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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19) 홍영만 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장] “시니어들이여 더 당당해집시다” 

 

팟캐스트 방송하는 전직 정통 경제관료… ‘아나운서 꿈’ 이뤄

▎사진:김현동 기자
“가정생활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는 될 겁니다. 부부싸움도 대부분 경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죠. 가정이 행복하려면 그래서 부부가 경제 마인드를 갖춰야 합니다. 한마디로 재테크·세금·부동산 등 경제에 대한 상식이 필요하죠.” 지난 3월 팟캐스트 라디오 프로그램 ‘홍영만의 가정 경제’를 시작한 홍영만 차의과학대 경영대학원장은 “가정 경제를 잘 꾸려야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프로그램은 경제 이슈만을 다루지 않는다. ‘행복한 가정을 위한 미술 치료’ ‘가정에서 자녀들의 수학 실력 키우기’ 등 자녀 교육을 주제로 한 대담도 내보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이자 작가 겸 PD이다. “1급 공무원까지 한 사람이 무슨 이런 방송을 하나”라는 후배들도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홍 원장은 행정고시 출신이다. 행시 패스 후 성적이 최상위권인 사람이 가던 재무부에 발령 받았지만 이듬해 아나운서 시험을 봤다. 그 이듬해에도 도전했다. 행정고시에 패스한 지 5년 만에 또 다시 원서를 접수하러 KBS 창구까지 갔다가 ‘아나운서는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돌아섰다. 그는 “당시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다면 그 길로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대학원 유학 시절엔 시애틀 교민 방송에서 반년 남짓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을 끝으로 공공 부문을 떠난 후 YTN 라디오 프로그램 생생경제에서 8개월 간 ‘홍영만의 뉴스 경제 수업’이라는 코너를 맡기도 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상임위원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에 미 워싱턴주립대 경제학 박사인 그는 지난해 환갑을 넘겼지만 본격 경제 프로그램의 앵커를 꿈꾼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가 무급으로라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그는 대학 시절까지 김동건·전영우 같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마이크를 잡으면 그저 좋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버벅대다 가도 막상 마이크를 잡으면 곧바로 말이 매끄러워진다. 마이크 체질이라고 할까? 방송이 하고 싶은 것도 어쩌면 그래서인지 모른다. 마이크 울렁증도 없다. 미국 유학 시절 시애틀 교민 방송 아나운서로 활동할 땐 교민 노래 자랑 같은 행사의 사회를 도맡아 봤다. “노래방 마이크는 예외”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2017년 니콜라스 D. 크리스토프와 쉐릴 우든 부부가 쓴 책 [기부 수업]을 번역했다. 이 책엔 1700명의 멘토들로 피스코(평화봉사단)를 연상시키는 익스피리언스코(경험기부봉사단)를 조직해 저소득층 고교생들에게 멘토링을 제공한 레스터 스트롱, 거리의 젊은 매춘부들을 사회에 복귀시키려 매춘부를 위한 집을 마련한 전직 매춘부 등 봉사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스트롱은 청소년 시절 학습부진아였다. 그 후 훌륭한 멘토들을 만나 영향력 있는 방송 앵커로 성장한다.

우리 사회 지식 격차 해소에 기여하고파

“팟캐스트를 통해 제가 하려는 것도 우리 사회의 지식 격차를 줄여 더불어 잘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겁니다. 세무사, 전 은행 임원 등 출연자에게는 제 프로그램이 지식을 기부하는 채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기부의 수단이 지갑을 열거나 어디 가서 밥 푸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니어들이 자신의 경력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는 것도 사회공헌 활동입니다. 대표적인 사각지대가 교육입니다.”

방송 외에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지방에 내려가 대도시의 전유물이 되다시피한 사교육에서 소외된 초중생들에게 과외 수업을 시키는 것이다. “서너 개 군과 인접한 곳에 학원을 차려 영어는 제가 가르치고 수학은 친구에게 맡기면 됩니다. 저도 공무원 출신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현지 공무원에게 꺼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해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는 시니어들이 대접 못 받는 사회에서, 당사자인 시니어들이 위축돼 있는 것에 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시니어들이 그렇게 잘못 살지 않았습니다. 실력도 젊은 세대 못지않고 무엇보다 치열하게 살았어요. ‘젊은 사람들이 옳고 우리가 틀리다’는 이야기를 시니어들 스스로 자조적으로 할 때면 어떤 땐 화가 나요. 젊은 사람들도 고칠 게 있고, 그런 지적은 옳은 데도 ‘꼰대나 하는 소리’라고 묵살하는 풍조가 시니어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다 옳고 우리가 다 틀리면 전래의 좋은 가치와 문화를 어떻게 전승합니까? 고전은 문체가 낡았어도 고전입니다. 기성세대가 더 당당하고 자신감을 가져야죠.”

그는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시니어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터넷 금융 등 우리 사회의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신문만 정독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죠. 어쨌거나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대화에 제대로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시니어가 꼰대 소리 듣는 건 사실 매너를 안지켜서 그래요. 젊은 사람들 시선 의식할 필요 없이, 매너는 지키고 적극적으로 학습해 2막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고 봐요.”

2014년 그가 사장으로 부임한 지 반년 만에 캠코는 공기업 경영 평가에서 A등급(우수) 평가를 받았다. 전년도엔 C등급이었다. 그는 캠코와 업무협약을 맺고 신용불량자들에게서 미수금을 받아내는 신용정보회사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이 일을 서울변호사회 등에서 추천 받은 외부 위원회에 맡겼다. 최종 결정에 대한 발표도 이 위원회가 하도록 했다. 그 결과 탈락한 회사들이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권한을 외부 전문가들에게 위임한 덕에 그가 재임하는 동안엔 캠코의 결정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잡음도 공정성 시비도 없었다. 그 시절 캠코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을 직원들 음성으로 녹음해 전국에 배포했다. “관료 생활을 하는 동안엔 여러 제약 탓에 저도 제 색깔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공직에 있는 분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자기 색을 표현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제가 금감위 대변인 시절 위원장으로 모신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그런 분이었죠. 옳다고 생각한 것을 용기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신 있게 제 색깔을 내고 살아야 행복합니다.”

캠코 사장 임기를 1년 남겨두고 그는 퇴직에 대비했다. 강의를 할 요량으로 직원에게서 PPT 만드는 법도 배웠다. “퇴직 후 막상 PPT를 만들려니 잘 안 됐습니다. 회사 업무 하듯이 제대로 완벽하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죠. 인생 2막은 홀로서기입니다.” 그는 “국가가 해 주기를 바라기 전에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한 케네디 미 대통령처럼 은퇴 세대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기를 바랐다. “어쩌다 아내가 성당에 간 사이 ‘우렁각시’처럼 설거지를 해 놓으면 돌아와 편안해 합니다. 1막 무대에서 국가에 나름대로 기여했듯이 2막에 가정과 사회에서, 사소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1491호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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