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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본 시카고, 시카고에서 본 미국] 24시간 잠들지 않는 요란한 사이렌 

 

소방차·구급차·경찰차, 30분에 1번씩 요란한 질주… 시민 불만·불안 커지자 사이렌 데시벨 규제

▎시카고 다운타운 디어본 스트리트에서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고 있다. / 사진:김자영
“누구 총 맞아 죽은 거 아니야?” “어디 불 났나 봐?” 우버를 타고 시카고 도심으로 들어서면 유난히도 귓가를 파고드는 소리가 있다. 바로 사이렌이다. 도심을 걷고 있으면 많게는 30분에 1번씩 소방차·구급차·경찰차가 앞다퉈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급하게 내달리는 것을 보게 된다. 소리의 종류는 각기 다르지만 귀를 울리는 데시벨은 사람의 심장마저 요동치게 만든다.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끈 미국 드라마 [굿 와이프]의 배경인 시카고는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거뜬하게 담아낸 건물들이 대들보처럼 도시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섭씨 영하 50도까지 겨울 기온이 내려가면서 추위의 도시로 다시 한 번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시카고를 검색하거나 미국에서 오래 지낸 사람에게 시카고에 대해 물으면 ‘위험한 도시’ ‘총기사망사건 1위’ ‘마약범죄’와 같은 키워드를 먼저 접하게 된다. 이곳에 오랜 기간 거주한 시민들은 사이렌에 무덤덤해진 듯 전혀 관심이 없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차량에 대해서 궁금해하지도, 어떤 사건의 현장으로 내달리는지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위험한 도시’ ‘총기사망사건 1위’ ‘마약범죄


▎시카고 시내 웨스트 일리노리 스트리트에서 소방차가 달리고 있다. / 사진:김자영
시카고가 살인·화재·강도 등 심각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도시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위급한 상황이 아님에도 사이렌을 울리고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아서다. 공격적인 사이렌 소리에 무관심해 보인 시민들도 최근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이 크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시카고 다운타운 내 거주자 중 특히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불만이 크다. 갓난 아기들부터 시작해 어린 아이들이 사이렌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꼭 어린 아이들이 아니라고 해도 오밤중 사이렌 소리에 밤잠을 설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카고의 큰 사이렌 소리는 시민들의 불만을 넘어 공론화돼 주법이 바뀌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시민들이 청력 이상, 심리적 불안 등을 이유로 꽤 오랫동안 민원을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입원해있는 아동전문병원에서는 아이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면서 여러 차례 시와 주에 건의를 해왔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인들조차 집안에서 이어플러그를 끼거나 공사장에서 전문가들이 쓰는 귀마개를 하는 사례를 시카고 사람들로부터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20~30층이 넘는 고층에서도 사이렌 소음이 그대로 전달될 정도이니 단독주택이나 아파트 저층에 사는 시민들의 고통이 상당하다는 전언이다.

브루스 라우너 일리노이 주지사는 지난해 8월 올해 1월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주 법안에 사인했다. 즉각적인 의료조치를 취해야 하는 환자를 실으러 가거나 태운 경우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가 방해하면 앰뷸런스의 사이렌과 불빛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이 법도 인구가 100만 명 이상이 되는 일리노이주 도시에 한해 적용돼 논란이 있다. 인구가 270만 명으로 기준을 웃도는 시카고 다운타운 시민들은 상당히 반기는 분위기다. 다른 지역에서도 아쉽지만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만으로도 환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시카고 소방당국의 경우 연방법에 따라 사이렌 소리를 120데시벨로 유지했다. 연방법은 123데시벨 이하로 규제하고 있다. 이전 주법에서는 앰뷸런스의 데시벨을 차량과 50피트 떨어져 있을 때 100데시벨로 규정했다. 미국산업안전보건원에서는 하루에 1분30초 이상 110데시벨 이상 소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면 청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90데시벨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뉴욕시에서도 사이렌과 관련해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뉴욕 역시 공격적이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이렌 소리를 바꿔야 한다는 민원이 늘고 있어 변경 조례안이 시 의회에 상정됐다. 헬렌 로젠탈 뉴욕시 의원은 지난 2월 뉴욕시의 응급 차량 사이렌을 유럽 스타일로 바꾸자는 내용의 변경 조례안을 냈다. 헬렌 로젠탈은 현재 뉴욕에서 사용하는 사이렌 소리를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선진국 도시에서 쓰고 있는 방식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 방식을 사용하면 데시벨을 120까지 유지하면서도 듣는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을 다녀와본 사람들은 유럽의 사이렌에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사이렌은 하이 프리퀀시를 유지하며 소리를 내는 방식이지만 유럽 사이렌은 하이-로우 프리퀀시 방식으로 동일한 데시벨에서 청력에 무리를 덜 준다. 로젠탈 의원은 조례안을 상정한 후 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해 사이렌 방식을 바꿔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로젠탈 의원은 3월에 NPR 방송에 출연해 “많은 뉴욕 시민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줬다며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해 뉴요커들의 사이렌 노이로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설명하기도 했다. 뉴욕에서는 벌써 사이렌을 바꿔 사용하는 병원이 생겨나기도 했다.

뉴욕에서는 유럽 스타일로 사이렌 소리 패턴 바꿔

한편 올해부터 사이렌과 관련해 새로운 법이 시행된 시카고에서는 아직 큰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고 있다. 10년째 다운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에이미 리안은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여전히 2층인 우리집에서는 매일 사이렌 소리를 듣고 있다”며 “기분 탓인지 빈도수가 이전보다는 줄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괴성 같은 사이렌이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한다. 과연 미국의 대도시들은 사이렌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1~2년 후가 궁금해진다.

- 시카고=김자영 통신원

1482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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