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美·中의 ‘예정된 전쟁’ 그리고…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나는 중국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 바보 같은 우리의 과거 지도자들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을 통해 연간 수천억 달러를 벌어가도록 허용했다.” 이 메시지는 간단하고 단순하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남긴 메시지다. 그리고 지금 미국과 중국과의 갈등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최근 미·중 무역갈등과 관련해 언론을 장식하는 내용들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2000억 달러 관세폭탄’ ‘환율조작국 지정’ ‘미국 상품 구매 보이콧’ ‘보복관세 부과’ ‘WTO 제소’…. 이런 갈등의 맥락은 과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세계 경제는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라는 단어도 등장했고, 대완화(Great Moderation)라는 말도 나왔다. 숲에 들어간 소녀가 곰이 사는 집에 들어가 따뜻한 죽을 먹었다는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소녀가 골디락스다. 경기 과열 때 나타나는 인플레이션도 없고 경기 둔화 때 나타나는 실업도 없이 적절한 성장을 지속하면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뜻한 경제가 골디락스 경제다. 대완화도 비슷하다. 호황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이다. 이 두 단어만 보아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세계 경제 상황이 얼마나 좋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모습 뒤에는 바로 글로벌 임밸런스 현상이 존재했다. 미국의 엄청난 무역적자와 중국의 엄청난 흑자가 지속된 것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한때 8000억 달러를 넘었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국가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기축통화인 달러가 세계 시장에 풀려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임밸런스는 미국의 적자와 중국의 흑자가 너무 커지는 데서 오는 불균형을 의미했다. 그런데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덕에 엄청난 달러를 축적한 중국이 달러를 가지고 미국 국채를 사들이면서 달러는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렇게 넘쳐나는 유동성이 미국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부동산 버블이 형성됐고, 결국 이 버블이 서브프라임 위기와 함께 터지면서 글로벌 위기 국면이 시작됐다. 중국의 지나친 무역흑자가 글로벌 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중국의 대미 흑자에 대한 미국의 피해의식을 읽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시점에서 중국이 쌓아놓은 외환보유액은 무려 3조3000억 달러 수준이었다. 중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 달러를 얼마나 벌었는지 잘 보여주는 수치이다.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액은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위기를 피해간 것이다. 기축통화를 발행할 수 없는 나라가 어떻게 달러를 관리해야 하는지 모범사례를 보여준 셈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축적한 막대한 달러와 함께 중국은 세계 2위 국가로 부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는 차이메리카(China와 America의 합성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나라 관계는 친근한 경제 파트너 정도로 인식됐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른바 ‘주요 2개국(G2)’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두 나라 관계가 라이벌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위기로 인해 국격이 떨어졌고 중국은 앞을 내다보고 위기를 피해간 국가로 국격이 올라갔다. 그리고 미국의 시각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 백악관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실무총책을 담당하고 있는 피터 나바로 교수는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주장은 강력하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통해 가성비 좋은 제품을 만들어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수출해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면서 G2 국가로 부상했다. 대중 적자가 미국 적자의 60%를 기록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이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 시장을 최대로 이용한 결과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의 핵심 기술을 공짜로 탈취한다는 점이다. 기술개발 비용도 안 들고 임금도 싼 데다 중국 정부는 환율조작까지 해주고 있다. 중국의 수출 경쟁력은 어마어마한 셈이다. 나바로 교수는 중국이 경제력을 키우고 군사력까지 축적한 후 나중에는 미국을 죽이려 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에 의한 죽음을 당할 국가는 바로 미국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바로 교수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 국가무역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으로 임명했고 또한 무역정책국장에 임명했다. 최근 벌어지는 미·중 무역전쟁의 뒤에는 나바로 교수가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커들로 의장도 한 팀이다. 이들의 시각은 ‘혐중론’에 가깝다. 미국을 이용해 성장한 중국이 미국을 제압하려 들 것이니 한 번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결국 미국이 당할 것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하버드대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최근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라는 저서에서 미·중 갈등에 대해 주목할 만한 시각을 제시했다. 과거 그리스에서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전쟁에 대해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흥미로운 분석을 한 바 있다. 신흥 패권국의 ‘부상(rise)’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기존 패권국의 ‘두려움’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투키디데스 함정’이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고 이로 인해 둘 사이에 전쟁 혹은 다양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중국에 의한 죽음’과 ‘예정된 전쟁’을 더해보면 현 상황이 보인다. 핵무기를 사용한 물리적 전쟁은 공멸을 의미한다. 하지만 경제전쟁은 가능하다. 미·중 무역갈등은 기존 패권국과 신흥 패권국 간의 전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경제전쟁의 특성상 한 쪽의 완전한 패배는 없을 것이다. 타협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보면 중국이 일단 불리하다. 미국은 다른 국가에서 제품을 수입할 수 있지만 중국은 거대한 미국 시장이 닫히면 제품을 대량으로 팔 시장이 없다. 판매자가 불리한 것이다. 물론 미국 국민들은 중국의 값싼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금융시장은 귀신같이 이를 감지하고 있다. 중국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주가 하락이 지속되면 실물경제가 식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많은 기업이 중국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 보복은 중국의 기업 입지 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미·중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부상과 적대적 태도에 대한 보복과 응징의 성격이 짙다. 예를 들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보여주는 호전적 모습을 견지하면 보복은 지속될 것이다.

기축통화인 달러 그리고 미국이 키워낸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이제 미국의 전략무기가 됐다. 달러와 금융이 같이 작동하면 미국을 이겨낼 방법이 별로 없다. 중국의 위상제고를 강조한 중국의 대학교수가 “너 때문이야”라며 공격을 받는 것을 보면 중국의 당황스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1451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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