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기회비용을 아시나요?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 며칠 전 딸이 월급을 받았다며 저녁을 사겠단다. 초밥집에 갔다. 직사각형 모양의 옹기접시에 12개 초밥이 한 줄에 6개씩 가지런히 담겨 나왔다. 요즘 유행하는 롱패딩처럼 생선살이 길고 두텁게 밥알을 감싼 초밥이 하나같이 푸짐해 뵌다. 무엇부터 먹을까?

아내는 맛없어 뵈는 초밥부터 먹겠단다. 맛의 점입가경을 기대하며 먹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란다. 나는 맛있는 순서로 먹겠다고 했다. 한계효용은 체감되기 때문에 총효용을 극대화하려면 맛있는 것부터 먹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거꾸로 하는 것은 식사의 총효용을 떨어뜨리는 기회비용이 크다고 부연 설명까지 했다. 딸이 거들었다. 흰살 초밥부터 시작해서 붉은살, 등 푸른 생선, 달달한 초밥 순서로 먹는 게 정석이라고 한다.

식사의 목적은 같은데 순서의 선택은 다르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숨어 있다. 누구의 선택이 기회비용이 가장 컸을까?

#2. 2019년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상장회사들이 지난 한 해에 거둔 성과를 재무제표로 정리해서 속속 발표하고 있다. 그중에 회사 A는 2018년에 1조원을 약간 웃도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다른 회사 B는 영업이익이 324억원이라고 했다.

어느 회사가 사업을 더 잘했을까? A의 영업이익 규모가 B보다 36배나 많으니 당연히 A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속 내용을 보면 A는 덩치만 컸지 빛 좋은 개살구이다. 영업이익률에서 A는 2.14%, B는 11.4%이다. 자산 대비 이익률도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A의 이익률은 저축은행 예금금리만도 못하다. 열심히 헛장사 했다는 의미이며, 기회비용을 감안했을 때 A의 경제학적 이윤은 마이너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A는 제품보다 강성노조가 더 유명한 기아자동차이다.

#3. 3선 의원을 지냈던 전직 국회의원이 ‘여의도 국회에 기회비용 개념이 없다’고 어느 모임에서 말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심의하고 배분할 때 국민경제적 기회비용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네들의 정치적 이익을 앞세운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도 선심성 예산 낭비 사업을 뜻하는 ‘포크배럴(pork barrel)’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정치인들이 국가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먼저 챙기려는 성향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그래서 투명한 예산심의 과정이 중요한데 여의도 정치인들은 특별히 예산심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은 채 여야 간 밀실 협상과 쪽지 예산을 즐기고 있어 문제이다.

#4. 나랏돈은 먼저 보고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다. 2004년 고(故) 노회찬씨가 국회에 첫 입성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조찬포럼에 그를 초청했다. 그때 노회찬씨는 “양양과 무안공항 공사를 끝낸 지 꽤 되는데 정부는 이게 무슨 국가 1급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조그만 국토에 무슨 국제공항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수천억원을 들여 만든 공항의 텅 빈 활주로는 앞으로 나락이나 고추를 말리는 데 써야 할 것”이라며 꼬집었다. 불행하게도 예상은 적중했다.

무안공항은 활주로에 비행기는 없고 인근 주민들이 수확한 고추를 말리는 장면이 보도되면서 일약 화제가 됐다. 무안공항은 2017년에 13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전국 14개 공항 중에 적자폭이 가장 크다. 3500억원을 들여 2002년에 개항한 양양공항도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7년에는 119억원의 적자를 냈다. 기회비용 개념 없이 시작한 국책사업들이 전국에 ‘세금 먹는 하마’를 양산한 것이다.

#5. 기회비용 무개념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확산형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월 29일, 전국 23개 대형 국책사업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하고 추진한다는 내용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중에는 8000억원을 들여 새만금국제공항을 새로 건설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23개 국책사업은 토목 SOC 사업이 대부분이며 총사업비는 24조1000억원으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비 22조5000억을 넘어선다.

대규모 예타 면제에 대해 여기저기서 우려가 일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강조한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예타를 면제했을 때 밝혔던 입장과 상반되는 변명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에 지역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국가정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했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2015년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예타를 생략해버렸다. 그 결과는 환경 재앙과 국민 혈세 22조 낭비였다”고 목소리 높여 비판했다. 그 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가?

#6. 예비타당성 조사가 만능은 아니다. ‘세금 먹는 하마’의 하나인 무안공항도 KDI 예타 조사를 거쳐 진행한 사업이다. 예타 조사 과정에서 여당·정치권·지자체의 압력에 따라 미래의 불확실한 편익은 부풀려지기 일쑤이다. 실제 이용객이 10만 명에 불과한 무안공항이 타당성 조사 당시에는 870만 명을 예상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또 국책사업 추진이 예타 조사 결과에 법적으로 구속되는 것도 아니다. 예타 조사 결과가 나빠도 정부가 꼭 추진하겠다면 법적으로 이를 막을 방도는 없다. 이런 한계에도 제한된 국가 예산을 투입해서 추진하는 대형 사업에 대해 국민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회비용을 따져보는 절차로서 예타 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문 대통령도 야당 대표 때 예타 조사 없이 추진한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 반대했을 것이다. 똑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이번은 내가 해보는 일이니 이전과는 다른 결과가 기대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낙관이다. 예타 조사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초지일관하는 게 맞다.

#7. 끝으로 모든 선택은 기회비용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산뜻하게 표현한 시 하나를 소개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시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다.

‘노랗게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중략)… 먼 훗날에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말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그중에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부연하면, 이 시에서 프로스트는 행복한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왜냐하면 두 길이 모두 아름답다고 봤으니까. 그런데 정치가 이끄는 한국 경제의 행로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 아니라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되지 않을까 은근 걱정이다.

1472호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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