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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암호화폐 왜 곤두박질 치나] “블록체인 굳이 필요하나” 의구심 점점 커져 

 

김유경 기자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가격 지지부진…실생활에 실익 없고 기술 오류도 발생

▎9월 6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암호화폐 기술의 비즈니스 도입방안 세미나에서 한 블록체인 기업이 암호화폐로 방향제를 구입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 사진:김유경 기자
“이더리움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탈중앙 애플리케이션(Decentralized Application, 디앱)의 75%는 크립토키티다. 나머지 25%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탈중앙화 거래소(Decentralized Exchange, 덱스)로, 99%의 거래자는 중앙집중화 거래소를 이용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99%는 이미 가치의 99%를 잃었다.” 이른바 ‘닥터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9월 10일(현지시간) 암호화폐 전문 매체 CCN을 통해 최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가치 하락의 주된 이유를 활성화된 디앱의 부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루비니 교수가 언급한 크립토키티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작동하는 고양이 육성 게임이다. 지난해 12월 고양이 캐릭터 거래 건수가 8만500건에 달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캐릭터 하나가 15만5000달러(약 1억7417만원)에 팔리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6월 캐릭터 거래량은 1200건으로 6개월 새 98.4%나 쪼그라들었다. 루비니 교수는 크립토키티처럼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실체도 없는 블록체인 기술의 한계를 꼬집은 것이다.

루비니 교수 “암호화폐의 99%는 이미 가치의 99% 잃어”


최근 블록체인 분야에는 종말적 분위기가 감돈다.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 것은 물론, 수많은 업체가 블록체인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하고 있어서다. 일단 시세부터 암울하다. 암호화폐의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 가격은 7월 24일 8424달러(약 946만원)에서 2개월 내내 약세를 면치 못하다 최근 6000달러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격이 들썩였지만 미국 증권거레위원회(SEC)가 결정을 미루면서 가격이 미끄러졌다.

알트코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시가총액 2위 이더리움은 올초 1400달러 수준까지 올랐으나 9월 200달러선이 깨지며 2017년 5월 시세로 돌아갔다. 대다수 신규 암호화폐 공개(ICO)가 이더리움으로 거래된 데다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앞으로 암호화폐가 1000배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지난 4월에 21달러까지 올랐던 이오스 역시 최근 5달러 선으로 가격이 추락했다. 리플·비트코인캐시·스텔라·라이트코인·테더·모네로·카르다노 등 시가총액 상위 알트코인 시세도 대부분 연초 대비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초 8000억 달러를 넘었던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은 현재 1870억 달러로 쪼그라든 상태다.

글로벌 암호화폐 시세는 올 초부터 내림세를 이어왔다. 이오스 등 주요 암호화폐들이 속속 메인넷(독립된 블록체인 네트워크)을 공개해 기대심리가 일며 6월에 반짝 상승했으나, 신규 투자금 유입이 제한된 가운데 과거 투자자들이 손절에 나서며 8월 들어 다시 주저앉았다. 특히 신규 ICO가 대부분 이더리움으로 진행돼 이더리움의 하락폭이 컸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8월 이후 하락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연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1~2월 시세 하락은 거래소 폐쇄 등 한국의 규제 강화, 일본에서 터진 거래소 해킹 사태 등 잇단 악재로 암호화폐 시장에 형성된 거품이 꺼진 결과라고 봤다. 그러나 8~9월은 블록체인 기술의 현실화 가능성, 사업화 등 근본적인 우려가 증폭되며 나타난 시세 하락이다.

8월 이후 하락세는 근본적 회의감 작용 때문


블록체인비즈니스리뷰(BBR) 의장인 여현덕 조지메이슨대 공공정책대학원 석좌교수는 “기업·개인 등 경제주체들은 블록체인이 당장 현실 생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지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블록체인 기업들이 플랫폼 비즈니스 구상을 많이 내놓지만 실질적인 경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모델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립토키티가 추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미 모바일에서 수많은 캐릭터 육성 게임이 출시되고 있는데, 굳이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사용자들 사이에 퍼졌다. 게임 캐릭터의 가격이 수천만~수억원으로 치솟았지만 거래시장만 커졌을 뿐, 블록체인 기술을 확대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장 큰 파급력을 끼칠 업종으로 기대를 모았던 지급결제 분야에서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이강준 두나무앤파트너스 대표는 9월 14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업비트 개발자 컨퍼런스 2018’에서 게임과 소셜·셰어링 서비스, 자산 토큰화 등과 더불어 결제를 촉망받는 블록체인 산업군으로 꼽았다. 이미 많은 블록체인 기업이 뛰어들었지만 아직 뾰족한 성과를 낸 곳은 없다. 현실 업계에서는 블록체인을 도입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이냐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의 주요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의 경우 가맹점의 신용카드 단말기와 신용카드사, 밴(VAN, 카드결제 및 대금지급 대행)사가 전용망으로 이어져 있다. 인터넷과 분리된 전용망을 이용하면 사실상 외부 해킹이 불가능하다. 굳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 신용카드는 사용자가 물리카드나 모바일카드 등을 통해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현재의 블록체인 기술은 처리 용량의 한계 때문에 트랜잭션 검증에 1시간 이상 소요된다. 기술을 보완, 개선하면 트랜잭션 속도가 빨라지지만, 신용카드 회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복잡한 기술을 개발해 결제시스템을 교체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면 가맹점으로선 수수료가 줄어드는 실익은 얻을 수는 있다. 다만 신용카드사나 밴사는 수수료 수입을 대체할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해야 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할 이유가 없어진다. 블록체인 기술이 기존 금융결제망의 외면을 받고 있는 이유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이해 당사자들 중 하나라도 참여하지 않으면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구축되기 어렵다. 이더리움 기반의 오미세고 등 코인은 네트워크 폐쇄 결제시스템 등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에서 지역 기반 지급결제 블록체인 서비스를 준비 중인 업체 관계자는 “가맹점 영업망을 쥐고 있는 밴사들은 블록체인 생태계가 조성되면 기득권을 놓치게 된다고 판단해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며 “기존 가맹점 역시 이해하기 어렵고 검증 안 된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꺼린다”고 말했다. 박재현 람다256 소장은 “현재 가장 많이 활용되는 암호화폐의 월간 실사용자(MAU)가 3만 건이 안 된다”며 “탈중앙화 된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질적으로 사용이 되지 않고, 이를 구현하지 못하면 모두 스캠(사기 암호화폐)이 되고 만다. 사용자의 편의성은 물론 실질적 이익이 되는 서비스가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용카드 등 기존 산업 대체 가능한지 의문


