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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에게도 인기인 ‘유튜버 할배’“손녀가, 할배가 유튜버라고 좋아합니다. 법률상식도 알려주고, 국민들의 관심은 큰 데 재판 결과에 대해 비난이 쏟아진 사건들에 대해 판결의 배경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판사로서는 법대로 할 수밖에 없죠.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해 자기 콘텐트가 있으면 누구나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조회 수, 댓글로 구독자의 반응도 확인할 수 있죠.”그가 꼽은 유튜브 채널의 장점은 한번 올리면 지속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회성 강연과 확실히 다른 점이다. 올린지 반년 된 영상도 볼 수 있어 확장성이 뛰어나다. ‘차산선생 법률상식’은 악플이 없는 일급수이다. 황제노역 편엔 “구독했습니다. 착하게 살 게요”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차산(此山)은 그의 호이다. 중학교 때 그에게 한문을 가르친 조부가 그 시절 소개한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에서 따왔다.‘판사의 꽃’이라는 대법관 출신의 이 유튜버는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좋은 일을 한다”는 덕담을 듣는다. 정작 장관급인 대법관 시절엔 격무에 시달렸다. 대법관은 임기 6년 중 취임식 날 하루만 즐거운 자리라는 말이 있다. 대법관 시절 그는 직원들에게 비자발적 야근을 시키지 않으려 6시 퇴근 후 귀가해 두어 시간씩 집에서 사건을 검토하기도 했다. 건강 관리를 위해 매일 한 시간씩 걸었는데 걸을 때도 사건 생각을 하고는 했다고 말했다.법관은 직업상 사람 만나는 게 꺼려지는 직업이다. 그는 먼저 만나자고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대법관 시절엔 아예 외부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고, 만나자는 사람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들이 많다.사법시험은 서울 법대를 졸업하던 해에 패스했다. 이른바 소년 급제를 한 셈이다. “사시에 일찍 붙은 사람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잘 안 풀렸습니다. 교만에 빠지거나 인생을 쉽게 생각해 노력을 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조심을 했습니다. 법관도 대인관계가 원만해야 합니다.”법대에 진학한 건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게 자주 묻고 잘 따졌기 때문이다. “답변이 궁한 어른들이 걸핏하면 공부나 하라고 하셨는데 사리를 따지는 게 곧 공부하는 거예요. 제 딸이 저를 닮아 둘이 만나면 만날 말싸움을 합니다.” 그에게 유튜브 입문을 권한 딸은 “자신의 말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자식에게 시키는 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게 부모들이 가장 잘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도 딸과 생각이 같다고 귀띔했다. “저의 좌우명이자 우리 집 가훈이 자립의 정신입니다. 법조계 사람들이 대부분 자식을 법조인 만들고 싶어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전공, 직업, 배우자 선택을 다 알아서들 했죠. 금융사 다니는 딸이 고생길이 훤한 법률가가 되지 않은 건 정말 천만다행입니다.”그는 운 좋게 일찍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 대과 없이 공직을 마쳤고 두 자녀를 둔 화목한 가정을 이뤘으니 1막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퇴직 후 로펌에 몸담아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나아졌다. “젊어서는 대법관은커녕 법원장 자리도 멀게 느껴졌어요. ‘운7 기3’이죠. 일찍 시작해 30대에 단독 판사, 40대에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되다 보니 옷 벗을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어 변호사 개업이 급할 건 없다고 생각할 때 대법관이 됐죠. 임명권자인 고 노무현 대통령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습니다.”꽃길만 걸은 그지만 중학교는 입시에 낙방해 2차였던 대구중에 진학했다. 거의 유일한 그의 좌절 경험이다. 그때도 공부는 잘했지만 체육 점수가 낮아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는 기성세대가 자신의 도덕적 기준과 사회생활에 관한 자기 원칙을 늘어놓아 꼰대 소리를 듣는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도 자기들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윤리 규범은 사실 논리적으로는 설득이 안 됩니다. 일례로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규범엔 아무런 논리도 없어요.”그의 버킷 리스트는 판사 생활을 하느라 오랫동안 못 만난 오래된 지인들을 찾아 만나 보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 2막은 옛 인연을 돌아보는 게 좋다고 봅니다. 건강 관리를 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독립적인 삶을 살고 나름의 취미 생활도 하며 살아야겠죠. 기부도 좀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그는 젊어서 재물 운이 있었다 하더라도 노후에 무리한 투자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벌어봤으니 계속 벌고 싶겠지만, 옛날 생각하고 투자했다 실패해 어려워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생 2막에 무리한 투자는 금물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가 새삼 새기는 법언은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라”이다. “미국은 증거법에 따라 엄격히 따져 죄가 확실하면 중벌을 내리고 긴가민가할 땐 처벌을 못합니다. 이와 달리 우리는 긴가민가싶을 때도 처벌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형량이 낮은 건 이런 사정도 있다고 봅니다. 권력의 작용을 떠나,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습니다. 법이 피해자와 약자 편에 서야 하는 건 권력자는 힘으로 자기 이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는 명색이 지식인이라면 균형 잡힌 시각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판결은 물론 언론 보도도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입법을 담당하는 정치인도 마찬가지예요. 문제가 있는 법이라도 고치기 전까지는 지켜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