은 프랑스·스웨덴 등 유럽 복지국가의 제도를 한국에 이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백약’이 ‘이백약’이 돼도 문제가 해결될 거 같지 않다.

결혼과 출산이 매우 개인적인 일이나 개인의 선택이 모여 인구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 국가는 인구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인구 증가가 폭발적일 때는 사회의 고용 흡수력과 부양 능력의 한계 때문에 산아 제한 등에 나서고, 생산 인구의 부족이 예상될 때는 출산율 제고에 나서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임 있는 국가라면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인구정책을 마련해왔다.

한국은 명시적 인구정책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산업화 시기인 1960년대 초부터 30여 년 동안은 강력한 인구억제정책을 추진했다. 인구억제는 범사회적 운동이었다. ‘둘만 나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유행했다. 그러다 2001년 출산율이 1.2로 내려 앉자, 인구억제정책은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으로 급변했다. 노무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위원회를 출범시켰고, 2006년부터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06~2010년)이라는 5개년 장기 계획을 만들었다. 어느덧 제3차 기본계획(2016~2020년)이 시행중이다. 그런데 이도 모자라 7월 6일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저출산 대책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2017년 역대 최저 출산율(1.05명)과 함께 출생아 수가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인 35만 명에 머물자, 문재인 정부가 다시 종합대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번 대책은 결혼과 출산의 기회비용이 너무 높고, 특히 여성의 육아부담이 너무 커서 출산을 포기한다는 진단이 배경으로 짜였다. 하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다. 필자는 무대책보다는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기존 대책에서 약간 ‘뻥튀기’ 된 수준에 불과하기에,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그렇다면 붕어빵을 잉어빵 만들 듯, 획기적인 ‘뻥튀기’가 되면 약효를 발휘할까? 이 또한 자신 없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많은 학자와 정책담당자가 유럽의 가족정책을 모델로 삼아 저출산 대책을 마련해왔다. 전업주부 가정의 아이들도 포함해 보편주의적으로 주어지는 무상보육이 대표적이다. 육아휴직 기간도 대폭 확대했다. 방과후 돌봄도 마찬가지다.

6월에 필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프랑스 돌봄 서비스 현장을 살펴보고, 학자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다. 제도상으로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이 프랑스보다 못할 게 없었다. 공보육만 보면 한국이 더 낫다. 도대체 프랑스의 출산율이 한국의 두 배 수준에 달하는 이유가 뭘까? 프랑스 가족 정책의 특징은 ‘선택의 자유’에 있었다. 법률혼이 아닌 동거도 선택의 문제다. 국가는 개인 간의 동거계약(PACS)만 있으면 조세·육아·교육·사회보장 등 모든 측면에서 법률혼과 동등한 대우를 해준다. 동거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출생아의 50%를 차지한다. 초산 연령도 낮다. 공보육도 발전했지만, 국가는 다양한 형태의 아이돌봄을 지원한다. 대표적인 게 ‘자녀돌봄방식의 자유로운 선택을 위한 보조금’이라는 긴 이름의 수당이다. 자녀 1인당 월 최대 700유로(90만원 상당, 소득에 따라 차감 지급)까지 지급한다. 이 돈을 가지고 부모는 민간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형태, 다양한 수준의 보육시설을 이용하거나, 개인적으로 혹은 여러 부모가 함께 유아 교사를 고용해 공동육아를 한다. 게다가 집에서 육아도우미나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비용이 발생하면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이번 대책을 보면, 국공립어린이 집을 확충하겠다는데 똑같은 질과 운영 방식의 어린이집 아닌가? 방과 후 아이는 지역아동센터로 보내면 된다는데, 지역아동센터까지는 누가 어떻게 데려다 줄 것인가? 중위소득 이하 가정에 건강관리사를 파견해 산후조리원을 대신하겠다는데, 얼마나 만족할 수 있을까? 2016년 프랑스의 출산율(1.9)에 못지않은 미국(1.8)을 보면 ‘자유로움’과 ‘유연’의 중요성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 미국은 법적으로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보장된 국가가 아니다. 아동수당은 물론 공보육이란 개념조차 없는 나라다. 그런데 이민자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을 받은 중산층 여성들의 출산율도 2.0에 육박한다. 여성 고용율도 높고, 경력단절 현상도 크지 않다.

미국 여성들은 여성이라고 차별받지 않는다. 여성운동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1964년 동일임금법 제정 이후 불공정 처우에 대한 개별 판례를 축적해 직장 내 임금과 승진에서의 차별을 없앴다. 그런데 성별 불문하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연공급이 아닌 직무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별 고용계약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근로자 개개인의 능력과 육아 등의 필요에 따라 근로 시간과 임금을 조정해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육아 후 복귀해도 호봉이 아닌 맡은 바 직무가치와 시간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굳이 동일 회사에 갈 이유도 없다. 여기에 이민자를 중심으로 저임금 여성 노동력도 풍부하고 집안일과 육아의 외주화(베이비시터, 가사도우미 활용) 정도가 높다. 다양한 민간 보육시설을 이용해 가정 내 육아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출산과 육아기에 개인별 필요에 따라 일·가정 양립의 조건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법률혼 아니면 신혼부부용 주택 청약도 못하고, 임금이 연공서열에 따라 결정되며, 노동시간은 경직적이다. 동거나 한부모로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개인별 필요에 따른 일·가정 양립을 이루기도 어렵다. 용케 육아기 노동시간을 단축한다 해도, 임금 단가는 어디다 맞추어야 할까? 하루에 8시간 일한 사람과 4시간 일한 사람의 호봉이 같이 올라야 하나? 육아휴직을 3년까지 쓸 수 있다지만, 3년 후 복귀하면 남성은 나보다 3호봉 위에 올라가 있다. 나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해도 말이다. 여성은 임금과 승진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 육아와 집안일을 도와 줄 도우미에게 내가 번 돈을 다 줘야 할 정도로 비싼데, 프랑스 같은 소득공제 혜택은 없다.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수준의 민간 보육 비용을 덜어줄 보조금도 없다. 그저 국공립이 그나마 좋다니, 줄 서서 기다리는 수 밖에.

해마다 30조원씩 쏟아 붓는 저출산 대책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이후 그나마 이 정도로 노력했기에 출산율이 1.0대를 유지했다고 본다. 하지만 기존 패러다임의 뻥튀기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이제는 결혼 형태에서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일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1444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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