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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란 제재 재개 후폭풍 부나] 페르시아만에서 국지적 충돌·분쟁 가능성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이란의 석유 수출 금지로 국제경제 타격 우려… 미국과 러시아·중국·인도 등과의 역학관계 복잡해질 수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5월 8일 국영방송 연설에서 통해 이란 핵합의 내용을 일부 파기한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중동 한복판, 석유의 바다인 페르시아만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지난 6개월간 이란산 석유 수입 금지조치를 면제하던 8개국에 대한 예외 조치를 지난 5월 2일까지만 적용하고 중단하면서다. 그리스·이탈리아·대만은 이미 이란산 석유 수입을 중단했고, 5월 3일부터는 한국·중국·인도·일본·터키가 수입 금지 대상이 됐다. 미국은 이란 경제의 핵심인 원유 수출을 사실상 틀어막는 혹독한 봉쇄에 들어갔다. 미국이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란산 석유 수입 금지조치 예외 중단


이란산 석유 수출이 완전히 금지되면서 2015년 7월의 이란 핵합의, 즉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의 합의로 시작됐던 대이란 경제제재 완화조치는 종말을 고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이란과 맺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은 이란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제재를 푸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2017년 들어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보수층의 의견을 들어 지난해 5월 8일 핵 합의에서 이탈했다. 이란에 적대적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를 상대로 벌인 적극적인 외교전이 먹혔다는 분석도 있다. 네타냐후는 이란이 핵합의 후에도 몰래 핵개발을 계속해왔다는 내용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의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가 트럼프의 귀를 잡았다는 관측도 있다. 쿠슈너는 유대인이며 이방카도 개종시켰다. 네타냐후와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핵 합의 탈퇴는 제재 완화의 시대가 끝나고 제재 재개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8월 금속 등에 대한 1차 제재에 이어 11월엔 석유 등에 대한 2차 제재가 각각 시작됐다. 이번 8개국 수입금지는 2차 제재에 따른 유예조치가 끝나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국내법으로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 보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가 불만을 토로할 수 있어도 대놓고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이란산 석유 수입을 금지당한 나라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경제대국일 뿐 아니라 이란에게도 교역을 좌지우지해온 핵심 무역 대상국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통계에 따르면 이란은 2017년 1107억 달러를 수출하고 973억 달러를 수입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이란의 핵심 수출대상국은 중국(전체 수출의 27.5%)·인도(15.1%)·대한민국(11.4%)·터키(11.1%)·이탈리아(5.7%)·일본(5.3%) 순이다. 이란의 주요 수입국은 아랍에미리트(UAE·27.4%)·중국(13.2%)·터키(7.8%)·독일(4%) 순이다. 이란으로선 이번 조치로 수출품의 55~60%를 차지하는 원유 수출이 막힌 셈이다. 이란 경제가 반신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이란은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제재가 부분 해제됐던 2016년 13.4%에 이르렀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1.5%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는 -3.6%로 더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월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는 이란의 GDP 성장률이 지난해 -3.9%, 올해는 -6%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통계는 달라도 모든 데이터와 전망이 한결같이 암울하기는 똑같다.

이란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도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2016년 9.1%가 떨어졌던 물가는 지난해 40%가 뛰었다. IMF의 지하드 아주르 중동·중앙아 담당 국장은 지난 4월 28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올해 물가상승률이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년 연속 40% 상승이다. 국민 동요를 우려한 테헤란 정부는 임금 인상 등 대책을 내놨지만,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란은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릴 듯


인플레는 당장 물가와 서민 생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국민 불만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이란 리라화 환율도 계속 떨어져 터키나 UAE, 또는 인도로 여행 가기를 즐기는 이란인의 삶의 양식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란에서 해외 여행은 사회적인 스트레스 해소 통로로 여겨져왔다. 여성이 외출할 때는 반드시 머리를 가리는 히잡을 쓰고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는 등 사회적 통제가 심한 이란에서 해외 여행은 일시적인 탈출구였다. 리라값이 떨어져 해외 여행 빈도가 줄면 이란 국민의 불만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란이 핵 개발을 재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난 5월 8일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국영방송 연설을 통해서 핵 프로그램 재개를 선언하지는 못하고 필요하면 재개할 수 있으며, 원자력 시설 가동에서 나온 중수를 넘기는 약속을 지키기 않겠다 정도로 일단 봉합했다. 이란도 어쩔 수가 없는 셈이다.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존 볼튼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미사일을 옮길 가능성 등 이란 도발에 대비한다며 미군 항공모함과 B-52 폭격기를 페르시아만에 배치한다고 발표했지만 엄포용일 가능성이 크다. 원래 지중해에 있던 미 해군 항공모함이 페르시안만으로 옮겨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에서 쓰던 B-52 넉 대를 배치하는 것도 상징적인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

대신 이란 제재 부활은 페르시아만 지역의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5월 8일 “중동에서 전쟁이 우발적으로 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분쟁이나 충돌이 벌어진다면 페르시아만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페르시아만은 아랍 국가들은 아라비아 만으로, 1990년대 이후 서구에선 걸프라는 표기로 많이 부르는 곳이다.

