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韓·美 공조에 구멍 뚫렸다? 

 

김영희 전 중앙일보 대기자
서울과 워싱턴에 나도는 루머대로 정말 비핵·평화의 한·미 공조에 이상이 있는가. 미국 대사관 직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동행했던 삼성·현대차·LG 등 굴지의 대기업에 전화를 걸어 그들의 대북사업에 관해서 캐물은 것이 우방국에 대한 모욕인가. 미국 재무부가 평양공동선언이 나온 직후인 9월, 한국의 7개 은행과 전화회의를 연 것이 그렇게 충격적인가. 미국이 한국인들의 신경(sensibility)에 무신경한 건 사실이다. 미국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개성공단 기업 대표들의 방북에도 제동을 걸고, 산림청의 헐벗은 북한의 녹화사업도 제지했다. 개성에 개설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쓰는 물품 하나에도 제재 대상에 드는 것이 없는가 감시한다. 한국은 지금 진행하는 모든 대북사업에 들어가는 물자를 일일이 제재 예외 항목으로 인정받아 사용한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0월 말 한국에 와서 외교부의 카운터파트와 청와대 안보실장보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가장 먼저 만났다. 10월 말 한국에 온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은 돌연 한국 방문을 연기했다.

미국은 한국에게 왜 이렇게 연쇄적으로 외형상 외교적인 무례 같은 행동을 하는가.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북·미 비핵화 협상에 너무 앞서가는 데 대한 불만이 있고, 함께 가자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정도로 해석된다. 한·미 공조에 큰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법석을 떨 일은 아니다. 북한 제재의 효과에 대해 한·미 간에는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미국은 북한이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에 응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폐쇄한 것은 강력한 대북 제재의 효과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까지 국제제재는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남북관계가 한걸음 앞서가는 것이 북미 비핵화 협상을 견인한다고 확신한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부터 무르익은 남북 화해의 분위기를 타고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결과다. 남북 정상회담이 없었으면 북미 정상회담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간극을 메우자고 하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합의로 설치하는 협의체(Working Group)이다. 그러나 실상은 미국의 한국 견제장치다. 한국은 발군의 설명력과 협상력과 배짱을 가진 외교관을 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히 1년 전, 지난해 11월을 돌아보면 한반도 사태는 전쟁 일보 직전에서 평화 일보 직전으로 크게 U턴을 했다. 먼저 김정은 위원장의 2018 신년사 안에 화해의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그걸 이어받아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 올림픽이라는 편리한 명분으로 평창을 남·북·미 최고위 인사들의 상견례장으로 만들었다. 미국서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이방카 트럼프가 오고, 북한에서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여정 노동당 부위원장, 김영철 통전부장이 참석했다. 펜스 부통령은 의도적으로 김영남과 김여정을 피하는 신사답지 않은 처신을 했지만 그와 이방카에게는 처음으로 북한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드문 기회가 됐다. 북한의 3김에게도 마찬가지다. 평창에서 판문점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남북, 북미 관계는 일사천리로 정상급과 고위급 대화의 길을 달려 여기까지 왔다. 한국이 미국보다 한 두 걸음 앞서가면서 미국과 북한을 생산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견인해야 한다. 서두를 것 없다는 김정은과 트럼프와 보조를 맞추면 한반도 평화는 백년하청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약속대로 연내에 한국에 오는가. 김 위원장과 트럼프는 내년 1월 1일 이후에는 만나는가. 11월 중에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좌우할 큼직한 외교 일정이 잡혀 있다. 시진핑의 북한 방문,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이 그것이다. 시진핑의 평양 방문이 성사돼 북중 연대가 다시 확인된다면 시진핑이 김정은을 조종해 김정은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트럼프의 의혹은 한층 커질 것이다. 러시아는 새로운 변수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 같은 문제에서는 초연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던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으로서는 환영할 일이기도 하고 경계할 일이기도 하다.

먼저 경계할 일은 냉전시대의 북방 3각 협력 구도와 유사한 체제의 부활이다. 시대가 변해 북방 3각 협력 구도라는 것이 실체를 가져도 실제적으로 남한과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북한 지원에 나설 여지는 거의 없다. 독일 통일 과정의 최종 단계에서 헬무트 콜 총리가 미국·영국·프랑스·폴란드를 상대로 치열한 통일외교를 펼친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지금부터 외교의 지평을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공동체(EU)와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으로까지 넓혀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관여의 긍정적인 측면은 대북제재 해제의 주도다. 문재인 대통령을 앞세워 종전선언에 주력하던 김정은 위원장은 돌연 “그까짓 종잇조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대북제재 완화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덕분에 종전선언에 올인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 제재완화 세일스맨으로 급선회해야 했다.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에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에게 대북제재 완화에 협조를 구했다가 면전에서 거절을 당하는 민망한 일을 겪었다. 외교 채널을 통해서 사전에 프랑스와 영국의 입장을 확인하지도 않고 제재 해제 카드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에서 외교부가 소외되고 청와대가 정책의 기획과 실행을 독점하는 비정상의 필연적인 결과다.

11월에서 내년 초 사이에 도약의 호재가 많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이 실현되면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교환협상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참으로 역사적이면서도 어려운 걸음이다. 결정적 전기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정상회담 시기를 내년 1월 1일 이후라고 말했다. 애매한 말이다. 3월도, 6월도, 12월도 1월 1일 이후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변덕이 심한 상대와의 협상은 ‘쇠뿔은 단김에 빼기’ 식이어야 한다. 트럼프는 아직은 김정은을 믿는다. ‘그와 사랑에 빠졌다’ ‘우리는 에너지를 공유한다’ 같은 푸짐한 수사를 쏟아낸다. 그러나 11월 6일 중간선거 결과 미국 사정의 변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소수민족 출신들의 유혈 충돌, 중국과의 무역전쟁의 부머랭을 만나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한반도와 북한을 떠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의 사전 협의, 정치권의 야당과 일반 국민들과의 소통을 더 많이, 더 활발히 추진해 한·미 공조에 대한 의도적인 악성 루머의 확대 재생산의 루트를 막아야 한다. 김정은에게는 핵 미사일 목록과 비핵화 시간표라는 계산서를 들이밀고, 트럼프에게는 구체적인 상응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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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8호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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