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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일본 수퍼에 열광하나 

 

타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
올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는 8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그중 많은 수가 일본을 여러 번 방문한 단골손님이다.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서도 한국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 중 많은 수가 일본 관광의 매력으로 쇼핑을 꼽는다. 고가 브랜드 제품을 사는 경우도 적지는 않지만, 수퍼마켓처럼 일본인의 지극히 일상적인 쇼핑 창구를 이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얼마 전 도쿄 신주쿠 인근의 한 수퍼마켓에 들렀는데, 매장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려 놀랐다.

그들이 어떤 쇼핑을 즐기고 있을까 관찰했더니 과자나 라면·간장·된장·샐러드드레싱 같은 일상적인 식료품을 대부분 구입하고 있었다. 과자·간장·라면…. 모두 한국 수퍼마켓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며, 맛도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일본에서 이런 제품을 사는 이유는 무얼까.

일본을 자주 방문하는 한국인 지인에게 물었더니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수퍼마켓에서 파는 제품의 가격이 저렴한 데 비해 품질은 더 좋고, 종류도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납득이 갔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생활을 여러 해 하며 본의 아니게 서울과 도쿄 수퍼마켓을 비교하게 되는데, 제품의 종류와 품질을 고려하면 도쿄에서 구입하는 편이 낫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서울의 수퍼마켓에도 압도적으로 저렴한 상품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판매자가 정해놓은 일부 특가상품에 국한된다.

소비자가 정말 필요로 하는 제품이 아닌 경우가 많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싼 제품이 아니다. 본인의 기호에 맞는 제품 가격이 저렴하길 희망한다. 소비자의 다양하고 변덕스러운 요구에 한국보다 일본 수퍼마켓들이 잘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수퍼마켓을 비롯한 일본 유통 업계는 오랜 기간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거듭해왔다. 일본에서 과거 ‘다이에-마쓰시타 전쟁’이라 불리는 유통 업계 패권 다툼이 있었다. 마쓰시타전기산업(현 파나소닉)은 ‘품질 좋은 가전 제품을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워 1950년대 이후 급성장했다. 일본 전역을 커버하는 폭넓은 판매망을 통해 가전제품을 공급해 일본인의 생활수준 향상을 겨냥했다. 이에 일본의 대형마트 다이에가 정면으로 도전했다. 다이에는 “유통 업체가 제조 업체로부터 가격결정권을 빼앗아 1엔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판매하겠다”고 선언했다.

1964년 다이에는 가전제품 시장점유율 1위였던 파나소닉의 모든 제품을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파나소닉은 정해 놓은 ‘정가’를 엄격히 지켜 판매했다. 판매점 할인율은 10~15% 수준에 불과했다.

이에 다이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파나소닉 제품을 조달, 20% 이사 염가 판매에 나섰다. 격노한 파나소닉은 다이에와의 거래를 중단했다.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이에가 주도한 ‘가격파괴’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쓰시타는 ‘대리점이 적정 이익을 얻어야만 사회가 번영한다’고 믿었다.

다이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가전제품 확보에 나섰다. 중견가전 회사들을 인수해 독자 TV 브랜드를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해 제조사 지배체제를 무너뜨렸다. 두 회사의 전쟁은 40년 간이나 이어졌다. 다이에는 ‘소비자를 위해’란 슬로건으로 소고기·화장품·약품·식품 등 모든 제품에 대해 ‘가격파괴’을 단행했다.

다이에가 급성장한 1970~80년대 일본에서 물자부족 시대가 저물자 유통시장은 공급자 우위에서 소비자 우위로 바뀌었다. 소비자들은 결국 가격이 저렴한 다이에를 지지했다. 다만 다이에 천하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수퍼마켓은 대형화되고, 전국 규모로 상품을 싸게 매입해 판매하게 되면서 과거 가전제품 제조사 같은 일종의 공급자 역할에 놓이게 됐다. 다이에는 전국적으로 대량 매입한 제품을 점두에 늘어 세웠다.

그러나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소비자의 요구는 점점 다양화됐다. ‘물건 값이 저렴하니 사야 한다’는 판매 방식은 통용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자신만의 특색을 살린 중소형 수퍼마켓이 전국적으로 등장했다. 조직이 작지만 소비자의 여러 요구에 세세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특히 품질이 중요한 고기·생선·야채 등 신선 식품에 집중했다. 빠른 구매, 빠른 판매 전략으로 대형마트보다 신선하다는 점을 공략해 급성장했다.

매일 취급하는 상품을 교체해 소비자의 세세한 요구에 대응했다. 소비자가 이들 마트에 없는 특정 브랜드 제품을 요구하면 며칠 만에 매대에 둘 정도로 빠르고 민감하게 고객 수요에 대응한다. 대형마트는 하기 어려운 일종의 ‘스피드 경영’이다. 전국 규모의 대형마트들이 이런 신흥 중소마트의 공세에 하나씩 깨져나갔다. 현재 일본 수퍼마켓의 주류는 중소마트들이다. ‘소비자 밀착’이야 말로 생존 비결인 셈이다.

인터넷시대 소비자들은 어느 지역, 어느 기업의 제품이 좋은지 마트 구매담당자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소비자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매장에 반영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단지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는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항상 소비자와 대화하며 새로운 상품을 들여놔야 한다. 또 대형마트는 판매 데이터에 의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판매 트랜드다. 미래의 판매는 PC의 데이터에는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내일의 판매를 예측 할 수 있다.

새로 생기는 수퍼마켓은 벤처기업이기도 하다. 아이디어와 철저한 현장주의에 능한 경영자라야 성공할 수 있다. 경영자는 항상 현장에서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보고, 구매담당자는 전국을 돌며 새로운 ‘히트 상품’을 찾아내야 한다. 각 브랜드들의 생존 방식도 바뀌었다.

제 아무리 큰 규모의 전국 브랜드라도 지방의 이름 없는 기업 제품에 밀려날 수도 있다. 날로 격해지는 유통업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야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Everyday Low Price’가 모토인 미국 월마트는 소비자와의 근접성을 사업의 필수 조건으로 꼽는다. 유통 업계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기회의 손실이다. 소비자가 찾는 물건이 “없다”고 답해서는 안 된다. 최근 한국 소비자들이 일본 쇼핑에 열광하는 것은 한국 유통 업체들에게 큰 ‘기회 손실’인지도 모른다.

- 타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닛케이 서울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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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2호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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