▎최근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암호화폐를 어떻게 실생활에 사용할 것인가가 최고 화두다. 비트코인, 에이다 등 암호화폐로 결제가 가능한 일본 도쿄의 한 커피숍.
반복되는 기술 오류도 블록체인에 대한 신뢰를 떨어드리는 요인이다. 3세대 암호화폐 선두주자로 꼽히는 이오스는 7월 메인넷의 문을 열었는데 서비스 불안정으로 개설 40여 시간 만에 중단하고 말았다. 이오스는 이더리움 네트워크 기반에서 발행되는 ERC20 토큰이라, 메인넷 중단 사태는 이더리움 시세에도 악영향을 줬다. 이에 이더리움은 기존 문제점을 개선한 ERC1155 등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내놓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기술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의 강점으로 꼽히던 민주적 합의 프로토콜 역시 한계를 드러내며 대중들로부터 불신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여러 계약 내용을 담고 있는 블록을 이전에 생성된 블록에 이어 붙이려면 검증 결과를 네트워크 참여자의 과반 이상이 인정해주는 합의 절차가 필요하다. 해커들의 공격이나 발행주식보다 많은 주식을 임의로 발행해 배당한 삼성증권 배당오류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고안된 합의 절차다. 블록체인 기술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수천만~수백억개가 발행되는 코인의 절반 이상을 보유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좌지우지하는 일은 이론상으로는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그러나 실제로는 51% 이상의 채굴파워를 가진 독점 세력이 등장해 특정 코인의 블록 연결과 의사결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4월 버지코인, 5월 비트코인골드, 6월 젠캐시가 그랬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100위 안에 드는 대형 코인들이다. 막강한 채굴파워를 가진 51%로부터 공격이 발생하자 대규모의 자금 유출로 이어졌다. 비트코인골드가 51%의 공격으로 200억원에 달하는 자금 유출이 발생하자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렉스는 9월에 상장 폐지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암호화폐의 시조격인 비트코인도 지난해 7월 트랜잭션 용량을 늘리자는 진영과 이를 반대하는 진영이 맞붙어 하드포크를 통해 비트코인캐시로 분리되기도 했다. 암호화폐가 민주적 의사결정보다는 특정 세력의 알력 다툼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가치가 오르내릴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사례다.

암호화폐가 법정화폐와는 달리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최근 들어서는 깨지고 있다. 특정 암호화폐 네트워크에 참여한 기업 등 참여자는 생태계 조성을 위해 많이 활동하면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얻게 된다. 비트코인의 경우 참여자가 많아지면 보상이 줄어드는데, 보상이 줄면 참여자도 감소하게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또 암호화폐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새로운 보상을 제공해 참여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고민에 빠진다. 예컨대 오픈마켓이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자체 코인을 발행한 후 매출과 사용자가 늘어났다면, 매출·사용자의 증가분만큼 발행 코인을 늘려야 한다. 매출이 늘었음에도 코인 발행량을 늘리지 않으면 해당 코인은 법정화폐 대비 가격이 오르게 된다. 이 경우 해당 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등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만다. 원·달러·엔 등 법정통화 역시 중앙은행이 정한만큼 본원통화가 발행된다. 그러나 경제참여자들의 수요에 따라 파생통화가 늘어나는 것이 인플레이션의 형태로 나타난다.

생태계 커질수록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

최근에는 기존의 ‘선’ 형으로 이어지는 각각의 블록에 옆으로 블록을 이어붙이는 사이드체인 프로젝트를 통해 네트워크를 ‘면’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여럿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경우 사이드체인이 확대하는 것만큼 골격을 이루는 선형 블록도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가가치가 암호화폐를 통해 거래되기 시작할 경우 암호화폐 인플레이션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최근 등장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완전 탈중앙화를 포기하고, 기업 간 거래(B2B)의 일부 중앙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참여자 수가 적고, 개인 간 거래(B2C)보다 공통된 이익을 찾기 쉬워서다. 베리디움이란 미국 기업은 탄소배출권 거래 용도의 암호화폐를 개발해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천연자원 거래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베리디움은 IBM의 블록체인 협력사로 플랫폼코인인 스텔라 네트워크에서 작동한다. 일부 대기업들은 자사 서비스의 블록체인화 아이디어도 구상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이루는 냉장고·TV 등 디바이스의 내장형 인공지능(AI) 메모리를 사물인터넷(IoT)에 연결하는 탈중앙화 P2P(Peer To Peer, 개별 기기 직접 연결 및 공유) 서비스를 제공할 전망이다. 홈 네트워크의 데이터를 삼성전자의 중앙 서버에 저장, 관리하면 개인정보보호법 문제가 발생하지만, 서버가 없는 형태라면 빅데이터 수집 등에 있어 특별한 제약이 없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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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호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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