페르시아만은 석유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확인된 원유의 3분의 2, 천연가스의 3분이 1이 이 바다에 묻혀 있다. 페르시아만에 접한 이란·이라크·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카타르·UAE·오만은 한결같이 세계적인 산유국이다. 석유수출기구(OPEC) 2018년 연감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 상위 국가에 페르시아만 연안의 회원국인 사우디아라비아(2662억 배럴, 전 세계 21.9%, 2위), 이란(1556억 배럴, 12.8%, 3위), 이라크(1472억 배럴, 12.1%, 4위), 쿠웨이트(1015억 배럴, 8.4%, 5위), 아랍에미리트(978억 배럴, 8.1%, 6위)가 포함됐다.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있는 페르시아만은 그리 넓지 않다. 면적이 25만1000㎢로 한반도 크기 정도다. 동해(97만8000㎢)의 약 4분의 1, 서해(38만㎢(보하이)만 포함)의 약 3분의 2 수준에 불과해 의외로 좁은 바다다. 수심이 비교적 얕은 편으로 평균 50m 정도에, 남쪽인 아라비아 반도 쪽은 35m를 넘는 곳이 드물고 비교적 깊은 북쪽 이란 쪽이 90m 정도다. 이에 따라 해상 유전이 발달했다. 만 중간에 수없이 있는 섬이나 인공섬에서 파이프를 박아 원유를 채굴한 다음 유조선에 선적해 수출하는 방식이다.

입구가 좁은 페르시아만의 독특한 지리적인 형태는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더한다. 서쪽 끝인 이란·이라크의 샤트알아랍 수로(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만나서 바다로 흐르는 수로)에서 동쪽 끝인 호르무즈 해협 사이의 거리가 989㎞ 정도이고, 남북은 거리가 가장 넓은 곳이 중간의 340㎞, 좁은 곳이 동쪽 끝 호르무즈 해협으로 56㎞에 이른다. 좁은 호르무즈 해협이 전략적으로 병의 마개 구실을 하는 셈이다. 이곳이 막히면 전 세계 석유 유통이 목줄을 잡히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북쪽은 이란이고 남쪽은 오만의 역외영토(본국과 육로 연결이 끊긴 영토)인 무산담 반도다. 2016년 무산담 반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 메마른 사막의 언덕에 올라가니 선박들이 줄지어 해협을 지나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지정학적으로 이곳의 유조선과 화물선의 항해 혈관이 막힐 경우 세계 경제는 심각한 뇌졸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페르시아만 지역의 긴장 고조는 국제 석유 공급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개입과 내부 정치 혼란상 등으로 OPEC 회원국 중 원유 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 유럽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대형 산유국인 리비아의 원유 공급이 줄거나 끊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 석유가 국제시장에 공급되지 않으면 자칫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늘면 가격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산 석유 없이도 사우디아라비아나 UAE의 증산으로 수급과 가격 유지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4월 26일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에게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전화해 ‘유가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트위터에선 “사우디와 다른 국가들에 공급 확대를 얘기했으며 모두 동의했다”고 했다. 하루 100만~200만 배럴에 이르렀던 이란 석유 수출의 감소분을 증산으로 보충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그날 국제유가를 하루에 3%나 떨어뜨렸다.

이란 정부 ‘그레이마켓’에서 살 길 찾나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원유라고 다 원유는 아니다. 원유를 가공해 자동차 기름인 휘발유나 디젤유를 생산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원유는 석유화학물질을 얻는 핵심 자원이다. 석유화학 물질이 없는 인류의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의약품부터 비닐까지 모두 석유화학 제품이다. 문제는 사우디나 UAE산 원유는 중질유지만 이란산은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함유량이 많은 초경질유여서 대체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트럼프가 쏘아올린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라는 조치가 국제유가 상승을 넘어서는 국제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란도 나름의 수를 찾아나설 것이다. 이란은 정상시장인 화이트마켓과 암시장인 블랙마켓 어느 곳도 아닌 ‘그레이마켓’을 찾아 석유 수출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석유를 해외에 팔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웃 이라크의 시아파 정권을 활용해 석유를 외부에 보낼 수도 있고, 이라크와 터키를 잇는 파이프라인을 이용할 수도 있다. 국경을 맞댄 투르크 메니스탄을 통해 러시아로 넘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어느 방법도 물류비용과 통관비용이 추가로 드는 등 간단하지 않지만 미국도 이를 모두 찾아 틀어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란이 ‘그레이마켓’을 언급한 이유는 미국이 정책을 세우면 이란은 대책을 세워 살 길을 찾겠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더구나 사우디나 UAE가 아무리 친미국가라고 하지만 무한정 증산을 할 수도 없다. 국제유가가 어느 정도 올라야 이들에겐 당장 이익이기 때문이다. 몇 년에 걸친 유가 하락으로 사우디는 최근 감산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증산과 감산을 오락가락 할 경우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국제 정세도 우려할 만하다. 이런 상황을 틈타 에너지 대국인 러시아가 미국에 무슨 반격을 가할지도 알 수 없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고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푸틴은 이미 지난 3월 “EU가 제재를 풀면 러시아도 상응 조치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제재로 인한 서방의 압박이 상당히 고통스럽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러시아는 중국 같이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는 나라가 아니라 자국산 석유와 가스를 수출하는 산유국이다. 이런 지위를 이용해 석유 증산에 협력하는 대신 경제제재를 풀라고 요구할 수 있다. 증산을 하지 않으면 유가가 오를 수 있어 러시아의 지갑에 도움이 된다. 미국과 이란의 대결은 러시아로선 꽃놀이패인 셈이다.

러시아, 자국 경제제재 풀라고 요구할 수도

중국과 인도, 그리고 터키가 이란산 석유 수입금지 조치를 어기거나 미국에 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미국도 이들 나라가 한꺼번에 요구할 경우 보복조치로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 미국은 이들이 이란산 석유 금지조치를 유지하는 대신 다른 당근을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거래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수입금지를 위반할 경우 외교관계나 교역 파탄을 각오하고 강경책을 취하기도 곤란하다. 자칫 트럼프에게 정치적인 딜레마를 안길 수도 있다. 이 복잡한 국제관계 방정식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페르시아만발 국제정세의 불안과 불안정이 글로벌 경제를 어디로 이끌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안개가 그칠 때까지 한국도 촘촘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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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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