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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의 늪에 빠진 2019 자동차 시장] 미국·중국·유럽 시장 동반 침체 예상 

 

김유경 기자
대규모 구조조정에 치열한 마케팅 경쟁 … 브라질·인도·러시아 등지는 판매 호조 전망

▎지난 3월 6일 GM의 미국 오하이오주 로즈타운 공장이 폐쇄되기 전 마지막 쉐보레 크루즈가 생산되고 있다. / 사진 : GM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4분기 임원 인사의 주요 포인트는 인공지능(AI)·디자인·고성능차 분야 강화였다. AI가 미래 역량 강화를 위한 조치라면, 디자인과 고성능차는 현재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 수단이다. 제조 업체가 디자인·고성능에 주력하겠다는 것은 제품을 차별화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만큼 현대차는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기술력을 많이 따라잡았고, 가격도 올랐다. 이는 세계 대다수 제조사가 비슷한 상황이다. 세단·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하이브리드차·디젤차 등에서 어느 제조사도 독주하고 있는 분야가 없다. 경계는 허물어졌고 피 말리는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세계 자동차 시장은 부진에 빠졌다. 성장은 정체돼 있고, 중국 토종 제조사를 필두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 기업·가계의 부채 축소에 따른 자동차금융 위축과 중국의 소비 부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제표준배출가스시험방식(WLTP) 도입에 따른 자동차 가격 인상 등 여러 악재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현대차 글로벌 경영연구소는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9249만대로 지난해 대비 0.1%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0.2%에 이어 2년 연속 0%대 성장률이다. 경기가 비교적 좋았던 2015년 2.1%, 2016년 4.7%, 2017년 1.8%에 비해 급감했다.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 증가율 0.1% 전망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 지역은 할부금리 상승 등으로 판매량이 1700만대로 지난해보다 1.4%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현지 전문가들은 미국 자동차 판매 규모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1700만대에 못 미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유럽 역시 디젤차 규제 강화와 시중금리 상승 등 영향으로 전년 대비 0.2% 감소한 1780만대 판매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해 첫 역성장을 기록한 중국도 2017년과 비슷한 2315만대 판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승용차·화물차 수요 약화로 세계 자동차 판매 증가율이 올해 0.5%, 내년 0.8%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무디스는 세계 경기 악화와 미국 정부의 수입차 관세 부과 위협, 브렉시트를 주요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렉시트 혼란으로 닛산의 영업이익 30%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부품의 절반가량을 유럽에 의존하고 있는 재규어랜드로버와 BMW도 피해가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그나마 올해 브라질·인도·러시아 등 신흥시장의 판매량은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차는 올해 브라질과 인도 7.6%, 러시아 8.3%의 판매량 증가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세안은 4.6%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주력시장인 미국·중국·유럽의 부진을 만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장 부진은 자동차 회사들의 실적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도요타는 3월 마감되는 2018회계연도 예상 순이익을 2조3000억엔에서 1조8700억엔으로 하향 조정했다. 미·중 무역전쟁 등 교역 여건 악화가 원인이다. 도요타의 지난해 10∼12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 늘었지만, 순이익은 81%나 줄었다. 마쓰다의 지난해 4∼12월 자동차 판매량도 중국 경기 둔화 등으로 20% 급감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8회계 연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예상된다.

메르세데스-벤츠를 산하에 둔 독일 다임러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9% 감소했다. 테슬라는 첫 보급형 전기차 ‘모델3’의 가격을 올 들어 두 차례에 걸쳐 3100달러 인하한 4만2900달러로 끌어내리며 판매량 늘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테슬라는 모델3의 가격을 3만5000달러까지 인하하는 한편, 전일제 근로자의 7%를 줄이는 등 체중 감량에 나설 계획이다.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도 지난해 11월 북미 5개 공장의 가동을 멈추고, 1만4700명의 인원을 감축한다고 밝혔다. 3월 6일에는 구조조정 대상 1호로 오하이오 로즈타운 공장의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디비야 수르야데바라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지난해 10억 달러 손실을 입었으며, 올해도 10억 달러의 추가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자동차 회사들은 마케팅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매출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전장은 중국이다. 중국은 최근 끝난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4월 1일부터 제조 업체의 부가가치세를 16%에서 13%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에 발맞춰 벤츠는 중국에서 판매하는 C300모델 가격을 1만2000위안(약 202만원) 인하한다. BMW 역시 X5 제품의 가격을 2만 위안 낮추기로 했으며, 링컨·재규어·랜드로버·볼보 등도 가격 인하 계획을 밝혔다. 세율 인하에 따른 반사이익을 선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폴크스바겐 등도 미주·유럽에서 중고차 반납 때 신차 구매 가격을 깎아주는 등의 할인 정책을 펴고 있다. 포드·캐딜락·볼보·벤츠·포르셰·BMW 등은 구독형 자동차 서비스를 통해 부족한 판매량을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고, 증시 부진 등으로 소득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캐나다 투자은행 RBC캐피탈 마케츠는 보고서에서 “미국 등의 자동차 업체들이 수요를 받치기 위해 가격 인하에 나설 수 있지만 효과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도 올 2월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19% 급감한 117만대에 그치는 등 기조적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

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전기차 등 개발에 막대한 투자 부담

이런 가운데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전기차 등 모빌리티 혁명은 자동차 제조사에게 재무적 부담을 안길 전망이다. 현대차는 2월 27일 발표한 중장기 경영전략에서 앞으로 5년 간 연구·개발(R&D)과 미래차 부문 투자에 45조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연간 9조600억원 규모다.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4222억원이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 글로벌 레이팅스는 보고서에서 “(전기차로의) 점진적 변화에도 완성차 업체들은 안정된 신용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부품 공급사 보호와 R&D 지출, 다양한 충전 옵션 설치는 결국 완성차 업체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위원도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 자동차 산업은 스마트 모빌리티로의 전환과 밸류체인의 재무적 안정성 확보라는 미래·현재 과제를 모두 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477호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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