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극한 대립과 반목, 그리고… 

 

김지용 칼럼리스트(시인, 전 문화일보 부국장)
대기업 노조원들이 억, 억 대는 속에 기업은 점차 투자의욕을 잃고 사위어간다. 길거리로 생산현장으로 붉은 띠 부대가 쏟아져 나와 공장은 휴업상태고 산업현장도 올스톱,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높은 수준의 복지와 1억원을 웃도는 연봉을 받는 이들이 억 억 대는 모습은 낯설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1인당 1억500만원(금융감독원 자료)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다. 임금성 항목으로 근로자의 실수령액과는 괴리가 있겠지만, 대기업 노조원의 평균 임금은 전체 노동자보다 3배 정도 더 받는다. 노동귀족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억대 연봉이라면 부자에 속했다. 어지간한 봉급생활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돈이었다. 신의 직장이라던 화이트칼라의 시대는 멸실되고 신진 억대 근로자들이 임금을 더 올려달라고 임단협을 보이콧하고 있다. 수시로 전면 파업에 돌입, 공장 가동을 멈추는 바람에 기업은 생산 차질로 실적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납품 업체들 또한 도산의 위기에 직면하곤 한다.

한국은행의 ‘2018년 노동소득분배율’에 따르면 지난해 노동소득분배율은 63.8%로 전년의 62%보다 1.8%포인트 높아졌다. 기업이 1000원을 남기면 노동자가 638원을 가져가고 나머지 362원은 기업 몫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추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업무 파행으로 생산 차질을 초래했다. 기업의 대처도 슬기롭지 못하다. 공장 폐쇄·이전을 운운하며 강 대 강으로 맞섰다. 공멸이 아닌 상생의 길을 찾기 위해 노조와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계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줄 만큼 거시경제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청년실업자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고, 국가 부채비율도 40% 선으로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올 연례협의 결과보고서’는 재정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되 재정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여성과 청년고용 향상과 노동시장 개혁, 구조개혁 지원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재정 투입을 늘릴 것을 권고했다. 앞으로 국가재정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성숙한 경제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중산층이 두꺼운 ‘양파형’을 이뤘을 때다. 그렇지만 한국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며 양파형이 붕괴한 지 오래다. 사회구성마저 보수와 진보로 양분돼 반목하고 경쟁을 하는 이상 현상을 빚고 있다.

하나로 아우르는 중산층과 중도가 소멸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신진세대를 경멸하고 신진세대는 기성세대를 불신, 양 계층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아집과 독선만 극성을 부리고 있다. 결국 좌와 우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보수 우파는 기존 관념의 틀에서 탈피하지 못해 개혁을 거부하고 있고, 진보 좌파는 기성세대를 경시하고 무시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성행하며 양측의 진영논리는 더욱 공고해지고 상대 진영에 대한 배타성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저임금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서는 일자리가 축소돼 가는 실정을 간과하며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기업은 더는 생산현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논리로 폐쇄 수순을 밟으며 압박한다. 경찰은 고문 끝에 숨진 박종철군이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산업 현장에서 억소리만 외치는 노조와 산업 생태계 변화에 맞게 능동적으로 변하지 못한 기업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한국 경제가 “억” 소리를 외치다 “탁” 하고 쓰러지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1489호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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