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거짓말, 가짜뉴스 그리고 지록위마 

 

김경원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장
#1. 그리스 신화의 한 토막. 올림푸스 신들의 우두머리 제우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크로노스와 레아다. 크로노스는 자기의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시켜 권좌에서 몰아내었는데 뿌린대로 거둔다는 ‘운명의 법칙’에 따라 자기도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렇게 당할 것을 두려워했다. 해서 레아가 하데스·포세이돈·헤스티아·데메테르·헤라라는 다섯 남매를 낳았으나, 아내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삼켜버렸다. 낳는 자식마다 남편이 삼켜버리는 바람에 살아남은 자식이 없었던 레아는 걱정 끝에 6번째 자식인 제우스가 태어나자 머리를 썼다. 아기처럼 생긴 돌을 강보에 둘둘 말아 남편에게 새로 태어난 아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남편에게 건넸다. 크로노스는 이에 속아 이 ‘돌’을 삼켰다. 결국 훗날 제우스가 커서 자기 아버지 몰래 구토약을 계속 먹여 뱃속에서 다섯 형제 자매들을 꺼냈고 이들 대부분이 올림푸스의 주인이 된 것이다.

거짓말로 목숨을 구한 탓인지 제우스는 나중에 숱한 거짓말로 아내인 헤라를 속이고 ‘꾸준히’ 바람을 피웠다. 그중 한 일화다. 어느 날 헤라가 올림푸스에서 땅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창한 날이었는데도 유독 강 위에만 구름이 잔뜩 낀 것을 이상하게 느낀 헤라는 의심이 들었다. 즉시 강 옆으로 내려 간 그녀는 제우스가 흰 암소 한 마리와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암소는 사실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였는데, 아내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느낀 제우스가 즉시 그녀를 둔갑시킨 것이었다. 헤라가 그 ‘잘 생긴’ 암소의 주인이 누구냐라고 묻자 제우스는 ‘주인이 없는 것 같다’는 ‘거짓말’로 둘러댔다. 헤라는 속지 않고 이 ‘주인 없는’ 암소를 데려다 묶어 두고 수천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라는 거인에게 이 소를 지키도록 했다.

#2.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잘 알려진 이야기.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행복하게 살던 하와에게 뱀이 접근해 ‘거짓말’로 그녀를 꾀어낸다. 금지된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라는 뱀에 말에 속아 여자는 그 열매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 이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 쫓겨났다. 에덴에서 쫓겨난 부부는 카인과 아벨이라는 아들 둘을 낳았다. 장성한 카인은 농부가,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됐다. 동생을 질투한 나머지 카인은 아벨을 살해했는데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하느님의 질문에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잡아 떼며 모른다는 ‘거짓말’을 했다. 부모가 거짓말의 피해자인데도 아들은 이 거짓말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3. [손자병법]의 ‘계(計)’편에서는 적을 이기기 위한 14가지 ‘속임수’를 기술해놓고 있다. “전쟁이란 속이는 도이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어도 능력이 없게 보이게 하고, (병력을) 부리되 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가까운 곳을 노려도 먼 곳을 노리는 것처럼 보여라…(중략)…(적이 서로) 친하면 이간시켜라. (적이) 방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생각치 않은 곳으로 나가라.” 근대 역사에서도 이런 속임수로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사례가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전에 연합군이 독일군을 속이기 위해 벌인 거대한 기만 작전인 ‘보디가드 작전’이다. 이 작전은 주로 이중 스파이와 무선 통신 등을 이용해 연합군이 노르웨이나 지중해 연안, 프랑스 칼레 등으로 상륙할 것처럼 정보를 누출해 독일군을 혼란시켰다. 특히 칼레에 상륙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는 너무 ‘리얼’해서 히틀러 자신도 이를 철석같이 믿어 칼레에 대한 방어를 크게 강화했다. 심지어 이 정보는 히틀러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이 완료된 후에도 칼레에 주둔한 병력을 그로부터 7주 동안이나 그 자리에 묶어 놓게 만들었다.

#4. 진 나라 시황제가 죽자 그의 최측근이었더 환관 조고(趙高)는 음모를 꾸며서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그의 동생인 호해(胡亥)를 황제로 삼았다. 현명했던 부소보다 어린 호해가 다루기 쉬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조고는 이후 이어린 황제를 조종해 정적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스스로 승상의 자리에 올라 나라의 실권을 손에 쥐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도록 거만함이 하늘에 닿던 어느날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을 바치니 받아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하나 그 정도 판단은 할 수 있었던 황제는 조고가 농담을 한다며 어떻게 “사슴을 가르켜 말이라고 할(지록위마:指鹿爲馬)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도 물었다. 황제의 의도와는 달리 대부분의 신하들이 그것은 말이라고 대답했고, 소수의 ‘눈치없거나’ ‘소신있는’ 신하들이 사슴이라고 했다. 조고는 사슴이라 답한 신하들을 눈여겨보았다가 훗날 죄를 씌어 모조리 죽여 버렸다.

지난 2002년 미국 MIT에서 행한 연구에 따르면 약 60%의 성인은 10분 동안 적어도 한 번의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인류가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세상은 굴러가고 있을까? 13세기에 활동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거짓말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악의적 거짓’ ‘악의 없는 거짓말’ ‘웃자고 하는 거짓말’이 그것이다. 앞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이 중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또는 줄 의도가 없거나,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해줄 의도의) 두 번째, 세 번째 거짓말이 첫 번째 유형의 거짓말보다 훨씬 많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나쁜 의도이거나 적의를 가진 거짓말은 큰 전쟁에서까지 적을 궤멸시킬 만큼의 힘을 발휘한다. 많은 이들이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의 역대 총선·대선에서도 거짓말이 선거의 판도를 결정지은 경우를 여럿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파괴력을 가진 거짓말이 이제는 널리 확산된 소셜미디어의 망을 타고 훨씬 쉽고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른바 ‘가짜뉴스’도 그 한 예다. 그래서인지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릴수록 이를 규제하지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양상이다.

10월 초 집권여당이 ‘가짜뉴스대책단’을 만들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를 ‘민주주의 교란범’ 등에 비유하며 검찰과 경찰의 대응을 촉구했다. 이에 곧바로 법무부는 허위조작정보 처벌 강화 방안을 발표해 허위조작정보를 ‘객관적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위사실’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도 만만치가 않은 실정이다. 11월 초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선 주최 측이 친여 성향의 진보정당과 언론임에도 정부가 준비 중인 대책이 표현의 자유를 옥죌 수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 토론자는 “허위조작정보를 규정할 때 규정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모호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라고 했다. 바로 ‘지록위마’의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최근 여당은 연말까지 별도 입법을 통해 가짜뉴스를 규제하겠다는 원래 계획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그런데 ‘감시자를 누가 감시할 것이냐’라는 딜레마는 어떻게 해결할까. 인터넷 공간의 발전 과정에서 보듯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도 ‘정보시장의 자정 기능’에 맡기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 여당은 요즘 이런 가짜뉴스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이 아니지 자문해보고,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지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1460호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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