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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손 효과, 그리고 지주회사를 위한 변명 

 

황인학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는 경영학·행동심리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두산백과 사전은 ‘지켜보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람의 행동에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뭐, 이런 뜻이라면 새로운 게 없다. 사람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행동하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다. 대단한 발견이나 된 듯이 ‘○○효과’로 포장할 일까지는 아닐 것이다. 다른 뜻이 있지 않을까?

더 살펴보자. 호손 효과는 하버드 대학의 엘톤 마요(Elton Mayo, 1880~1949) 교수 등이 웨스턴 일렉트릭의 호손 공장(Hawthorne Works)에서 1927년부터 진행한 실험에서 유래했다. 작업장 환경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이들은 조명이 밝은 작업장은 어두운 작업장보다 생산성이 높다는 가설을 실험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밝게 한 곳이나 어둡게 한 곳이나 실험 전보다 생산성이 증가했다. 가설 입증에 실패한 것이다. 대략 난감해진 연구자들은 기지를 발휘해서 위기를 돌파한다. ‘노동자들이 실험집단에 속해 있음을 알고 일했기 때문에 작업장 밝기에 관계없이 생산성이 올라갔다, 따라서 물리적 환경보다 정서적 유대가 생산성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

호손 효과는 그렇게 태어났다. 호손 효과가 정말이라면 경영자와 위정자로서는 귀가 솔깃할 법하다. 새로 부임하는 장(長)은 선임자의 흔적을 지울 겸해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한시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이런 욕구에 호손 실험은 딱 맞는다. 조직 환경을 바꾸면 그 방향이 옳든 그르든 조직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경영자나 위정자들이 새로 부임하자마자 일종의 호손 실험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가 흔하다. 혁신을 하겠다며 컨설팅 회사를 고용하거나 또는 평가자문단을 구성해서 호손 실험에서처럼 조직원을 긴장시키는 상황이 장(長)이 바뀔 때마다 무한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실험집단 규모는 달랑 5명이었다. 그나마 3명은 실험 직전에 교체됐다. 2명은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1명은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미리 교체했던 것이다. 그러니 작업장 밝기나 정서적 유대와 관계없이 생산성이 상승하는 게 당연했다. 결과적으로 호손 효과는 과학적 지식의 탐구에 뼈아픈 교훈을 남긴 셈이다. 호손 효과는 배경적 사실, 실험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고 이야기를 퍼 나른 학자들의 오해와 나태함 때문에 유명해졌다. 지식의 기초는 의심이다. 필자의 말이 의심되면 1998년 12월 6일자 뉴욕타임스에서 지나 콜라타(G. Kolata)의 글 ‘이야기가 좋아서 사라지지 않는 과학적 신화(Scientific Myths That are Good to Die)’를 읽기를 권한다.

경제학자인 필자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주회사에 대한 정부의 규제 태도가 호손 실험과 흡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는 노무현 정부의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 따라 2007년에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지난해 7월 ‘국정과제’에서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을 정했고 그에 따라 관련 법률 개정안도 국회에 여러 건 올라와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규제환경을 노무현 정부 이전으로 돌리자는 내용이다. 현행 제도를 과거로 되돌리는 것은 국민경제적으로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은 호손 효과를 기대하고 통제환경을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과 얼추 비슷하다. 혹시라도 그런 기대 하에 제도를 바꾸려는 것이라면 호손 효과는 근거 없는 믿음, 우화(寓話)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재인식해야 한다.

지주회사를 위한 변명을 좀 더 하면, 우리나라 지주회사는 선진법제에 없는 그물망식 규제에 둘러싸여 있다. 지주회사는 금융사를 보유할 수 없고 부채비율은 200%를 넘지 않아야 하며, 비계열사 주식을 5%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출자 단계는 손자회사까지 허용되며, 증손회사는 100% 지분을 소유하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출자는 위에서 아래로 수직 방향으로만 허용되고 자·손자회사의 지분을 최소 20%(비상장 40%) 이상 소유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재규제 방침에 따라 국회에 발의된 법률 개정안을 보면, 의무 지분율을 30%(비상장 50%)로 높이고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줄이자는 공통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한 제도를 부인하고 그 이전으로 되돌리자는 것인데, 이는 정부의 권유와 정책의 일관성을 믿고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의 신뢰에 반한다.

그렇다고 규제를 강화할 만한 이유가 새로 있는 것도 아니다. 2016년 11월 보고서에서 공정위는 “규제 수준에 비해 지주회사의 평균 부채비율(40.2%)이 낮고 지주·자회사의 자·손자회사에 대한 평균 지분율(자회사 74.1%, 손자회사 78.5%)은 높아서 지배력 확장 우려가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제력집중 때문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의미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 시사점은 바뀌어도 사실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주회사의 억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현대차 같은 기업집단은 위에 열거한 6가지 규제의 어느 것도 구애받지 않는다. 지주회사의 유일한 규제 혜택은 출자총액제한을 안 받는 것이었다. 정부는 지주회사 제도가 소유지배구조 개선, 투명성 제고에 더 낫다고 하며 출자총액제한 면제를 당근책 삼아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했다. 그러다 2009년, 이 제한이 폐지되면서 지주회사는 더욱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일반 기업집단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신성장 유망 사업을 여러 계열사가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투자하고 육성할 수 있지만 내부자본시장을 활용할 수 없게 만든 지주회사 제도에서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더 규제를 강화하면 지주회사의 상대적 불리함과 억울함은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규제를 강화했을 때 국민경제적 기회비용은 큰데 공익적 효과는 미미하고 모호하다는 점이다. 의무 지분율을 10%포인트 높이면 지주회사들은 계열사 지분 매입에 최소 9조원을 써야 한다. 재규제가 아니라면 이 돈은 신기술 개발, 신사업 등에 투자되고 일자리 창출과 소득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이 돈으로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는 것은 국민경제적으로 커다란 기회 손실이다. 반면 규제를 강화해도 공정위 보고서에서 보았듯이 경제력집중 방지효과는 미미하고, 규제의 이익은 지배주주에게 귀속될 것이다. 회사 자금으로 계열사 지분을 10%포인트 추가 매입하면 그만큼 지배력이 강화되고, 외부주주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주회사 규제 실험의 호손 효과는 없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 아쉬운 상황에서 지주회사 규제는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450호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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